|
한국방송 교양작가 최빛나
|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피디수첩> 해고 작가들과 연대해 싸우고 있는 한국방송 교양작가 최빛나
|
| |
가해자의 평범한 맨얼굴
보는 게 고통스러웠죠” “좋은 작가를 키워야겠구나
그런 사람을 도와줘야겠구나
결심하게 됐죠” “대학 전공은 순수문학이에요. 소설과 수필도 써봤고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는데, 뭐랄까, 그냥 따분했어요.” 싱긋 웃는다. 고민이 타버리고 남은 순수한 미소다. 남자들은 이런 미소에 약하지. “친구가 방송일을 한다고 해서 같이 지원을 했다가 방송작가를 하게 되었죠. 처음엔 막내작가라서 계속 사례 수집하고 조사하는 역할만 했죠.” 방송작가는 막내작가, 서브작가, 메인작가로 나뉘어 있다. “전 처음부터 교양·시사 쪽이었는데 진짜 힘들었어요. 일이 많았냐구요?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런 것보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잘 몰랐어요.” 신인 시절의 찬란한 유치함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가 보다. “<피디수첩> 작가로 일할 때였는데 연평도 사태가 일어났어요. 보통 4주에 걸쳐서 방송분 한꼭지를 만드는데 일주일 만에 만들게 됐죠. 진짜 정신없었어요. 그리고 방송을 봤는데요.” 말끝을 내리끌면서 양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기지개하듯 민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한다는 신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집 잃고 피난 가고.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요.” 자각은 인간을 한발자국 앞으로 더 나아가게끔 만든다. 그런데 시청률이라는 현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촬영 한번에 60분짜리 테이프 100~200개가 나오는데 그걸 작가들이 나눠서 돌려보면 건질 수 있는 건 테이프당 30초에서 1분도 안 돼요. 그걸 저희가 생각한 방향으로 구성을 해야 하는데, 이때 ‘센 그림’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청률이 잘 나오죠. 안 나오면 저희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구요.” 테이프는 몰래카메라 촬영이나 멀리서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그 고역 너머 진실이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피해자를 만들고 몇몇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객관과 주관 사이. 모터사이클이 차체를 깊숙이 기울여 코너를 돌면서 빠져나가듯이 작가는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의 미묘한 교차점에 방점을 연속으로 찍어야 한다. “막내작가 때 제일 심했어요. 어머니를 칼로 찌른 고시생, 목이 졸려 죽은 무당, 근친 성폭행 같은 아이템을 다루면서 여기서 나의 주관이 있는가라는 부분이 절 힘들게 했지요.” 가장 보기 힘든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얼굴이요. 얼굴. 원본에는 모자이크가 없잖아요. 성추행과 학대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나 평범했어요. 카페에 있으면 맘씨 좋은 알바생처럼 보일 것 같은 그런 얼굴이요.” 악마성과 평범함의 공존. 그녀는 그래서 한때 사람이 많은 곳이나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터넷 입양을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네요.” 인터넷 입양이라는 말에 카페 옆자리의 중년여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릴 힐끔 쳐다본다. 오해는 곡해를 부른다. “왜 젊은 부부들이 소중한 아이를 포기하는지 그 부분에 좀더 집중을 해보고 싶었어요.” 커피를 한모금 삼키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만약에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 회사 전 직원의 컴퓨터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서 이메일과 인터넷 서핑 내역을 모두 불법감시를 하고 한 부서의 정규직 직원을 상당수 관련이 없는 곳으로 발령 내고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을 전원 해고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디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각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고 난리가 나겠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방송국에서 일어났어요.”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작가들은 모두 해고되었다. 현재 방송작가협회 900여명의 시사교양 작가들이 해결을 요구하며 대체 투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두 개의 문>을 봤어요. 시사교양 프로가 바로 저런 역할을 해야 해요. 이 사회가 건강함을 잃지 않도록 내성을 기르도록 해야 하고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문제점을 공격하는 항생제 노릇도 해야 하죠.” 작가들의 집회 현장에 생수셔틀을 해보면서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의 힘’을 느꼈단다. “전 좋은 작가분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지도를 받았어요. 제가 좋은 작가인지는 아직도 자신 없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제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나 정했어요.”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난 그녀와 일을 함께 했으면서도 그녀의 꿈이나 목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좋은 작가 한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제 알았어요. 정말 좋은 작가를 키워야겠구나. 그런 사람을 내가 도와줘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녀는 이미 충분히 좋은 작가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며 누구를 키울지 두근두근해졌다.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