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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각시탈>에서 강한 액션으로 ‘끝판대장’ 별명 얻은 무술연기자 브루스 칸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은 ‘모든 이들은 15분 만에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방송이 종료된 인기 드라마 <각시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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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여 격투신으로
검색어 1위 올라
이소룡 꿈꾸며 액션 연기 입문
발차기로 홍콩영화 진출
미국에선 액션스쿨 차리기도 화제가 된 <각시탈>에서 일본인 무사 가토 긴페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악당이죠. 악당인데 레벨이 다른 악당을 보이고 싶었어요.” 다른 레벨이요? “말과 행동이 거친 게 아니라 진짜 악당 말이죠.” 그 말 맞다. 우리 현실 속 진짜 악당들도 모두 선한 얼굴에 양복을 입고 있지 않는가. “가토는 기계 같은 사람입니다. 단 한칼에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남자죠. 그런 캐릭터를 제 몸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특히 칼싸움의 진수는 칼을 뽑는 발도와 다시 집어넣는 납도인데 이 부분을 신경 썼지요. 그런데 제가 너무 세 보였나 봐요.” 그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다. 겨우 1분 남짓한 격투 신은 바로 다음날 검색어 1위가 되었다. 그에겐 각시탈 끝판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무래도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가장 뜨는 게 맞죠. 그래서 분량도 줄었어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시작은 누구 때문이에요? 시작. 저는 헐크 호건이요.” “네? 아…아하하하.” 그는 역시 바로 내 질문을 알아들었다. “이소룡(리샤오룽)이죠. 원래 전 성룡(청룽)을 좋아했는데 나중에 고등학교 가서 비디오로 이소룡 영화를 보고서는 성룡을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다소 피곤에 지쳐 있던 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이소룡의 무술액션엔 그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그는 정말로 주먹과 발로 자신을 표현하고 연기했던 것이죠.” 그의 이소룡에 대한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고 거의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수컷은 자신보다 강한 수컷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그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이름이 먼저 알려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영화판을 돌아다녔어요. 제가 원했던 것은 성룡, 이소룡 같은 무술연기자였죠. 그런데 주인공의 대역과 스턴트맨 이외엔 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 그는 몸으로 하는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때 홍콩 쪽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성룡 영화에서 발차기를 해 줄 사람을 찾더군요. 그래서 떠났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까. 그런 이야기는 모든 인터뷰의 필수요소이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특히 홍금보(훙진바오) 형님이 참 좋았요. 제가 따거(형님) 따거 하면서 쫓아다녔는데 배포가 큰 양반이었지요.” 홍콩에서 발차기로 이름을 날린 그는 내친김에 미국까지 진출을 시도한다. 역시나 무작정 떠난 것. 이 사람은 순항 미사일처럼 중간에 궤도를 수정하는 법이 없다. 포탄처럼 그냥 쏘면 끝까지 가는 타입이다. “여기저기 에이전시에 서류도 넣어보고 찾아가보기도 했는데 아무도 저한테 관심이 없었어요.” 그는 직접 자신을 드러내기로 한다. “영화 촬영장 인근에는 큰 체육관이 있고 그곳에서 배우, 스턴트맨, 무술연기자들이 연습을 하죠. 제가 거길 찾아다닌 겁니다.” 이것은 전설의 파이터 최배달이 했다는 이른바 도장깨기! “처음엔 그저 제 운동만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좀 안면이 트이면 발차기 미트를 좀 잡아달라고 해요. 제가 덩치는 작지만 발차기 하나는 헤비급이거든요.”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발차기는 홍콩에서 초빙했을 정도로 그 속도와 파괴력이 엄청나다. “처음엔 만만히 봤다가 제가 발차기를 넣으면 퍽! 소리가 나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그럼 이번엔 발로 차서 미트랑 사람까지 같이 세트로 날려버리는데요. 여기 비밀이 하나 있어요.” 어떤 비밀일까? “그때 영화 <매트릭스>의 무술액션팀이 운동하고 있었는데요. 이쪽에선 굉장히 유명한 사람들인데 일부러 그쪽으로 날려버리는 거죠. 나 좀 보라고 말이죠. 우하하.” 개구쟁이처럼 웃는 그. 과연 그의 작전은 성공했을까? “아뇨. 실패했어요. 아무런 관심을 안 갖더라고요. 대신에 저의 발차기를 보고 사람들이 가르쳐달라고 줄을 서더라고요. 그래서 액션스쿨까지 아예 만들게 됐어요.” 하루 천번의 발차기를 준비운동(!)으로 하면서 ‘원 사우전드 킥’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던 그. 재능과 성실함 그리고 배짱까지 겸비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삐쭉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모 대기업의 홍보용 액션영화 촬영을 위해서였고 그 대기업은 갑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면서 아이디어회의를 하다가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미국에서 이 일 때문에 귀국했던 그는 망연자실했다. 우린 제법 강한 남자들이었지만 링과 스크린을 벗어난 곳에선 한없이 약한 일용직 노동자였을 뿐이다. 그는 계속 한국에 남아서 무술연기자의 길을 모색했다. “그 뒤로 영화가 7개가 엎어졌어요. 들어간다 만다 하면서 말이죠. 참 힘들었어요.” 입에서 나오는 음성정보의 템포가 느려졌다. “그래도 전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잖아요. 단련하면서 견딜 수가 있었죠.” 사랑하니까 단련한다. 귀에 착 감기는 말이다. 그와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면서 수군거린다. 앤디 워홀의 15분을 이야기했었는데 아니다. 그는 15년 20년 25년 걸린 거다. 17살 때 이소룡을 만나 자신의 길을 정하고 25년 만에 이제 그 성과를 거두려고 하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쪽에서 계속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앞날에 그의 발차기 같은 무운이 함께하길 빈다.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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