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31 17:55
수정 : 2012.11.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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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 팀장이 폭주족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고가의 오토바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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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서울지방경찰청 폭주족 전문 수사팀 김홍주 팀장
본래 일반기업 회사원 출신
경찰 친구 불량배 제압 보고
다음날 사표 내고 경찰시험 준비
무리를 지어 달린다.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차선을 경멸하며 목숨을 연료로 달리는 이들. 바로 폭주족이다. 한때 100~200대가 몰려다니던 대규모 폭주족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소규모로 분화되면서 더욱 치밀해졌고 더 위험해졌다. 폭주는 엄연한 범죄. 그런데 다른 범죄와는 달리 본인들의 목숨을 그대로 길바닥에 버린 채 일어나고 청소년이 많다는 점에서 겉보기보다 꽤 까다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서울지방경찰청에는 폭주족 전문 수사팀이 있다. 폭주족에게 악명(?)높은 그곳의 수장을 10월26일 서울지방경찰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김홍주(47) 팀장은 구면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서 2주일간 동행을 한 적이 있다. 폭주족은 낮엔 움직이지 않는다. 야음을 틈타 활동한다.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선 수사팀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일주일 넘게 하자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서로 쌍화차를 권하며 사우나에 같이 갔다.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 이렇게 친해졌다.
김 팀장은 원래 경찰에 별로 뜻이 없었다. 일반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경찰이 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불량배들을 만났다. 그때 친구가 불량배를 간단히 제압하는 것을 보고 ‘와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다음날 회사에 사표를 내고 경찰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확실히 남자들은 어이없는 일로 자신의 인생항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길이 오랫동안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보다 훨씬 나은 경우가 내 주변에 많은 것 같다.
피의자가 도주한다. 경찰이 쫓는다. 피의자가 수비라면 경찰은 공격이다. 그러나 폭주족을 쫓을 때는 이 입장이 묘하게 뒤틀리기도 한다. “사고 치고 도망갈 때는 밉긴 하지만 다들 어리잖아요.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그냥 애들인데.” 대체 왜 그렇게 무리를 지어 달릴까.
“아이들이 만족을 느낄 게 없어요.” “만족이요?” “잡고 보면 형편이 힘든 친구들이 80%가 넘어요. 집과 학교에서도 의지할 데가 없는 거죠. 걔네들은 그 오토바이로 낮엔 배달일 하면서 돈을 벌고 저녁은 다시 그걸 타고 폭주를 뛰는 거예요. 모든 걸 해결하는 거죠. 용돈과 오락과 그 모두를.”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군요.” “그러니까요. 학교와 가정이 그 90㏄ 배달 오토바이만도 못한 거죠.” 그 아이들한텐 오토바이 한 대보다도 못한 사회. 의미심장하다. “위험하게 타면서 주변 운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있지만 소음공해도 있죠. 불법으로 개조한 오토바이 한 대가 영등포에서 성북동까지 달리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피해를 입는 거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비해서 정말 폭주족이 준 것 같다. “도로에서 몰려다니는 것을 직접 추격하는 것은 되도록 안 하고 있어요. 다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인터넷카페,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어디서 모인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그들이 멈춰서 있을 때 ‘추수’하는 것이죠.” 김 팀장이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에 밝은 데는 이유가 있다. “천안이나 강원도까지 따라간 적도 있죠. 얘네들이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중간에 안 쉬고 계속 달릴 때가 있어요. 그럼 우리도 계속 따라가야 하는 거죠.”
요즘은 폭주족의 형태도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리더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큰 도로가 아니라 동네 어귀에서 달리다가 옆에 어떤 무리가 지나가면 합류하고 그러면서 또다른 그룹에 합류하고. 그 뭐더라 소셜 뭐더라.” “소셜네트워크요?” “네. 그 트위터 뭐시기처럼 개인이 소규모 집단으로, 그러다가 갑자기 뭉치면서 거대 그룹으로 커지는 거죠.” “어찌 보면 21세기스럽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잡기도 힘들고 잡아도 서로 이름도 모른대요.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모르는 거예요.” 어떤 그룹에 가입하기 위해선 이름과 생년월일과 취향 등을 공개하고 리더와 핵심 간부의 추인을 받아야 했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의 폭주족은 도로에서 우연처럼 합류하고 풋내기 연인들이 이별하듯 헤어진다. 그들을 추적하는 처지에선 속이 뒤집어질 노릇일 게다.
김 팀장에게 수줍게 고백했다. 연례행사가 된 8·15 대폭주. 그 근원에 내가 있다고. 1990년대에 하이텔 바쿠둘, 나우누리 엠시시(MCC), 천리안 천리마, 유니텔 유니라이더스 등의 피시통신 내에 오토바이 동호회가 있었고 그때 동호회 회원들끼리 모여서 서울에서 천안 독립기념관까지 ‘준법운전’을 하면서 달리는 행사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행사의 취지는 모두 휘발돼 날아가고 그저 몰려다니는 것만 남았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절로 탄식이 나왔다. 나의 고백에 김 팀장이 사람좋게 웃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계도가 더 중요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오토바이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배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폭주족이 된 거죠.” 우리나라에는 오토바이 학원 자체가 거의 없다.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식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리고 자신도 위험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면 열 중 7~8명은 말을 알아들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얘네들이 폭주를 하는 건 오토바이 자체의 스릴을 즐기는 것도 있지만 존재감 과시도 있어요. 워낙에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니까 이렇게 험하게 달리면서 자기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은 거죠.” 오토바이 폭주에 대한 그 어떤 전문가의 말보다 더 깊게 와닿는다. 아 참 그도 물론 전문가다. “그리고 선을 넘으면 법적인 처벌에 대해서 엄하게 묻는 거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위안과 법적인 처벌에 대한 자각. “그 맘 이해해요. 저도 시골 깡촌에서 동네 형 오토바이 좀 빌려 타보려고 잔심부름 다 하고 굽실거리면서 30분 얻어타면 얼마나 좋았는데요. 산길에서 흙먼지 날리면서 입에 날파리 들어가고….” 철없던 옛날 이야기에 한창 흥이 날 무렵 폭주족이 나타났다는 연락에 급히 자리를 파했다. 자리를 떠나는 김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나를 보조석에 태우고 추격전을 벌이는 차 안에서 그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더 오래 살겠어요, 쟤네들이 오래 살겠어요? 쟤네들도 우리나라 미래잖아요.”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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