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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오지 전문 피디·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의 탁재형 피디
오지, 정글, 밀림. 다큐멘터리를 넘어 이젠 예능의 영역에서도 자주 접하는 풍경이다. 거의 모든 삶의 양식이 ‘아메리칸 스타일’로 바뀐 우리들에게 그렇지 않은 삶의 양식에 대한 궁금증은 본능과도 같다. 그 궁금증에 답하듯 10년이 넘도록 오지 전문 피디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로도 잘 알려진 탁재형 피디를 지난 3일 홍대 그의 작업실 인근에서 만났다.
“해외 특파원? 뭐 그런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멀리 나가 무언가를 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말이죠.” 넘쳐흐르는 호기심은 이 코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수요소다. 탁 피디도 마찬가지. “학군장교로 복무하면서 저축했던 돈으로 방송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방송일을 배웠죠. 6개월 과정 수료하면 방송국에 들어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취업보장이라는 말은 원래 믿는 게 아니다. “실무경험도 쌓아야 할 것 같아서 편집실에서 일을 하기로 했어요. 편집실 막내, 이른바 시다로 시작한 거죠.” 아래 하(下)의 일본어 발음인 시타(다). 그 뜻이 말해주는 것처럼 어느 업종에서나 가장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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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형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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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일 하다가
위층 회사 편집실장으로 발탁 그는 꽤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 명문대 졸업과 장교. 하지만 그는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진짜 스펙을 원했고 이런 선택은 그의 전문가적 소양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된다. “외주사에서 편집할 거리를 갖고 오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사실 제일 편해요. 그런데 저는 궁극적으로는 직접 제작을 하고 싶었으니까. 제가 피디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내고 그랬죠.” “그랬더니요?” “어쩌긴요. 소문났죠. 쟤 일 잘한다고 말이죠. 편집일이 늘다가 급기야 저한테 피디 일을 직접 제안한 곳이 있었어요. 그곳이 바로 <도전 지구탐험대>를 제작하는 곳이었어요.” 그가 자신의 피디 입문작으로 선택한 아이템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소방관들의 사다리타기였다. 베네치아는 좁은 골목과 목조건물이 많은 곳이어서 그 어느 곳보다 화재진압이 필요한 곳. 그런데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다 보니 소방관들이 벽을 발로 차고 사다리를 이어붙이며 올라가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술들이 있었다. 이것을 아이템으로 잡은 것. “아이템 선정은 대성공이었죠. 그런데 제가 그땐 정말 어리숙해서 실수가 많았어요. 조명을 두고 간 것부터 시작해서… 어휴.” 한숨까지 내쉬었다. 남미의 오지에서 생고기를 질겅질겅 씹던 이 남자에게도 얼굴이 붉어지는 신인시절은 아직도 ‘쪽’팔리나 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향유하는 문명의 혜택과 최소한 열 발자국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오지. 그는 왜 오지를 선택했을까? “제가 딱히 밀림이나 정글 또는 오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와이파이 신호 터지는 데를 제일 좋아해요.” 뜻밖의 대답이다. “피디라는 인종은요.” 잠깐 뜸을 들인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거리를 계속 찾는 사람들이에요. 저에게 오지는 이야기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죠. 내가 이번에 발굴한 이야기가 어떤 감동을 줄까? 그런 걸 생각하면서 계속 헤치고 들어가는 거죠.” 정글 원주민에 대한
타자화된 시선 반대하지만
기록의 중요성 의미 있어 이야기의 보고 정글은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한편으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원시인’으로 타자화해서 지나치게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저는 그런 시선도 편견의 하나라고 봐요. 물론 해당 지역의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해선 안 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별에 사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되는 거죠.”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오지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사람이 사랑하고 죽는 것까지 철저하게 상업화한 것에 비해서 그들의 삶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그러면서도 가장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요?” “잉카 제사장의 후예들인 떼로족은 남녀가 사랑하면 일단 동거를 해요. 한두 해 살다가 정말 인연이다 싶으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죠.” “그러다 헤어지면요?”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애가 생기면 남자애는 남자 쪽에서, 여자애는 여자 쪽에서 데려가 자기 가문으로 키우죠. 평생 같이 살 부부인데 안 살아보고 어떻게 결정하느냐인 거죠.” 우리의 결혼식은 웨딩업체와 결혼식장 그리고 그들로부터 협찬과 광고비를 받는 드라마와 방송사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는 한시간이 넘게 원시의 삶이 갖고 있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제가 오지를 간다고 해서 제가 하는 일이 특별히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방송일은 원래 다 힘들어요.” 그는 갑자기 씨익 웃었다. “저는 이야기꾼이에요. 더 많은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고 시청률로 응답받고 싶어요.” “시청률이요?” “그게 올라가야 페이가 올라가죠.” 그는 더 크게 웃었다. 요즘 세상의 진짜 프로페셔널은 자신의 속내를 거부감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이 된다. 인터뷰 내내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을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오가던 탁 피디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에 오지의 원주민들도 마음을 쉽게 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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