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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12 17:08 수정 : 2012.12.13 14:59

김선씨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잡지 기자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김선씨

1990년대 중반 학교를 휴학하고 서울로 올라와 식당에서 일을 하며 문간방에서 숙식을 했다. 그때 구석 언저리에 잡지가 항상 있었다. 표지에는 화려한 모델풍의 남녀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고급 자동차와 최신 영화는 물론 연예인의 가십거리부터 연애와 섹스까지 다룬. 외풍이 심해서 전기장판을 최대로 틀어놔도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해야 하는 나에게 그 잡지들은 이상향으로 가는 황금지도 같은 것이었다. 대체 이런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굴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아는 이들 ‘에디터’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 궁금증은 그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을 꺼도 환할 것 같은 미모.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미인이 바로 그런 에디터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야당 국회의원의 막내 비서관. 이른바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한 김선(34)씨를 11월29일 영등포 민주통합당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profile

김선 1978년생. 2003년 중앙 엠앤비 입사.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2007~2011년 프리랜서 기자. 2012년 6월~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비서관.

“중학교 때부터 잡지를 4~5권씩 봤어요. 아마 처음 본 잡지의 표지모델이 레베카 로미즌(리베카 로메인)이라고 슈퍼소년 앤드류랑 결혼한 사람인데 너무 예뻤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80~90년대에 친숙한 단어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땐 잡지의 위세가 정말 대단했다. “한국땅 바깥의 세상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잡지가 거의 유일했죠. 지금의 에스엔에스(SNS)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90년대에는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잡지가 거의 유일했죠”

원래부터 동경했던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역시 동경하던 세계와 현실은 1만 광년의 차이가 있었나 보다. “너무 힘들었어요. 바닥부터 굴렀죠. 잡지사가 이직률이 정말 높더라구요. 저처럼 인쇄된 지면을 보고 왔다가 그 너머의 현실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하나 깨달은 게 있었어요.” “그게 뭔데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다시 활자로 만드는 게 제 적성에 맞더라구요.”

나른한 낮시간 졸음을 쫓아주는 라디오 디제이처럼 그녀의 목소리 템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 쪽팔린 일 없었어요?” “쪽팔린 일이요?” “그러니까 너무 큰 실수를 해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있죠. 의상 준비를 제대로 못한 적이 있는데 아주 대차게 혼났어요.” “어느 정도였길래….” “저를 아주 아껴주시던 선배님이었는데요. 스튜디오 그 사람 많은 곳에서 큰소리로 ‘넌 자격이 없다, 그만둬라’ 그러시는데 눈물을 아주 펑펑 쏟았어요.”

순정만화 캐릭터처럼 큰 눈에서 살짝 눈물이 고이려고 한다. “막 후회도 되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때 진행하던 연예인 인터뷰만 끝내려고 청담동에 있는 미용실을 갔는데요, 제 옆 아주머니가 잡지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계신 거예요. 살짝 봤더니 제가 쓴 기사를 보고 웃고 계신 거였어요.”

사람들은 각자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피곤한 삶에 대한 위안을 찾는다. 그녀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초부유층을 상대로 한 잡지에서도 일했다. “500만원짜리 와인 마셔보셨어요?” “500만원이요?” “네. 전 마셔봤어요. 1000만원짜리 셔츠, 1억원짜리 시계도 봤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성격과 레벨이 다른 삶을 엿보는 일은 그녀에겐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을 터.

“그런데요. 제가 느낀 게 있어요.” 샷 추가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그녀가 말했다. “제가 지금 이 세계, 지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요.” “그건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1억원짜리 시계가 통용되는 세계는 ‘우리의 세계’는 아니잖아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는 잠깐 품는 판타지와 두 다리로 딛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분별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모였다는 것. 제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어요.”

“정해진 양식과 의전을 안 지키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삽질도 많이 했지요.”

결혼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또 자유기고가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 등 공익적인 분야의 일을 찾게 된다. “잡지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었죠. 그것을 경험하고 보니 진짜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그러다가 진선미 의원님을 만나게 된 거죠.” “어디서 만났어요?” “순댓국 집에서요. 그런데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제가 반했어요. 그분도 마침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어서… 뭐 그분이 절 잘못 보신 거죠. 하하하.” 입에서 톡 터지는 탄산처럼 귓가를 치는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그녀의 이런 매력에 그녀의 보스도 반했으리라. “여기(국회)는요…” 뭔가 비밀을 말하듯 좌우를 살짝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신고딕 글자 크기 12의 세계예요.” “네?” “정해진 양식과 의전을 지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삽질도 많이 했지요.”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다. 의원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트위터에서 끝도 없는 야근과 발이 편한 신발에 대한 트위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마카오의 고급호텔에 대한 심층 체험 기사와 겨울시즌의 청담동 레스토랑 정보 그리고 사회 저명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들이 말이다. 마침 테이블 한쪽에 그녀가 몸담았던 잡지 <코스모폴리탄>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표지를 가리키며 물어봤다. “생각 안 나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잡지를 만들었던 시간도 아주 훌륭했어요. 제가 만든 콘텐츠로 누군가에게 정보도 주고 기쁨도 줬으니까요. 국회의원도 입법활동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법이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거잖아요. 전 국회라는 잡지사에서 일하며 국회의원이라는 편집장을 돕고 있는 거죠.”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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