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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석씨.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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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이번엔 모두까기 패러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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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자식연합
2010년 결성 “어버이연합을 패러디한 것은 맞지만 딱히 그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구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 대한 테러가 있었잖아요. 사실은 그 사건이 계기가 되었죠.” “그래요?” “며칠 동안 열받아서 잠이 안 오더라구요. 뭔가 나도 해볼 만한 게 없을까 궁리하다가 인터넷과 패러디를 이용해보면 좋겠다 싶었죠. 2010년만 해도 그런 패러디 열풍이 꽤 사그라든 상태였거든요.” 그는 굵직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이미지를 편집해서 트위터를 통해서 유포했고 몇몇 동영상은 100만 클릭은 가볍게 넘길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다. “트위터로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더라구요. 자기도 시켜달라고.” 대자연 가입은 너무나 간단하다. 대자연을 나타내는 해시태그 #korchild를 프로필에 붙이면 끝. “동창회에 처음 나가면 반갑고 재밌는데 회칙 나오고 간사 뽑고 그러다 보면 정떨어지고 지루해지잖아요.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한 거구요.” 그는 뭔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패러디물이라고 해도 일정 부분 퀄리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기준을 저는 ‘프로페셔널이 남는 시간에 재밌게 작업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어요.” “남는 시간에 재밌게요?” “프로가 있는 힘껏 만들면 아무래도 돈 생각이 나죠. 당연하죠. 프로니까. 편집이든 그래픽이든 제법 마우스 잡아본 사람이 하되 너무 과하지 않고 즐겁게 만들자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런 느슨함이 필수라고 봤죠.” 그의 본업은 투자홀딩스의 이사. 돈을 이용해 사람과 기업을 움직여 이윤을 취한다. 핵심을 찌르는 능력은 그의 직업 때문에 배양된 것일까. 그런데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지난해 10월 그는 돌연 대자연 해산을 선언한다. 대선 두달 앞두고 해산 선언
“진영논리가 선악대결로
변질되는 것에 회의 느꼈죠” “대자연은 안티 이명박 진영에 속해 있고 일정 부분 그 직역에 복무를 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각종 패러디물은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이 많았고 야당이 주장하는 이슈들을 부각시켰지요.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자 진영논리가 선과 악의 대결로 변하더군요. 사실 야당도 패러디할 게 많았어요. 그런데 워낙 저쪽에 소스가 넘쳐나서 신경을 못 썼고, 또 큰 싸움 즉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치단결해야 하지 않나 이런 분위기도 있었구요.” 12월19일 이후 많은 이들이 고민했던 층위에 대해서는 그는 이전부터 신경이 쓰였던 듯하다. “진영논리도 마뜩잖았는데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면서 진보가 고민해야 할 가치에 대한 부분은 사라지고 죽일 놈과 살 놈만 남더군요. 이 흐름에 대해서 저도 일조를 한 것이 있구요. 그래서 확 닫아버렸죠.” 그는 대자연을 운영 중지하고 개인 자격으로 야당 후보들의 선거운동에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한다. 안철수 전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동영상 인터뷰를 촬영한 것도 그다. 문재인 후보 관련 동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루 7만원을 주고 대여한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서 말이다. “패러디를 하려면 영상 소스가 있어야 하잖아요. 뉴스 화면을 컴퓨터로 캡처받은 게 2테라가 넘어요. 그걸 다시 보고 정리하고 잘라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죠.” “그런데 왜 하시죠?” “음, 그게요.” 그는 어울리지 않게 입을 앙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대자연에서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하는 콘텐츠도 많이 만들었는데 사실 저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되면 더 좋은 사람이에요. 저작권 관련 사업을 하니까 더 기회가 늘어나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는 저에게는 더 큰 사업적 기회를 주기도 해요. 하지만.” “하지만요?” “저에게는 사업적 기회가 커지거나 적어지거나의 문제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럼 밥 먹고 살 만한 사람이 손해 보더라도 나서야 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뒷머리를 긁적대며 대전 출신답게 충청도 사람처럼 약간 의뭉스러운 말투로 말을 흐렸지만 그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저는 박근혜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엠에프 때 힘들게 20대를 넘겼는데 5년 뒤 중년의 나이에 망가진 대한민국에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 모두까기닷컴을 만들려고 해요.” “모두까기요?” “대자연처럼 패러디물을 만들지만 여야와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까는 거죠. 우하하하. 이거 정말 재밌지 않나요? 모두까기.” 그는 자기가 말하고도 재밌다는 듯 웃음을 참으며 커피를 입으로 넘겼다. 그의 짓궂은 눈빛에서는 방금 전까지 전화로 투자자와 상담하며 유창한 일본어로 숫자를 메모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백주등, 낮에 켜진 등 같은 사람이다. 어찌 보면 눈에 띄지도 않고 그 의미를 알기 쉽지도 않지만 주변이 어두워지면 비로소 그 존재감을 나타내는 이 말이다. 홀연히 나타났던 대자연에 이은 그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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