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연구가 이보은씨. 박미향 기자
|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 |
|
토속요리 잘하는
할머니에게 요리 처음 배워 “저희 집은 종갓집은 아니었지만 큰집이었어요. 항상 제사가 끊일 날이 없었죠. 꼬맹이 때도 할머니, 엄마, 이모들이 음식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걸 좋아했어요.” 1남4녀 중 장녀인 그는 어려서부터 음식을 만들고 동생들에게 해먹이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가 토속요리를 참 잘하셨어요. 제 요리의 근간을 알게 모르게 그때 익혔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행운이다. 그는 자신의 행운을 꽉 거머쥔다. “다른 일을 좀 하다가 요리연구를 제 업으로 삼기로 했어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유치찬란한 초보시절은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적은 시기도 있었다. 밤새 연구하고 만들었던 요리들이 정작 잡지에는 손바닥 절반도 안 되는 박스기사로 소개되는 경우도 많았다. “레시피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한 10품에서 20품의 요리를 만들어봐야 해요. 직접 먹어보기도 해야 하고요.” 그의 이런 노력과 정성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해에 14개 잡지에 그의 요리가 실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저기 요청이 끊이지 않자 제자도 키울 겸 쿠킹스튜디오를 연다. 1998년의 일이다. “비결이 있나요?” “저의 비결은 정확한 레시피예요.” 원론적인 대답에 약간 김이 새려고 하는데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저의 노하우를 모두 아낌없이 정확하게 공개합니다.” “정말로요? 전부 다요?” “네, 전부 다요.” “그럼 강의 같은 거 할 때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저는 그럼 한발자국 더 나아가면 되니까요.” 대중을 뒤에서 닦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길라잡이를 해주고 다시 자신은 앞으로 더 나아간다. 그가 말하는 프로의 자격이다.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는 약속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다. 가끔 방송국에서 만날 때면 거의 한시간 가까이 미리 와서 준비를 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방송시간은 물론이고 원고마감도 하루 전날 끝내놓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에요.” 내 원고를 기다리는 담당 기자 생각에 속이 뜨끔해졌다. “시간을 못 지키면 저도 불안하지만 상대편은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그는 방송가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 특히나 꼬물꼬물 오도독오도독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사용해가며 방송인 못지않은 정확한 발음과 정보전달력은 그의 장점. “오디션 프로에서도 연락이 왔는데요. 그건 못하겠더라고요.” “왜요?” “(프로그램 전개상) 제가 심한 말을 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건 잘 못해서요. 누군가의 가슴에 응어리가 질 수 있잖아요. 음식이 정으로 만드는 건데.” 그는 정말로 정이 많다. 주변인들은 물론 타인에게도 그렇다. 선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자 계속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계속 물어봤다. “트위터로 홍대 청소노동자분들이 스티로폼 위에서 앉아 계신 모습을 봤는데요. 뒤에 쌀포대는 있는데 반찬이 안 보이더라고요. 맘이 아릿아릿해지더라고요. 마침 김여진씨와 트위터 친구 사이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음식을 만들어봤죠.” 6주간에 걸쳐 찰밥에 나물, 각종 반찬과 겉절이를 해서 목요일마다 현장으로 보냈다. 시즌 3을 준비하는 뉴스타파도 그의 음식 맛을 봤다. 특별한 요리비법
공유하는 데 보람 느껴
식사 못챙기는 파업참가자들에게
따뜻한 밥 챙겨 보내기도 “아무래도 야근도 많고 라면도 많이 드실 것 같아서 간이침대랑 컵라면 몇 상자 그리고 김치를 1인분으로 썰어서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보냈죠. 비타민이 모자랄 것 같아서 오미자차, 유자차, 모과차도 만들어 드렸죠. 얼마 전에 노종면 기자 만났는데 김치 정말 맛있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할 때보다 더 활짝 웃는다. 이런 미소는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는 아주 훌륭한 달란트를 갖고 있다. 그 달란트를 이용해 명성과 부를 쌓는 것은 그의 당연한 권리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은 의무에도 속한다. 이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고 부른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다 공개하고 그러면서 자신은 더 나아가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엄격함의 층위와는 다르게 그는 정이 많다. 그가 잡지 출품용이 아닌 요리를 만들고 도시락을 만들 때 그의 행동에 어떤 논리적 배경이나 정치적 판단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사실 별로 관계도 없다. 어려운 사람에게 등 두드려주고 힘내라고 하는 프로에게 우린 너무나 굶주려 있었다. “저에게 요리에 대한 재능이 있긴 있어요.(웃음) 그 재능으로 20년간 많은 걸 얻었으니 이제 베풀면서 가야지요. 지금 제가 신경쓰는 것은 바로 로컬푸드예요. 앞으로 농수산물은 수입산이 계속 늘어날 것이고 양이 아니라 질로 건강하게 먹는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예요.” 진부령에서 황태를, 공주에서 노루궁뎅이버섯을, 양구에서 사온 시래기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뭔가 기분 좋은 포만감도 함께 밀려왔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