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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6 18:25 수정 : 2013.03.06 18:25

신미지씨.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profile

신미지
1979년생.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2005년 졸업. 2004년 월드비전 북한사업부 아태지역본부 근무. 2006년 아시아 교육연구원 간사. 2009년부터 참여연대 간사로 활동.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흔히 이런 문장을 떠올린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자.” 이 문장을 되뇌면서 소크라테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스스로를 지사의 자리로 끌어올려 합리화한다. 현실적인 사람은 돼지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 선택과 무관하게 자기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 신미지 간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까.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신방과를 전공했는데 기자나 피디가 제겐 너무 멀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대학원 북한학과를 알게 되었고 그쪽으로 전문 분야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언제죠?” “2003년이죠.” “지금보다는 북한과의 분위기가 좋았던 때네요.” “그렇죠.” 그는 특별한 의미부여보다는 경쟁이 덜한 곳에서 자신만의 특기를 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북한학과를 지망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취업을 했는데 마침 그곳이 엔지오(NGO)였어요.”

참여연대 신미지 간사
“활동가 가운데 희생정신,
정의감이 투철한 이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는 이런 선택과 우연을 통해서 상근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물 조절에 실패한 맹탕 라면처럼 뭔가 심심했다. 더 드라마틱한 계기를 기대했던 나한테서 실망감을 읽었기 때문일까. 그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활동가 가운데 희생정신, 정의감이 투철한 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그 길을 선택할 때도 보통 직장을 구하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요.” 이 사람 봄바람처럼 살살 웃고 있으면서도 눈치 하나는 떨어지는 각도가 고드름이다. 고개는 끄떡거렸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 많이 벌어서 자기한테 쓰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계량화할 수 있다. 자동차 배기량과 아파트 평수 그리고 통장 잔고로 말이다. 상근활동가라는 것은 어쨌든 노력에 비해 경제적 결과물이 적은 것 아니냐. 그 길을 대체 왜 하느냐. “저는 좋은 차와 넓은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에요. 종교나 성적 정체성 또는 노동의 종류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저의 꿈이에요.” 옷깃을 여미는 그의 손길이 갑자기 단단하게 보였다. 그의 상대는 힘 좀 쓰는 존재들이다. 기득권, 국방부, 대기업 또는 대한민국 정부. 치고 때리고 상상하는 거의 모든 폭력이 허용되는 종합격투기에서도 최소한의 체급은 맞춘다. 그런데 체급이 너무나 차이 나는 상황. “힘들죠. 하지만 참여연대 회원들과 응원해주는 시민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 든든해요. 특히 시민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요.”

“시청광장 조례개정운동 때
10만명 서명 진행이 더뎠지요.
이게 아닌가 싶었는데
막판에 물밀듯 서명이 쏟아져
정말 감동이었죠”

중국 전통기예인 변검을 보듯이 말랑했던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야무지게 변했다. “시청광장 조례개정운동을 벌일 때였어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의 이야기다. 그때 광장에 차벽이 드리워졌다. 광장 이용이 허가제였고 서울시는 불허했기 때문이다. “10만명 서명을 받아서 (광장 이용을 신고제로 바꾸는) 청원을 하기로 했죠. 그런데 4만밖에 못 모은 거예요. 그래서 이게 아닌가 싶었는데 한달 남기고 갑자기 하루에 수천통씩 서명이 들어왔죠.” 목소리의 템포가 빨라진다. “어떤 분은 전화를 주시더니만 자기가 지금 출장 가느라 도저히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를 시간이 없다며 경복궁 공중전화 부스 속 전화번호부 사이에 끼워놓고 갈 테니 가져가라는 거예요. 정말 감동이었죠.” 시의회를 통해서 올라간 조례 개정안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반려로 무산되지만 다음 시의회에서 재의결되어 결국 통과된다. “우리는 이걸 이기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해요. 활동가들은 이런 경험을 하면 더 힘을 낼 수 있고요.” 그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격투기도 그렇다. 경기를 벌일 때 딱 한번이라도 오른손 주먹이 상대방 얼굴을 맞힌다면, 그 둔탁한 타격감은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그것은 경기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이기든 지든 좋다!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

“지는 경험은 없었나요?” “없을 리가요. 통계적으로 보면 거의 모든 게 지는 경험이죠.” 그는 밝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까 행복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는데요. 전 노래가 좋아요. 가수를 하고 싶어서 8개월간 퇴촌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진작 좀 말해주지. 두시간 동안 이런 이야기를 기다렸는데 말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레이저 광선 같은 게 지나가면서 이만큼 했으면 됐다 하는 느낌이 팍 들었어요. 그때 집으로 돌아왔죠.” “그냥 갑자기요?” “네, 그냥 갑자기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8개월 동안 참 행복했어요. 상근활동가인 지금도 그때만큼이나 행복해요.” “광선은요?” “하하. 아직이요. 이번엔 꽤 오랫동안 광선이 머릿속을 지나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그가 가져온 신문 1면을 보니 ‘4대강 사업과 한식세계화 사업에 대해서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각각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씨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사업들이다. 이 감사 요구에 여당도 찬성을 했고 한식세계화 감사 요구는 아예 새누리당이 먼저 제기했다고 했다. 이렇듯 권력을 가진 이들은 커다란 질서 밑에서 정교하게 움직이며 그 힘을 주고받는다. 신미지 간사는 더 신선하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사이에서 공포를 기반으로 선택을 한다. 명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경제적으로 힘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신 간사는 다르다. 그의 선택 기반은 공포가 아니라 희망이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그는 참여연대 내 밴드모임에서 어떤 파트를 맡는지 한참 즐겁게 설명을 하다가 이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며 총총 사라졌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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