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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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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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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날리던 글쟁이에서
청년사업가 변신한 장미영씨
소비자가 직접 색칠하는
에코백 만들어 화제 “어렵고 힘든 사업
재미까지 없으면 왜 하나요
내 제품 사람들이 즐거워할 때
재미도 두배로 늘어납니다” 4월11일 서울시 청년창업지원센터 인근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만든 직접 색칠하는 에코백을 꺼내서 설명을 주욱 늘어놓는다. 인터넷을 달궜던 유머 작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업가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왜 갑자기 사업을 하시게 된 거죠?” “음… 재밌잖아요.” “재미요?” “네, 재미.” 재미를 발음하면서 고개를 위에서 아래로 강단있게 내렸다. 최대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사근사근 이야기하던 그가 취한 가장 강한 몸짓이었다. 영리한 사람이다. 내가 그의 제품이 아니라 그라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자신에 대해서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원래 섬유공예를 전공했는데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휴학을 했죠. 그때 막 벤처붐이 일던 시기였어요. 아는 분 소개로 청소년 포털사이트에서 일을 시작했죠. 꽤 인기를 끌었는데 그 회사 임원이 회삿돈을 갖고 튀는 바람에 순식간에 망했어요. 그래서 다른 일을 찾다가 인터넷 신문에서 일을 하게 됐지요.” 에세이집을 내고 동화 일러스트를 그렸으며 라디오에도 종종 출연했다고 한다. 그가 가진 글솜씨는 꽤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을 것이고 경제적 생활에도 큰 도움을 주었으리라. 출판기획 등을 하는 회사들을 다니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했는데 돈도 꽤 벌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1년쯤 지나자 갑자기 모든 일이 다 끊기고 그의 말에 따르면 가장 안 좋은 형태로 연애도 끝나고 만다. “정말 최악이었죠. 몇달 동안 폐인으로 지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청년창업지원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재미예요. 일이라는 것은 모두 힘들고 괴롭잖아요. 그런데 재미마저 없으면 어떡해요. 제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제품으로 만들어서 파는 거,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대충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이 됐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진짜로, 정말로.”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직종과 정갈한 단어로 정리 가능한 직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넌 재밌게 산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장미영씨의 생각은 이렇다. “재밌는 글이나 행동 또는 제품은 그 완성된 결과물이 그렇다는 거지, 사람이나 일이 재밌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런 부분이 힘들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특히나 그랬단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외주를 받아서 일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일 시킨 사람이 입금은 하잖아요.” “그렇죠. 입금은 나의 힘! 그런데 직접 사업을 하니까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못 벌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왜 사업을 해요?” “조금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제가 직접 즐거움을 느꼈다면, 사업을 하면서 제가 만든 제품을 쓰는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때 특히 아이들이 즐거워할 때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의 눈동자가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번쩍거렸다. 장미영씨는 다시 가방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펼쳤다. 내 시선에서 정면이 되도록 정확하게 펼치는 모습이 꽤나 익숙해 보인다.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은 많아요. 그래서 멋을 부리기보단 재미 쪽에 포인트를 줬죠. 이건 엄마와 아이들이 직접 색칠해서 쓰는 에코백인데요. 밑그림들은 모두 각각의 스토리가 있어요. 비가 와서 풀과 나무들이 기뻐하고 동물들은 비를 피하는 장면이에요. 엄마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색칠을 하는 거죠.” 그는 에코백을 개발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행사, 무슨 단체에서 하는 행사 가리지 않고 모두 나가서 직접 전시를 했다고 한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에겐 어디에 쓸 것이며 누구에게 줄 것인지 등등을 모두 다 물어보고 기록했단다. 이 사람 사업가 다 됐다. “처음에 직접 행사를 나갔던 게 2년 전이었어요. 무슨 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렸던 아트마켓이었는데 그날은 마침 제 생일이었어요. 멋지지 않아요? 생일날 생애 첫 아트마켓 출품!” 그가 입을 가리며 호호호 웃는다. “그런데 겨우 4000원짜리 파우치 하나 팔았어요. 날씨가 추워서 손님도 없었고 안 팔린 물건을 바퀴 달린 카트에 가득 싣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 뛰다가 미끄러져서 버스 밑으로 들어가기도 했어요. 집에 와서 펑펑 울었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2년 전 일본 프로레슬링 무대 데뷔전이 생각났다. 15분의 경기가 끝나고 나에게 쏟아졌던 야유와 조소. 이런 쓰라린 아픔을 이야기하며 웃는다는 것은 나이먹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제가 만든 에코백에 색칠을 한 다음에 엄마 손 붙잡고 신이 나서 춤을 추면서 가더라고요. 뿌듯했죠. 내가 저 아이에게 유년 시절의 재미를 하나 더해줬구나. 전 다른 사람에게 재미를 주면서 살 겁니다.” 그는 재미라는 단어를 자신의 삶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설정을 완료했다. 아직 특허출원중이라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더 재미난 아이템이 있다며 혹시 누가 들을지 모르니 조금 더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의 신제품 설명을 은밀하게 귓속말로 들으며 인터뷰는 끝났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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