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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1 17:52 수정 : 2013.05.01 17:52

박종식 기자 제공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profile

남희석
1971년생, <미녀들의 수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 진행. 2010년 ‘SBS 10대 스타상’ 수상.

“이제 인터뷰 모드로 갑시다.” 내가 녹음기를 켜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편하게 부르던 매니저에게도 “○실장, 종이랑 볼펜 좀 갖다줘요”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트위터 덕분이다. 많은 이들이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연예인을 팔로하고 마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처럼 흥분하다가 금세 실망에 빠진다. 자의든 소속사의 방침이든 간에 그들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사생활만 공개한다. 즉 연예인이라는 자영업자의 측면에서 마케팅을 위해 자신의 사생활 중 일부를 진열대 위에 올려놓는 것뿐이다.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남희석은 달랐다. 여러 이슈에 울고 웃으며 때론 분노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싶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4월26일 금요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선배들한테 배운 게 참 많아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그가 나오는 에스비에스 <좋은 친구들>에서 ‘비교체험 극과 극’을 재미있게 봤다고 하자 그가 운을 떼기 시작했다. “군 제대하고 서세원 선배를 따라다닌 적이 있었는데 서 선배는 대본이라는 지도를 따라가다가 오아시스를 만나면 그곳에서 실컷 놀고 끝내는 스타일이죠. 최양락 선배는 예민하고 섬세한 천재죠. 웃음 테크닉에선 최고 기술자예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은 자세에서 시선을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볍게 몸 전체로 리듬을 타면서 술술 말을 꺼내놓는다.

“어느 날 전유성 선배가 성석제, 이외수 이런 분들의 책 26권을 저한테 주고 가더라구요. 읽어보라면서 말이죠.” “읽었어요?” “안 읽었죠. 26살인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전 선배가 저를 보더니만 ‘안 읽었지? 하긴 읽기가 쉽지 않아. 책이란 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휙 지나가더라구요.” 그 소리에 오기가 발동해서 하루에 한권씩 모두 독파를 했다고 한다.

잘나가던 시절 개그맨 선배
전유성이 주고 간 26권의 책
‘안 읽었지?’ 한마디에
하루 한권씩 독파

사회적 약자들과 호흡
“착해서가 아니라요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있어요.
그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해요.”

그는 대선배인 전유성씨의 조언을 항상 적극 따랐다. “전 선배가 지리산에 몇 달 들어갔을 때 엽서를 보냈어요. 거기에 ‘넌 될 것 같다’고 적혀 있었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 것도 능력이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엄청난 노력을 수반한다. 그러고 보니 눈매가 매우 사납다. 삼백안이라고 해서 눈동자 아랫부분에 흰자위가 보일 때가 있다. 관상학을 믿진 않지만 유난히 파이터 중에 삼백안이 많다. 이 이야기를 하자 “아, 그래서 제가 하회탈 캐릭터를 쓴 거예요. 인상이 좀 사납거든요.” 역시 자신을 잘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개그맨 출신이지만 엠시를 주로 하고 있다. 요즘 엠시는 어머니 비밀의 손맛 엠에스지(MSG)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10여명의 연예인을 앉혀놓고 10시간씩 촬영하면서 더 독하고 더 센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계속 펌프질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작가가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을 기록하고 여기에서 배제되면 박수 치며 웃는 장면만 화면에 나간다.

그는 조금 다르다. “그건요, 제가 착하거나 또는 착한 척을 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있어요. 그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 전 프로라고 생각해요.” 그의 방송 프로 중엔 유독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들이 많다. 외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시골 어르신, 새터민 등등. “2001년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뉴스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제가 먼저 찾아갔어요” “어디를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요. 내가 뭐 도와줄 거 없냐고 그랬죠.” 그는 홍보대사를 자청했고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같은 연예인으로서 대목 때도 행사 대신에 그들과 축구 시합을 하고 농성장에서 라면을 같이 먹었다고 한다. “제가 영어는 못하지만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서툰 한국말을 진짜 잘 알아요. 몇년을 접하다 보니 귀가 트이더라구요. 예를 들면 ‘배오우픈데사님이데려요’ 이게 ‘배고픈데 사장님이 때려요’라고 바로 들리는 거죠.”

“문장은 슬픈데 웃기네요.” “정말 웃긴 건 나중에 ‘미녀들의 수다’ 할 때 작가고 피디고 외국 여자들이 하는 말을 처음엔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프로그램에 도움이 많이 됐죠.” “선의를 통해서 쌓은 노하우가 본업에 도움이 되는?” “그렇죠.” 서로 키득키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씩 했다.

그는 요즘 기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제가 좀 무식해요. 어떤 사건을 보고 표피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죠. 하지만 기자들은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서사와 맥락을 알고 있잖아요.” 게으른 사람은 본인이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결코 무식한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 정보를 수집하시죠?” “저는 연예인이죠. 대중을 때론 공기처럼 들이쉬고 물속에 들어가듯이 헤엄쳐야 하는데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죠.” 그는 롱런을 위한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요즘 라디오에서 연락이 와요. 시사를 해보라는데 아직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그는 갑자기 개그맨의 과장된 표정으로 목을 빼면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김 프로도 유식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네, 뭐….” “레슬러는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김 프로는 그 선입견을 뒤집어서 자신을 부각시키는 거잖아요.” 헉, 영업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그 반전의 코드는 김 프로한테 잘 어울려요. 하지만 저는 남희석이잖아요. 저한테는 ‘개그맨인데 똑똑하네’라는 것보다는 이미 이름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시사교양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게 맞다고 봐요.” 그는 운이 좋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개그맨 공채도 한번에 합격했고 군 제대 후에도 슬럼프가 없었다. 가난과 무명이 없으며 장가까지 잘 갔다며 운이 좋은 남자라고 했다.

남희석은 분명 운 좋은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진짜 프로만이 갖고 있는 꾸준함이 있다. 마라토너가 42.195㎞를 2시간10분대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100m를 18초에 뛰어야 한다. 최정예 군인을 선발하는 사관학교 입학시험 100m 종목 1등급이 13초인 것을 생각하면 일반인이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을 2시간 넘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라토너다. 프로의 미덕을 아는 마라토너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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