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09 11:42
수정 : 2012.02.09 11:47
임경선의 남자들
어떤 남자가 가장 섹시하냐고 물으면 나는 ‘장례식의 남자’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이런 불경할, 하지만 이건 솔직한 진심이다. 장례식의 어떤 남자냐 하면 정확히는 상주, 구체적으로는 아들이다. 상복을 입고 국화꽃 불단 옆에서 무릎 꿇고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그 남자 말이다. 검정 양복에 흰 셔츠, 검정 넥타이와 흰 장갑은 슬픔의 제복이다. 머리칼은 며칠 못 감은 듯 적당히 헝클어져 있고 군데군데 며칠 새 늘었을 법한 새치도 보인다. 이미 몇 차례 몰래 눈물을 흘린 몇 겹의 흔적이 표정 사이사이 스친다.
빈소를 찾은 우리는 예를 갖춰 국화꽃을 바친 뒤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그 남자와 맞절을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극배우처럼 무척 형식적인 대사를 치지만 그래도 서로의 눈빛은 진지하고 목소리는 또렷한 듯 절제되어 있다. 언뜻 본 영정의 그분과 눈매가 참 닮았구나 싶다. 인사를 나눈 뒤 그는 다시 밀랍인형처럼 본래의 그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더는 그 남자에게 말을 붙여서도 손을 뻗어서도 안 된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 가슴에 저미어 내 단편소설에도 등장시킨 적이 있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는 여주인공은 어머니를 여읜, 사랑하는 그 남자의 상가를 허락 없이 찾아간다. 그는 그녀의 등장에 몹시 놀라지만 그 동요를 숨길 만큼은 자상하다. 그가 가끔 이쪽 방으로 건너와 테이블 사이로 오가면서 친인척과 선후배, 직장동료, 그리고 장인장모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구석에서 바라보는 그녀는 여태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반평생 역사의 파노라마에 잠시 마음이 고양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그 남자는 슬며시 다가와 술 한잔을 따라주고 있다. 여주인공은 첫날밤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그가 따라준 술을 조심스레 목 안으로 넘기며 문득 그의 검은색 상복을 빨아주고 며칠 씻지 못한 그의 몸도 직접 닦아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왜 슬플수록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지는지, 왜 죽음을 의식할수록 체온이 그리워지는지, 그런 몹쓸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데 그 수치심이 가슴 터지도록 기쁘다.
돌아가신 분이 만일 ‘어머니’라면 그 애틋함은 배가될 것만 같다. 뿌리 잃은 남자라니, 어떻게 그런 남자를 위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또다른 여자’였던 어머니. 그 태고의 품을 저버린 슬픔이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동시에 이젠, 남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그 남자의 버거워 보이는 결단의 뒤태, 그 밑도 끝도 없는 가부장제마저 이때만은 관능으로 다가온다. 그 남자, 잠시 안경을 벗고 무방비 상태로 눈을 비비네….
물론 상주 말고도 그 자리엔 다른 남자들이 존재한다. 가령 친자식이 아닌 사위들. 문간에서 돈봉투를 받아서인지, 아니면 덩치 큰 사위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다소 경박한 몸짓으로 이리저리 문상객들을 맞이해서 그런지, 섹시는커녕 눈에 하염없이 거슬릴 뿐이고, 장례식의 여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영심이처럼 이마에 흰색 리본핀을 조잡하게 꽂아서 그런지, 역할분담상 육개장 쟁반을 들고 날라야 해서 그런지, 아니면 심지어 며느리들은 은근히 이 상황을 좋아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상주와 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젠 결혼식보단 장례식에 더 많이 불려갈 나이다. 긴장해야겠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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