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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13 16:57 수정 : 2012.06.13 16:57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나가사와 선배’는 내게 ‘마성’의 상징이었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대학 기숙사 선배인 그는 잘나고 이기적이고 야비하고 나쁜데 매력적. 아름답고 우아하고 상냥한 ‘하츠미’를 애인으로 두고서도 노골적으로 다른 여자들을 섭렵한다. 감상적이고 예민한 와나타베는 너무도 괜찮은 그녀, 하츠미씨가 아깝고 안쓰럽다.

“이상해요. 하츠미씨 같은 분이라면 그 누구와도 행복해질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나가사와 선배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는 거죠?” 물론 그녀도 알고 있다. 애인으로서는 형편없는 남자임을. 주변에서 관두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도망가는 것도 생각해봤을 것이다. 도망갈 수 있었다면 진작에 도망갔다. 도망갈 수 없으니까 고통스럽다. 그저 말없이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건 좀 위험하다’ 싶었을 것이다. 착하고 좋은 사람인 줄만 알았더니 막상 만나보니 나쁜 남자였네? 같은 건 마성의 남자가 아니다. 그건 인생이나 연애 경험이 없어서 엉뚱한 것을 고른 ‘실수’거나 자기 성격의 취약한 부분이 상대에게 딱 걸려 휘둘림당하는 ‘악연’이다. 순수한 마성적 끌림은 딱 본 순간 ‘아, 이건 안 되겠군. 항복’ 같은 것. 마음 단단히 먹으면 초반에 물러설 수도 있지만 다리가 굳는다. 그러고는 스스로 다독인다. 누굴 너무 좋아하면 무기력해지고 슬퍼지는 게 정직한 거잖아? 행복해지려고 사랑하는 것만도 아니잖아? 여자는 힘들어도 감히 “난 당신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야?”를 물을 수 없다. “네가 ‘내 여자’라는 사실만은 틀림없잖아”라며 남자는 언짢아하며 여자의 어깨를 확 끌어당겨 안아버릴 테니. 그래, 상처를 받아도 이건 ‘내 남자’한테 받는 상처니까 괜찮다. 나가사와 선배 가라사대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니까.

하지만 온몸으로 ‘위험한 색기’를 풍기는 남자만이 마성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여자에게 마성은 다른 여자에겐 전혀 마성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여자에겐 불확실한 것이 불안한 것보다 더 고통이다. 그녀들에겐,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정직하고 성실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남자가, 상대를 구속하지도 않고 구속되지도 않으려는, 그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직하고 현실적인 선의가, 더 미쳐버릴 것만 같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과 행동을 계측할 수 없기에 너 마음대로 해, 라며 마음이 약해져서 주저앉아 백기를 들어보지만 그 남자는 여자가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사슴의 눈망울로 ‘나를 이해해주는 건 어쩌면 당신뿐’이라며 슬그머니 그녀의 옆에 털썩 똑같은 포즈로 주저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차라리 그럴 때는 ‘내가 어디까지 기어올라야 할지 정확히 한치 앞서 눌러주는’ 나가사와 선배가 구원이다. 수평선처럼 아득한 와타나베가 차라리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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