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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7 17:10 수정 : 2012.06.27 17:10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십대 끝자락에 경험했던 연애 중 하나는 외국인 남자와의 연애였다. 그의 나라도 나의 나라도 아닌 제3의 나라에서 우리는 이른바 <비포 선라이즈> 같은 연애를 했다. 이별의 시기는 기정사실이라 하는 수 없이 헤어졌지만 그와 나는 한동안 국제우편으로 사랑을 다짐했다. 이러다가 얘랑 결혼하나 싶기도 했다.

성장기 시절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에 한때는 내가 국제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딱히 외국 남자를 더 좋아해서라기보단 한국 남자들이 ‘너 같은 여자, 한국 남자는 감당 못할걸?’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외국인 남자는 당시 나를 위해 잠시 배신했던 원래의 여자친구한테 돌아갔다.

오년 후 내가 이십대 중반 무렵, 우리는 재회했다. 그가 내 연락처를 알아내서 자신이 일본에 출장 갈 일이 있는데 가는 길에 너 보러 일부러 한국에 들르겠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 팝아티스트들이 일본 공연 있을 때 서울 잠깐 들르는 꼴이냐! 재회의 찰나는 살짝 감동적이었지만 내 나라에서 겪는 그와의 며칠은 왠지 숨 막히고 진절머리가 났다. 게다가 당시 그는 약혼한 몸이라 뭔가 상황 자체가 께름칙했다. 나는 점점 그를 앙칼지게 대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열심히 그 상황에 낭만적 의미 부여를 하다가 귀국했다.

그로부터 또 어언 십여년 세월이 흘렀다. 구글을 통해 서로를 다시 찾아내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로’ 서울에 출장 올 일이 생겼다. 각자 다 가정이 있고 중년에 접어든 나이니 옛 친구 보는 심정으로 관대하게 만나도 괜찮겠거니 싶었다. 그는 내게 비싼 밥을 사주며 자신의 일과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 구 여친, 현 아내는 그사이 외도도 하고 우울증도 걸리고 살이 많이 쪘다고도 했다. ‘그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구나’라며 나는 그가 거쳐온 삶을 위로했다. 좀 지나 이번에는 그가 ‘정기적으로’ 서울 출장을 오게 되었다며 흥분된 어투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차단했다.

처음에는 한동안 안 쓴 영어로 그와 대화하는 게 힘들고 귀찮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의 소통에 대한 의욕 자체를 상실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아무리 외국인이라는 특수성을 지녀도 우리는 결국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성인남녀가 비밀리에 연락하고 만나자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코리안 바비큐집이 어딘지, 코리안 캐주얼 로컬푸드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다든지 하는 개연성 없는 잡소리는 집어치워! 국적이 다른 두 남녀 사이에 일어날 문제는 국적이 같은 두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문제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적의 차이 따위보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그 어떤 차이보다 더 큰, 절망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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