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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0 18:07 수정 : 2013.03.20 18:07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전업으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한 지 어언 8년 차가 되어간다. 세월 참 빠르다. 그 전에는 대기업을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회사원을 하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면 내가 오랜 꿈을 이루었다고 짐작했다. 물론 가끔은 인터뷰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꿈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글 쓰는 직업이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하물며 ‘예술’이 ‘밥벌이’보다 더 숭고하고 의미있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글 쓰는 일만 하게 된 것도 몸이 아파 물리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부업으로 하던 ‘차선’의 글쓰기가 본업이 되어버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대학병원 정기검진에서 갑상선암 재발 수술 판정을 받던 7년 전의 그날도 여느 때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주였다. 과로로 이틀 걸러 링거를 맞는 등 이미 몸 컨디션이 무척 안 좋은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임신하고 싶어 배란일 조정을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옆 건물 산부인과에 몰래 다니던 것도 생각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또 몇 년간 임신은 늦춰야 했다. 그것도 망했다. 머리가 멍한 상태로 회사로 다시 들어왔지만 이 상황을 어찌 할지 막막했다. 어느새 나는 한 남자 상사에게 사내 메일을 쓰고 있었다. 1분도 채 안 돼서 전화가 울렸다. 지금 바로 올라오라고.

“당장 관둬.”

동대문 일대가 통유리창 너머로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33층의 사무실에서 난생처음 나는 상사에게 잘렸다.

“휴직 같은 거 할 생각 말고 오늘 짐 싸서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날카롭고 빠른 그의 어조에 나는 모든 긴장과 노여움이 풀리고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좀전 사무실에서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해준 말은 “몇 달 휴직하고 건강 챙겨서 다시 회사 나오면 되지, 뭘 걱정이야”였다. 그런데 이것은 원 ‘걱정하지 마, 그동안 네 책상 안 뺄게’라는 다독임도 아니고 딱 잘라 관두라고 윽박지르는 그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말해 놓고선 그는 평소대로 퉁명스럽게 울지 말라며 티슈박스를 거칠게 내게 건넸다. 나는 ‘화장실’도 아닌 ‘회장실’에서 마음 놓고 코를 실컷 풀다 나왔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가 나를 자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태 골골대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인생 경로를 바꾸는 일은 생각 외로 어렵다. 나도 스스로를 못미더워했던 것을 그는 앞장서서 믿었다. 다시 회사에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회사에서 일했던 것 못지않게, 회사 다닐 때 그에게 몸소 배웠던 것처럼, 내 일을 조직의 도움 없이 스스로 어떻게든 만들어나갈 것을. 그런 모습을 그에게 보이는 것이 진심으로 내 몸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를 기꺼이 ‘잘라준’ 상사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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