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7:44
수정 : 2013.04.03 17:44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일본 유학 시절 유일한 연고는 일년 먼저 와서 같은 대학의 다른 과 대학원을 다니던 선배 K였다. 선배는 내가 살던 요양병원처럼 생긴 원룸아파트에서 세 정거장 건너 있던 근사한 외국인 국비장학생용 기숙사에 살았다. 선택받은 그 학생들이 부러웠지만 그것은 선택받기보다 그들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선택한 결과였을 뿐이었다.
K선배와는 아무리 좋게 말해보려고 노력해도 애초에 친하거나 잘 맞을 타입은 아니었다. 객지에서 학교 선후배로 재회했다 해서 바로 살갑게 오누이처럼 챙기거나 연인관계로 발전할 개연성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선배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자 국내 최고 학벌 출신으로 그의 하얗고 부들부들한 우유 빛깔 얼굴을 보노라면 인생에서 좌절이나 실패를 무엇 하나 겪었을까 싶었다. 처음 내가 같은 학교에 나타났을 때 눈이 휘둥그레지며 ‘네가 여길 왜?’라며 가당치 않다는 듯한 시선을 보였지만 그래도 뭐라 하긴 뭣한 게 난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반면, 그는 늘 바쁘게 당면한 목표에 남다른 집중력으로 몰두했기에 그 부분의 차이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를 반갑게 챙겨주지 않은 것에 대해 내심 서운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원래 알던’ 사람이니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의존성은 의외로 컸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에게 돈을 빌린 것은 그 선배였던 것이다.
생활비에 심하게 쪼들리던 나는 버티고 버티다가 속상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민원을 넣었지만 입금되기까지의 시간에도 먹고살 돈이 필요했고 부탁할 사람은 그밖엔 없었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다음주까진 꼭 갚아야 한다… 나 원래 누구한테 돈 빌려주는 거 절대 안 하는 사람이거든.”
한숨을 짧게 내쉬며 그가 말했다. 그는 음색이 남자치곤 너무 가늘었는데 채권자가 되자 한 옥타브쯤 더 올라갔다. 자기 공부 외엔 뭣 하나 성가신 것은 다 거부하겠다는 듯한 단호한 모습으로 그는 나를 이끌고 근처의 에이티엠(ATM)기기에 가서 2만엔을 빼서 주었다.
빚진 상태가 자존심 상했는지 며칠 뒤 돈이 입금되자 한달음에 선배네 기숙사로 날아갔다. 채무자 주제에 상도덕에 어긋나게 속으로 ‘치사하고 더러워서’라는 말을 몇 번 되뇌었다. 이래서 돈 빌려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나 보다. 기숙사로 걸어가는데 땀이 온몸에 흠뻑 배는 무더운 열대야였다. 뭘 하다가 나온 선배는 바빠서 미치겠다며 부채로 연신 허옇게 뜬 얼굴을 부쳐댔고 현관문 앞에서 돈만 받고 바로 다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것이 그를 살아서 본 마지막이었다. 4년 뒤 그는 칼(KAL)801편 괌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주말 난기류로 심하게 요동치는 도쿄행 비행기 안에서 시트벨트를 챙기며 나는 그를 불현듯 떠올렸다. 젊은 죽음의 장례식은 가본 중 가장 처참했다. 그런 식으로 가버리면 정말 곤란했다. 별로였던 사람이 잘되는 것보다 몇 곱절은 더 마음이 불편한 것이, 별로였던 사람이 상상 이상의 고통과 비극을 겪는 일이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