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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7 17:47 수정 : 2013.04.17 17:47

[매거진 esc] 임경선의 남자들

삼세번이라는 숫자는 관계에 있어서 의미있는 숫자인가 보다. 만나는 상대가 별로라는 친구에게 우리는 ‘눈 딱 감고 세번만 만나봐’라고 조언하고 스토킹도 삼세번 이상이면 경범죄로 구분된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삼세번 잘 만나다가 그쯤에서 멈추기로 합의된다.

서로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멈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쪽이 조금 더 좋아해서 그 불균형이 불안해진 걸 수 있다. 상대의 겉모습을 더 좋아하다가 보고 싶지 않은 서로의 속내를 조금씩 마주하면서 좋은 모습으로만 상대를 기억하고 싶다. 관계에 대해 서로가 바라는 것이 다름을 스멀스멀 느낀다. 세번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유롭고 좋았지만 세번 이후론 흐릿했던 공기가 선명하게 두 사람을 감싼다. 무리하고 싶진 않고 상대에게 무리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더 깊어지기엔 두 사람이 ‘맞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서로 알아차렸다. 애들처럼 상처와 배신 운운하며 촌스럽게 원수 되고 싶지 않고.

“우리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안 될까?” “그래, 너의 생각을 존중할게.” 이렇게 말한 후 연락이 자연스레 끊기기도 하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쯤에서 보지 않을 것을 납득하기도 한다. 혹자는 그사이 육체적 관계를 맺은 것을 두고 의미부여하며 아파할 수도 있지만 침대에서 시작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침대에서 끝나는 관계도 있다. 침대의 문제는 그저 과정일 뿐, 그것이 어떤 결과를 주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하게 허락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와 상관없이 계속 볼 관계는 어떻게 해도 인연이 닿을 것이고 안 될 관계는 무엇을 거쳐도, 아니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어긋난다.

지금 이 세번째 만남 즈음이 둘이 뜨거워질 수 있는 최고치임을 알고 그 앞에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야비하기보다는 어른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좋은 마음일 때 무언의 합의를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방을 빼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용기와 인내와 지혜가 동반한 정말 가까운 사이니까 가능한 결정인 것 같다. 그 관계에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지만 실패했을 때 그걸 상대 탓으로 돌리거나 그걸로 상대를 원망하고 싶진 않으니까.

우리의 일상 속엔 옆에서 누가 봐도 명백한 통렬하고 가슴 아픈 이별들만 있는 게 아니다. 소리소문 없이 시작했다가 잠시 서로를 알아가다가 입밖으로 거론되지도 않은 채 아스라이 사라지는 이런 ‘삼세번의 관계’들이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어느새 당사자들조차도 거론은커녕 이름도 가물가물하겠지만 그런 망각은 차라리 서로에게 구원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겪어본 이들은 그 경험의 감각만은 예민하게 남아 타인들의 삼세번 관계가 절로 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아, 저 두 사람 사이에 분명 뭔가 있었구나’ 같은 느낌. 물론 보이면서도 모른척 해주기로 한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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