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8 17:11
수정 : 2012.04.18 17:11
[매거진 esc] 김산환의 캠퍼캠퍼
좌식 테이블, 비닐 패널 등 캠핑족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한국식 캠핑용품들
지난 1월, 서울 중랑가족캠핑장. 추운 날씨에도 사이트는 만석이었다. 대부분 원룸만한 커다란 리빙셸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리빙셸 텐트들 중 절반가량은 텐트 입구 쪽이 특이했다. 투명한 비닐막(패널)이 남향으로 친 텐트의 입구 쪽 전체를 덮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닐막을 통해 릴랙스 체어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캠퍼들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추운 겨울, 텐트 안에서 햇살을 쬐고 난방효과도 거둘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였다. 오, 영리한 한국의 캠퍼들이여.
한국인은 창의성이 뛰어나다. 천연자원이 절대 부족한 이 나라에서, 그나마 이만큼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줄 아는 창의성 덕일 것이다. 이런 정신이 캠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비닐 패널을 이용해 텐트 안으로 태양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경우는 다른 나라 캠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북미나 유럽에선 추운 겨울에는 캠핑을 거의 가지 않는 게 상식이라, 그런 창의성을 발휘할 이유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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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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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캠퍼들의 창의력 발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캠핑장 곳곳에서 이들의 임기응변 능력이 확인된다. 옷걸이를 화장지걸이(사진)로 만들어 쓰거나, 물을 담은 비닐장갑을 텐트 입구에 매달아 파리를 쫓는 건 지금은 널리 사용되는 방법. 탁자에 홈을 파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장착해 ‘일체형 버너·조리대’를 만들어 쓰는가 하면, 겨울에는 서큘레이터(공기 순환장치)를 이용해 난로로 데운 공기를 텐트 구석구석까지 보내는, 펜션 뺨치는 난방시스템을 자랑하기도 한다.
지난해 유행했던 ‘좌식 캠핑’도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캠핑 스타일이다. 방바닥에서 생활하는 한국의 문화에서 착안한 것으로 거실텐트 등에서 쓰는 테이블이나 의자의 다리를 없애, 방바닥에 앉듯이 텐트 바닥에 앉아서 캠핑을 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캠퍼들의 이런 노력들을 캠핑장비 제조업체가 모른 체할 리 없다. 그래서 텐트 안에서 햇살을 쬘 수 있는 비닐 패널 같은 것도 상품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재빠른 대응은 중소규모 제조업체의 몫이다. 이들 업체는 그냥 모방만 하는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신제품 발표회 때 ‘한 가지 더’라는 것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듯이, ‘한 가지 더’를 추가해 오히려 기성 제품보다 기능성이 향상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메이저 업체가 원가를 맞추고, 제품 라인의 차별화를 위해 텐트 폴을 저렴한 스틸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 때, 중소업체는 과감하게 알루미늄 합금 폴을 채택한다. 여기에 가격까지 낮춰서 내놓으니 소비자가 어찌 외면하겠는가.
최근에는 ‘글램핑’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화려하다(glamorous)와 야영(camping)의 합성어인 글램핑은 고급스런 캠핑을 뜻한다. 호텔이나 대형 리조트에서 잔디밭에 캠핑장비를 세팅해놓고, 투숙객이 바비큐를 하며 잠시 캠핑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몇 시간 이용료가 호텔 숙박료와 맞먹을 정도로 비싼데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캠핑이 대세다 보니 객실을 파는 호텔과 리조트들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이들의 발빠른 마케팅과 역발상에 일단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편의성만 강조한, ‘무늬만 캠핑’에는 쉽게 동의하고 싶지 않다.
김산환의 캠퍼캠퍼 <캠핑폐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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