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25 17:33
수정 : 2012.07.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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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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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동네마다 늘어나는 벼룩시장들…역사가 없는 ‘신상’ 판매 경쟁하는 부작용도
여름에 어울릴 파란색 웨지힐을 샀다. 구두를 본 친구들은 어떤 브랜드냐고 물었다. “모르겠는데?”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진짜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구두를 구입한 곳은 몇 달 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복합문화전시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세상에 모든 아마추어’라는 이름의 벼룩시장에서였다. 보안여관 안팎에 들어찬 판매자들은 자신이 입고 신던 것들을 늘어놓았고, 나 같은 참가자들은 숨은 보석이라도 찾겠다는 마음자세로 옷가지들을 뒤적였다.
벼룩시장은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벼룩이 들끓는 쓰던 물건까지 내놓아 판다’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3년 전 출장 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 벼룩시장을 찾았다. 각자 삶의 흔적이 담긴 온갖 물건들이 햇빛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오래된 손목시계에 관심이 가 기웃거렸더니, 뜨개질을 하던 할머니는 웃으면서 시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추정되는(프랑스어는 1년 정도 배웠지만, 도무지 알아듣기가 힘들다)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20유로(약 3만원)를 주고 빛바랜 금빛 손목시계를 샀다.
요즘 한국에서 벼룩시장은 벼룩만큼이나 많아지고 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은 구별, 동별로 벼룩시장이 거의 하나쯤은 있을 정도이다. 동대문구의 서울풍물시장부터 마포구 홍익대 앞의 예술벼룩시장은 그 역사가 꽤 깊은 축에 속한다. 새로 떠오르는 벼룩시장의 유형은 ‘복합문화’ 벼룩시장쯤 되겠다. 그냥 벼룩시장만 열고 마는 게 아니다. 예술작품 전시와 길거리 공연은 거의 필수적이다시피 한다. 구매자들을 이끄는 요인도 되겠지만, 벼룩시장이 그저 중고품의 유통 통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 신상품의 유통 경로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문화 기업’임을 자처하는 한 대기업도 ‘벼룩시장’ 시장에 뛰어들었겠는가.
벼룩시장을 꼭 거리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친구들 여럿이 한집에 모여 벼룩시장 파티를 여는 것도 즐거운 놀이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올해 봄 친구들을 모아 안 쓰는 색조화장품, 옷, 구두, 가방을 거실에 늘어놓고 딱 1시간 동안 물건값을 흥정하며 벼룩시장 놀이를 했더니, 그 뒤 친구들 사이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부해졌다. 단골 메뉴인 연예인, 연애 이야기는 설 자리가 없었더랬다. 만나면 카페, 식당, 카페를 전전하며 계속 먹는 게 다반사였는데, 다들 새로 마련한 중고품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서로 조언을 해주느라 바쁘다.
벼룩시장이 워낙 뜨다 보니, 부작용도 물론 있다. 중고품이 아닌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 아닌 벼룩시장도 있다. 벼룩시장에서 쇼핑하기를 좋아하는 추지아(29)씨의 경험 한 토막. “중고품에 담긴 분위기라는 게 있다. 강남구에서 열리는 한 벼룩시장에서 옷 한 벌을 샀는데, 얼마 뒤 동대문의 의류시장에서 똑같은 옷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벼룩시장에서 굳이 옷을 비롯한 패션 아이템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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