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2 17:26
수정 : 2012.08.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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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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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레인부츠 유행과 함께 상륙한 외국 브랜드들…늦여름 장마도 인기에 한몫
‘가을 장마’란다. 폭염이 지나가고 말간 햇빛과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을 기대했건만, 낮 최고기온은 좀처럼 30도 이하로 내려가질 않고, 여기에 습기까지 더해졌다. 8월 중순 이래 폭우가 자주 내리자, 거리 곳곳에는 레인부츠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기온이 너무 높아 답답하고 더워서 신지 않았던 레인부츠를 이제야 꺼내 신고 있는 것이다.
레인부츠의 역사는 꽤 깊다. 유럽에서 신기 시작한 이 신발은 150여년 전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 아이템보다는 작업신발이나 진짜 비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길이가 긴, 무릎 아래까지 오는 것은 루스핏이라고 일컫는다. 바로 요즘 국내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레인부츠이다. 빗물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엔 미끄럼 방지 요철이 있고, 소재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고무라서 러버부츠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레인부츠가 등장한 것은 진흙탕에서 펼쳐지는 록페스티벌과 함께였다. 7월이나 8월 한창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열린 록페스티벌 공연장은 폭우가 쏟아지면 진흙 구덩이로 변했다. 이때는 많은 사람들이 레인부츠를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레인부츠는 록페스티벌 패션의 상징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레인부츠가 외국에서도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된 역사에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 시작된 영국 남부 서머싯 지역에서 열리는 유명 음악 페스티벌인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역시 진흙탕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이곳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레인부츠는 유럽 음악 페스티벌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갔다.
시작은 록페스티벌과 함께였다면, 전성기는 ‘이상기후’와 함께 찾아왔다. 장마라기보다는 ‘우기’라는 말이 더 맞는 여름 날씨가 이어지기 시작한 3년 전부터였다. 서울 한복판에 열대기후에서나 볼 수 있는 ‘스콜’과도 같은 폭우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아무리 단단히 채비를 해도 온몸이 젖는 것을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성 소비자들은 레인부츠를 찾기 시작했다. 레인부츠가 처음 등장한 시기에 길이는 많이 길지 않았다. 복사뼈 위를 간신히 덮을 정도의 레인부츠가 많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길이가 짧은 레인부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대부분은 긴 것을 선호한다. 패션도 패션이지만, 들이치는 빗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에는 긴 레인부츠가 더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폭우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으니, 길이도 그만큼 길어지는 셈이다.
요즘 120년 됐다느니 150년 역사를 자랑한다느니 하는 레인부츠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 속속 상륙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북유럽 지역에서 온 브랜드가 많이 등장했다. 북유럽 디자인 열풍에 북유럽 레인부츠 브랜드들도 순풍을 업고 순항하고 있다. 독특한 색감은 이곳 브랜드들의 명징한 특징이다. 어떤 디자인 요소보다도 간단하지만 강렬하다.
아직 레인부츠를 사지 않았다. 아마 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롱 레인부츠를 신기에는 신발장이 한참 모자란다. 게다가 반짝 한 철 신을 레인부츠를 사기에 여름은 너무 많이 지나가 버렸다. 가을 장마, 그리고 겨울 함박눈 올 때 꺼내 신으면 될 일이라고 주변에서 권한다. 다른 이유는 지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에 레인부츠? 생각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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