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9 16:15
수정 : 2012.04.19 16:15
[매거진 esc] 그 남자의 카드명세서
게으름 피울 때마다 경고 메시지 보내는 엘지(LG)전자의 디지털 만보기 ‘라이프그램’
겨우내 퇴적을 거듭했던 살들이 이제야 무서워졌다. 여름이 오면 더는 튼실한 몸을 가려줄 수 있는 겉옷 따위, 입을 수 없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불규칙한 생활 패턴 탓에 선택지는 생각보다 적었다. 퍼스널 트레이닝은 시간 대비 효율이 높지만, 너무 비쌌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건 해볼 만큼 해봤고, 실패할 만큼 실패했다.(하루이틀 가고 말았던 게 도대체 몇 번이던가.) 먹는 걸 줄일까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경험상 힘든 일이었다. 알고 있다. 핑계가 많은 건 ‘다이어트 루저’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차라리 일상의 운동량을 늘리자 생각했다. 자동차 대신 도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 활동량을 어떻게 체크할 것이며, 게으름과의 타협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시중에는 개인의 활동량을 상시 체크해주는 이른바 디지털 만보기가 꽤 나와 있다. 나이키의 ‘퓨얼밴드’, 모토롤라의 ‘모토액티브’, 엘지(LG)의 ‘라이프그램’(
사진) 정도가 눈에 띄는 제품들이다.
사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퓨얼밴드와 모토액티브였다. 두 제품 모두 매력은 있었지만 퓨얼밴드는 아저씨가 차기에는 오색찬란한 발광다이오드(LED) 라이트가 좀 부담스러웠고, 모토액티브는 ‘뭘 저렇게까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지나치게 고성능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가격. 퓨얼밴드는 30만원대, 모토액티브는 40만원대였다. 봄이라 가뜩이나 지인들의 결혼식이 많아 통장이 비었기에 부담스러웠다. 내게 필요한 건 첨단 기능 같은 게 아닌데. 내 운동량을 체크해주거나, 잔소리만 좀 해줄 수 있으면 되는 건데. 그렇게 고심 끝에 엘지 라이프그램을 골랐다.
이 녀석도 3축 가속 센서와 진동 센서 등을 바탕으로 이동 거리나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기본적인 기능은 같다.(체감상의 정확도는 아주 만족이다.) 대신 다른 제품들보다 훨씬 심플하다. 손목시계 모양의 형태에 나타나는 정보는 딱 필요한 기능만, 필요한 만큼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적절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13만원 정도에 팔고 있어 헬스장 한달 다닐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구입 뒤 만족도는 꽤 높다. 달리기 같은 역동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가사나 사무 활동 같은 작은 움직임도 꽤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것도 좋았지만 제일 맘에 드는 건 자꾸 주인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거다. 예컨대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있으면 손에서 진동이 울린다. 운동하라는 거다. 스트레칭이라도 하라거나, 산책이라도 하라며 자꾸 나를 채근하는 메시지들. 쉽게 타협하는 나와 달리, 이 녀석은 기계라 타협이 없다. 그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렇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트레이너였다. 기계에게 ‘갈굼당하는’ 게 짜증나서 휴일에도 자꾸 움직이게 되는 걸 보면 괜찮은 선택이었다.
최근에는 하루의 목표 칼로리를 정해두고 거기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퇴근할 때까지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일부러라도 걸어서 목표치를 달성하고 난 다음 들어간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꾸준히만 할 수 있다면 올여름에는 굳이 배에 힘 안 주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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