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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24 18:06 수정 : 2012.10.24 18:06

이기원 제공

[매거진 esc] 그 남자의 카드명세서

철들고 이해하게 된 여동생 첫 출산에 선물한 아기띠 맨듀카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세 남매 중 둘째인 동생은 평탄하게 살았던 나나 막내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문제아였다. 학창 시절에는 요즘 말로 일진이었다. 중학생치고는 ‘쎈’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고, 교복 스커트는 따로 재단해서 한껏 올리고 다녔다. 가출을 감행하지는 않았지만, 귀가 시간도 늘 늦었다. 맘 약한 부모님은 속으로 끙끙 앓았다. 장남 된 입장으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좋은 말로 회유도 하고, 화도 내보고,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런 시기에는 반탄력이 강해 찍어누를수록 튀어오른다는 걸.

동생을 통제하려 할수록 관계는 최악을 향해 치달았다. 서로 말은커녕, 좁은 집 안에서 스쳐 지날 때조차 아는 척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말은 막내를 통해서 했고,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할 때조차 서로의 입에 시퍼런 칼날이 돋아 있었다. 냉전 기간은 상당히 길었다. 굳이 관계를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참 치졸하고 한심한 행동이었다는 걸 안 건 한참이나 뒤였다.

서로가 대학에 들어가고 철이 들면서야 얼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대단한 친밀감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서로가 마음을 닫고 지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데면데면한 남매였다.

지난 연말 동생은 결혼을 했고, 얼마 전 아이를 낳았다. 추석 명절 동안 내려갔던 고향에서 처음 동생이 잉태해 낳은 조카의 얼굴을 봤다. 그 사고뭉치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니. 과거의 다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묘한 기쁨과 죄책감이 동시에 일었다. 오빠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엇나가지 않아준 데 대한 고마움, 첫 조카를 보는 희열로 두개골이 어지러웠다. 조카와 동생을 위해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처음 생각했던 건 유모차였지만 맘에 들었던 스토케 유모차는 200만원에 가까웠다. 가격의 압박 앞에서 잠깐 비틀거리다가 차선으로 아기띠를 생각했다. 평상시였다면 인터넷을 뒤졌겠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과거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여러 아기용품 전문점과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보고, 만지면서 맨듀카라는 브랜드의 아기띠(사진)를 골랐다. 100% 유기농 소재라는 것도 맘에 들었고, 다른 제품들과 달리 별도의 비용 없이 신생아부터 4살까지 착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품질이 나쁜 아기띠는 엄마들의 허리를 위협한다는 뉴스를 봤던 터라, 허리끈도 유심히 살폈는데 거의 유일하게 유선형이라 동생의 허리도 괜찮을 것 같았다. 30여만원을 들여 물건을 사고 배송까지 끝내니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한 전화겠거니 생각했지만, 전형적인 부산 여자인 동생은 퉁명하게 말했다. 최근에 프리미엄 라인이 나왔는데 그걸 사지 왜 구형을 골랐냐고, 몇 만원 아끼려고 구형을 샀냐고. 동생과의 관계는 다시 냉담해졌다.

이기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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