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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0 18:38 수정 : 2013.02.20 18:38

[매거진 esc] 그 남자의 카드명세서
삼성 와이즈Ⅱ 2G 핸드폰

기술 발전이 너무 빨리 이뤄지다 보니 언젠가부터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스마트폰이 그렇다. 연세가 드신 분들께 스마트폰은 쓸데없이 비싸고 복잡한 기계 덩어리일 뿐이다.

물론 일부 어르신들은 문자메시지에 이모티콘을 넣기도 하고, 각종 애플리케이션도 자유롭게 사용하신다지만 내 부모님은 다르다. 두 분은 아직 문자메시지도 쓰지 않으신다. 몇 번 문자메시지를 넣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려 했지만 두 분 모두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면 되지, 왜 번거롭게 메시지 같은 걸 쓰느냐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1년 전쯤, 고장난 부모님의 구형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렸다. 한창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던 시점이었고, 시중에서 자판을 누르는 형태의 폴더형 핸드폰을 찾을 수 없어서이기도 했다. 얼마 전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스마트폰 쓰기가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쓰는 기지 뭐. 그런데 판때기에 대고 눌리는 기 별로 좋지는 않구마는. 전에 쓰던 것 같은 거는 인자 못 사나?” 터치 방식의 스마트폰이 여전히 불편하신 모양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다시 한번 예전 같은 폴더형 핸드폰을 하나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만으로 뭔가 효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침 삼성이 2년 만에 새로 출시했다는 폴더형 핸드폰이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크기도 적당해 보였고, 무엇보다 자판이 큼직해 보이는 것이 맘에 들었다. 직접 한번은 봐야겠다 싶어 핸드폰 대리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서너군데 매장을 돌아다닐 때까지 뜻밖에 피처폰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떤 곳에서는 제품이 다 팔렸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제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스마트폰을 바꿀 때보다 판매원들의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다는 걸. 그들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기원 제공
다섯번째 매장에 가서야 그 2G 핸드폰을 만져볼 수 있었다. 손에 잡히는 그립감은 확실히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보다는 좋았고, 무게도 가벼웠다. 무엇보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부모님이 사용하시기에 버튼의 크기나 배치가 좋아 보였다.

다행히 직원은 친절하게 기계에 대해 설명해줬다. 화면에 표시되는 글씨를 확대하는 기능이나, 10초 동안 전화를 받지 않으면 벨소리와 진동을 키워주는 기능 등은 부모님께 적절할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히던 찰나 직원의 마지막 설명을 들으며 울컥하고 말았다.

“이 제품에는 안부알림 기능이라는 게 있어요. 미리 설정해놓은 기간 동안 핸드폰을 안 쓰시면, 지정된 사람한테 경고 메시지가 가요. 요즘은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친절한 판매원에게는 미안했지만 아무래도 계신 곳에서 개통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매장을 나왔다. 곧바로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했다. 40만원을 부칠 테니, 이 핸드폰을 사드리라고. 문제의 안부알림 기능도 꼭 등록하라고 했다. 아직 개통 전이라 좋아하시는지 확인은 못했다. 다만 내가 먼저, 더 자주 부모님께 연락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매해 명절마다 생각했지만 항상 지키지 못했던 결심이다.

이기원 <젠틀맨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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