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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1 18:13 수정 : 2013.05.01 18:13

이기원 제공

[매거진 esc] 그 남자의 카드명세서

체중의 증가가 가져온 변화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는 후덕해(사실은 늙어) 보인다거나, 예쁜 옷을 못 입게 된다거나 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코골이의 악화였다. 만성적인 수면 문제를 가져왔고, 일상이 쉽게 피로해졌다.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코골이 수술? 병원 치료? 생각은 했지만 늘 생각만으로 끝나는 게 문제였다.

그러던 얼마 전 아내가 아팠다.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이비인후과로 함께 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 병원 문을 나서려던 순간 아내가 말했다. “온 김에 코골이 진료나 좀 받아봐. 나를 위해서라도.”

코를 고는 사람은 몰랐지만, 옆에서 자는 입장에서는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아내가 너무 화가 났던 날에는 자는 내 볼을 꼬집어 깨워버린 적도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피곤하거나, 술깨나 마신 날에는 알아서 거실에서 자곤 했었다. 온 김에 검사나 한번 받아보자 싶었다. 요즘은 병원에서 굳이 하룻밤을 자지 않아도 간단한 기계를 허리에 매는 것으로 문제점을 체크할 수 있었다. 착용이 편한 것에 비해 검사결과는 심각했다. 의사는 코골이가 문제가 아니라 수면 중 무호흡이 문제라고 했다. 무호흡 지수가 30 이상이면 위험한 편이라는데, 내 경우 수치가 50이 넘었다. 의사는 코골이보다 우선 수면무호흡증을 고치자고 했다. 공감했다. 개운한 아침을 맞은 적이 거의 없었거니와 발작적으로 급격한 피곤이 올 때도 많았다. 그게 다 무호흡 증세의 악화 때문이었다.

제일 좋은 건 다이어트. 그리고 당장의 차선책으로 의사가 권해준 건 바이오가드(사진)라는 제품이다. 입에 끼우는 마우스피스 같은 형태다. 이 제품을 낄 때만큼은 아래턱이 조금 더 나오는 주걱턱의 형태가 되면서 그만큼 기도가 많이 확보되는 원리다. 내 경우 기도가 좁은 편이므로 이걸 늘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코골이에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가격이 150만원이었다. 좋은 옷 한벌 살 때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건강에 투자하는 건 왜 이렇게 아까운 걸까. 고민이 잠깐 있었지만, 수면의 질이 향상되기만 한다면 해볼 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강력히 원했다. 나보다 아내가 더 골치인 상황이었다. 금니를 뜨듯 이빨의 모양을 떴고, 1주일 뒤 제품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이물감이 심했다. 마우스피스를 입안에 넣고 자는 셈이라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정면으로 잘 때는 괜찮았지만, 옆으로 돌아눕거나 뒤집어 누우면 잠을 깨기도 했다. 요령이 없던 처음에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기도 했다. 아래턱에 미세한 힘을 주는 원리라 턱이 조금 뻐근하기도 했다(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다). 그렇게 잠을 청하고 일어나자마자 바이오가드를 입에서 떼냈다. 안 좋은 냄새가 풍겼다. 고여 있던 침과 입안의 미세 세균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질문을 아내에게 던졌다. “나 코 골았어?”

다행히 아내의 대답은 ‘노’였다. 아내는 평상시보다 확연히 코 고는 소리가 줄었다고 말해줬다. 사실 효과는 몸이 먼저 느꼈다. 플라세보 효과일 수도 있지만 12시간을 자도 개운한 적 없던 아침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물론 이건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이와 턱 근육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장치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손실은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입이 너무 답답하다 보니 착용한 지 5일밖에 안 된 지금도 가끔은 너무 답답해 빼고 싶다. 하지만 단기적인 처방책으로는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상쾌한 아침의 시작을 침냄새 가득한 보형물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건 좀 고역이지만, 늘 죄책감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기원 <젠틀맨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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