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09 16:04
수정 : 2012.02.09 16:04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겨울은 야구가 없는 계절로 통한다. 선수들도 한겨울 휴지기를 갖고 각자가 알아서 몸을 만든다. 사회인 야구의 겨울은 어떤가. 나는 동계 훈련비 12만원을 완납하고도 하필 토요일마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훈련에 참가 못했다. 이러다 난 아마 후보로 밀릴 것이다.
운동 좀 한다는 남자에게 야구 이야기를 하면 그의 눈빛은 대번에 전광판처럼 빛난다. ‘나도 공 좀 던지고 받을 줄 알지’ 하는 자신감이 있다. 어릴 적 글러브 가지고 좀 놀아봤으면 속으로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제일 잘나가.’
이런 자신감으로 만만한 마음에 야구에 나가면 그의 착각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프로야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지만, 정작 그의 폼은 어딘가 엉성하다. 그가 던진 공은 빨랫줄처럼 뻗어가진 않고 흐물흐물 포물선을 그리다가 애꿎은 곳으로 향한다. 흩어진 자존심을 다시 모으려 어깨에 힘을 주고 공을 던진다. 그는 결국, 근육통에 밤새 시달릴 것이다.
많은 운동종목이 그렇듯, 야구 또한 공의 감촉과 친해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스토브리그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선수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만들 것이다. 스프링캠프를 떠나 경쟁자를 물리치려고, 감독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종국에는 야구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야구선수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들 대부분은 공의 감촉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완전무결한 야구공이나 글러브, 배트가 되기 위한 고행을 택한다. 평범한 땅볼을 유려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가 연습으로 받아내는 펑고(연습용으로 가볍게 쳐내는 배팅)는 수천번이 넘는다.
나는 지금 공의 감촉이 지금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곧 시작할 리그에서 벤치로 물러날 것 같다.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그렇다. 사회인리그에서도 후보인 셈. 그러나 괜찮다. 내게 필요한 감촉은 따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공에 대한 각자의 감촉을 몸에 새긴다. 마을버스 기사님은 최동원의 커브처럼 비탈진 골목 사이를 유려하게 운행한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배트를 거꾸로 들어도 3할은 친다는 교타자처럼 순대를 가지런히 썬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공의 감촉을 몸 깊숙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쯤 내 몸에 공의 감촉을 새길 것인가. 곧 봄이 온다. 이렇게 연재를 시작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대한의 감촉을 믿고, 글러브 속에서 문장의 실밥을 만지작거린다. 사인을 받고, 와인드업. 떨린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서효인 시인·문학인야구단 ‘구인회’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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