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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7 18:36 수정 : 2012.03.07 18:36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그해 가을 우리 팀은 첫 게임을 했다. 아주 엉망으로 졌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포천 어딘가에서 34 대 3으로 졌을 것이다. 그때 상대방 감독은 끝까지 우리 팀을 사정없이 박살냈다. 이쯤 되면 살살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원망도 했다. 우리는 매회 수비를 다사다난하게 30분 넘게 하고, 공격은 매회 간단한 공식처럼 5분 안으로 끝냈다. 울고 싶었다. 그때 상대팀 감독이 말했다. “배울 때 확실히 배워야죠.” 울음 속에서 폭포 같은 오기가 생겼다. 야구를 (잘)하고 싶다.

그해 겨울 우리 팀은 강원도 횡성으로 야구 여행을 떠났다. 루키 리그에 속한 팀만 온다는 정보가 있었고, 한우도 먹고 싶었다. 그러나 첫날 더블헤더 두 경기 모두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날 두번째 게임의 상대는 ‘굿 애널리스트’팀이었다. 문인 대 금융인의 대결이라니, 흥미진진했을 것 같지만 역시나 초반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투수는 지쳐서 스트라이크를 거의 던지지 못했고, 어쩌다 들어오는 공은 모조리 배트를 맞았다. 잡을 수 있는 타구는 놓쳤으며, 잡을 수 없는 타구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5회를 넘겨 그들이 공격할 차례가 되자 존을 벗어나는 공에 헛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르고, 간만에 삼진을 잡은 우리 팀 투수에게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그런데 삼진당한 상대방 선수가 씩 웃는 게 아닌가. 모종의 모멸감이 견제구처럼 닥쳐왔다. 뒤에서 상대방 선수들이 말했다. “야, 대충 하고 얼른 들어와.” 경기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악수를 거부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야구를 못했으니까.

다음날 야구 여행의 마지막 게임은 첫날 두 게임을 모두 이긴 최강팀과의 만남이었다. 전날보다 훨씬 추웠고, 사회인 야구팀으로 첫 겨울이었던 우리는 추위를 피하는 방법을 몰랐다. 상대편에게는 버너와 주전자가 있었다. 커피를 얻어 마시며 야구를 했다. 얼어붙은 내야 공이 튀면 얼음 알갱이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역시 우리는 콜드로 지고 있었고 1점만 더 있으면 콜드를 면할 수 있었다. 2사 3루에서 타석에 선 막내가 느린 땅볼을 치고 얼음의 땅으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내야 안타. 그 하나의 안타 때문에 우리와 그들은 한파 속에서 야구를 40여분 더 해야만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우리 팀도 이제는 꽤 야구답게 야구를 한다. 엊그제는 시즌 첫승도 했다. 야구답게 야구를 하는 법을 우리는 안다. 그건 이기는 방법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요령이다. 일부러 삼진을 당하고, 일부러 볼넷을 주는 건 야구가 아니다. 누군가는 야구를 그깟 공놀이라고 한다. 그렇다, 공놀이 맞다. ‘놀이’는 늘 최선의 순간에 재미와 감동을 준다. 우리는 야구에서 재미와 감동을 원한다. 공놀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는 아마도 그를 봐주지 않을 것이다. 3월이다. 진짜 ‘야구’를, 진심으로, 보고 싶다.

서효인 시인·문학인야구단 ‘구인회’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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