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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23 18:00 수정 : 2012.05.23 18:00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까진 무릎에서 아릿한 통증이 밀려온다. 보통 무릎이라는 건, 부잡하게 나다니는 유년 시절에 잘 깨진다. 30살이 넘은 성인 남자가 무릎이 깨져서 피가 나는 상황은 흔치 않다. 하지만 나는 오른쪽 왼쪽 가릴 것 없이 다 까져서 소독약을 발랐고, 청바지에 상처가 닿을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이건 다 슬라이딩 때문이다. 슬라이딩에는 홈런과는 다른 야성이 있다. 프로야구가 주는 쾌감 중에 빠른 주자의 빛나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빼놓을 수가 없다. 2루를 훔칠 때, 짧은 안타에 홈으로 파고들 때, 야수의 태그를 피해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야구 선수의 몸, 그것이 슬라이딩이다. 그가 세이프 판정 뒤에 훌쩍 뛰어오르며 훌훌 유니폼을 터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가. 나는 홈런 세리머니보다 3루타 슬라이딩이 더 좋다.

그러나 사회인 야구에서 지나친 슬라이딩은 금물이다. 그냥 넘어지는 것 같아도, 꾸준한 연습에 의해서 자연스러운 슬라이딩은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맨땅에 몸을 긁어대는 것이기 때문에 무릎이나 팔꿈치,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기 쉽다. 그러니까 일반인의 슬라이딩은 슬라이딩이 아니라 ‘밥상 엎어뜨리는 며느리’ 혹은 ‘낙하하는 바다새우’ 정도가 되겠다. 나는 홈에서 바다새우처럼 슬라이딩했다. 2사 1·3루에서 더블스틸 상황이었고, 생각보다 상대팀의 수비가 기민했다. 머리부터 들이밀며 몸을 던져 1점을 벌었다. 감독님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붕 떠서 찰파닥 드러눕더군.” 꼭 슬라이딩 때문은 아니지만, 사회인 야구 경력 3년 동안 여러 부상을 봤다. 팔꿈치가 골절된 선배를 따라 구급차도 타보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기습번트를 대다가 자기의 타구에 눈을 강타당해 푸르뎅뎅해진 형의 눈도 보았다. 캐치볼 도중 한눈팔고 시시덕거리다가 안면에 공을 맞고 흘리는 코피를 닦아준 적도 있다. 겨울 야구에서 도루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친 형도 있다. 모두 건강하길 간절히 바란다. 다치지 말란 말이다.

어느새 야구를 ‘보는 것’보다 야구를 ‘하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그건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다. 야구는 단단한 돌멩이로 하는 경기이기에 움직임에 비해 다치기 쉽다. 땅은 거칠고, 공은 딱딱하고, 몸은 굳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다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잊고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 아직 남은 이닝이 있으므로. 야구를 시작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은 이기자, 파이팅하자, 잘 치고 잘 던지자, 그런 말이 아니다. 바로 이 말이다. “다치지 말자.” 당신,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우리 부디, 다치지 말자.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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