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0 17:17
수정 : 2012.06.20 17:17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빠 시끄럽단 말이야!” 아이는 불콰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가 퍽 창피했나 보다. 야구장이었다. 7 대 0이었던 스코어는 8 대 0으로, 다시 9 대 0으로 제 몸집을 불렸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고, 응원하는 팀은 원정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에게 점수를 내주고 있었다. 그들은 더이상 할 수 있는 바가 없다는 듯이 점수를 뽑지 않았다.
아저씨는 성을 냈다. “야! 이게 야구냐?” 아이의 아버지는 안타를 맞고 공을 놓치고 헛스윙을 하는 선수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평일 저녁에 크게 마음먹고 온 야구장 나들이에서, 응원하는 팀은 형편없이 지고 있다. 9 대 0이 되는 순간(포수는 투수의 공을 잡지 못하고 3루 주자는 홈을 밟는다) 분을 못 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한다. “너희는 사인을 똥구멍으로 주고받는 거냐?” 사람들이 푹푹 웃으며 아저씨를 쳐다보고, 아이는 아버지만큼 얼굴이 빨개져서는 급기야 우는 것이다. “아빠, 제발 조용히, 응?”
나? 나는 물론 그 옆에 앉아 캔맥주를 폭포수처럼 식도에 들이붓고 있었다. 결국 스코어는 13 대 0이 되었다. 응원석에는 사람들이 끝내 자리를 뜨지 않고 응원가를 불렀다. 오늘의 야구는 진정 엉망진창이어서 눈 뜨고 보기 힘든 지경인데, 사랑한다고 너 없이 못 산다고, 고백이 한창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직도 삐쳐 있는 아들에게 묻는다. “아빠 때문에 울었어? 그렇게 시끄러웠어?” 아이는 대패한 팀의 어린이용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폭포처럼 시간은 흐를 것이고, 어른이 된 너는 지금 이 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겠지.
가끔 아버지와 야구장에 간 적 있다. 아버지는 포수 뒤편 지정석을 선호했다. 팩소주를 꼴깍꼴깍 삼키면서, 어린 나의 질문과 까불거림 같은 건 콘아이스크림으로 막아버렸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담배를 피웠는데(그때까지만 해도 경기장 내 금연은 유명무실했다), 좁은 야구장 스탠드에 쭈그리고 앉아 인상을 쓰고 있는 그 모습이 유난히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1루에서 누군가 그물에 올라타고 외야에서 누군가 병 같은 걸 던지기도 했다. 아, 우리 아빠는 점잖구나, 생각하면서 동시에 아, 우리 아빠는 좀 약하구나,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1점도 못 내고 경기가 끝났다. 아버지는 어느새 늦둥이로 보이는 아이를 무등 태우고 야구장을 빠져나간다. 아이는 이제 울음을 그쳤겠지. 아빠는 속으로 울 것이다. 나도 왜인지 조금, 울고 싶기도 했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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