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8 17:45
수정 : 2012.07.18 17:45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대학 1학년 때다. 야구장에 가면 꼭 친구 한 놈이 1루 응원석 바로 앞자리를 고집했다. 치어리더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도 봐야지, 야구장에 왔는데.
지금도 치어리더를 바라보는 야릇한 시선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로 이닝과 이닝 사이에 걸 그룹 최신 곡에 맞춰 춤을 춘다. 공격 시에는 유려한 팔 동작으로 응원을 유도하며 경기장의 흥을 돋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치어리더의 복장인데, 주로 핫팬츠에 배꼽 부근이 시원하게 드러난 상의를 걸친다. 춤을 아주 잘 추며, 표정 또한 좋다. 그들을 쳐다보지 않을 방법이 우리에겐 없다.
요즘은 배트 걸도 인기다. 사직 구장에 배트 걸은 홈런 친 선수와의 하이파이브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더니, 온라인 야구게임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는 후문이다. 다른 많은 구단도 마찬가지다. 배트를 나르는 단순한 업무를 젊고 아리따운 여성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체로 시원시원한(?) 의상을 착용한다.
텔레비전에서도 젊은 여성의 활약은 대단하다. 중계 카메라는 경기 도중에 틈만 나면 그날 관중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을 찾아 비춘다. 응원하는 팀의 저지를 입고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물론 아름답다. 중계 카메라는 귀신처럼 그런 여자 관중을 찾아낸다. 경기가 끝나고 바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야구 프로그램 또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몫이다. 4사 야구 방송 진행자는 모두 여자고, 인기에 따라 야구 여신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의 덕목은 ‘예쁘면서 야구도 잘 아는’ 여자인 것 같다.
여기까지 열거하니, 야구팬 모두가 최전방에서 8개월째 휴가를 나오지 못한 ‘김 상병’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왜 야구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자의 몸에 눈길을 주는가.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요즘은 야구가 대세다. 여성과 어린이, 가족 단위 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야구팬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예쁜 여성 때문에 야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제 친구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야구장을 찾는다. 이제는 굳이 1루 응원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어른이 된 것일까. 내 친구는 변했는데, 이 사회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사람의 몸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앵글이 부담스러운 건 나뿐인가. 이제 야구에 집중하고 싶다. 야구를 봐야지, 야구장에 왔는데.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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