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8.15 19:31 수정 : 2012.08.15 19:31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사회인 야구단 아저씨들은 야구 시합을 기다린다. 카페에 시합 공지가 뜨면 선수들은 부리나케 댓글을 단다. 참석합니다, 또는 불참합니다. 아무래도 불참하는 쪽이 말이 많다. “푹 자고 싶어서” “드라마 재방송을 봐야 해서” “날씨가 너무 덥지 않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시시함을 타파하기 위해 주말마다 모이는 거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집안 행사로” “가족 나들이가 있어서” “이번주까지 야구 하면 저 정말 쫓겨나요”.

사회인 야구를 하는 아저씨의 가장 큰 적은 가정사다. 특히 ‘그분’이라 불리는 형수님들의 성정은 때로 사회인 야구단의 근간을 흔드는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기도 한다. 10구단 탄생을 막는 대기업의 오너와 비견될 막강한 힘으로 에이스의 출전을 방해하거나 4번 타자의 멘탈을 붕괴시키기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선수라고 하더라도 ‘부인님’에게는 힘없는 남편일 뿐이다. 야구선수가 아니다.

인정한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 평일에는 야근이니 회식이니 회식을 빙자한 술자리니 하여 가족과 멀리하고 심지어 주말까지 다른 아저씨들과 어울려 야구랍시고 공놀이를 즐긴 후에 술까지 거나하게 먹는 가장이라니. 하지만 어쩌랴, 이야말로 다 야구 때문인 것을.

그렇다고 가족을 야구장에 데려오기도 힘들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는 멋진 풍광에 시설이 좋은 야구장에서 장동건과 김수로가 야구를 하던데, 내가 나가는 리그의 야구장은 그냥 흙벌판이다. 운이 안 좋으면 응원하는 내내 햇빛을 받아야 한다. 예민한 형수님이 구경 오시면 종래 마른오징어가 되어 몹시도 짜게 굴 것이 분명하다. 누구에게? 바로 흙밭에 자신을 방치하고 즐겁게 야구 하시는 남편님에게.

가뜩이나 야구장 수는 부족한데, 있는 야구장 시설 또한 가족 나들이로는 한참 부적격이다. 하긴 프로 경기를 하는 구장도 시설 때문에 골머리라는데,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뛰는 경기장 말해 무엇에 쓸까. 4대강에 보는 세워지고, 제주도에 해군기지는 만들어지지만 야구장은 그냥 벌판에 줄 그어놓고 쓴다. 아무래도 이래서야 ‘사회인 야구’와 ‘가족’은 화해하기 힘들겠다.

야구장이 아닌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야구 팀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총각 때 많이 야구 해라. 지금이 네 야구 인생의 전성기야.” 지금 나는 전성기다. 그리고 이제 쇠락할 일만 남은 것이다. 미래의 부인님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평소에 잘할 테니, 주말에 야구 하러 나가는 거 눈 꾹 감고 봐주세요. 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서효인의 야구탓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