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9 18:14
수정 : 2012.08.29 18:14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최근 한 잡지에서 은퇴한 외야수 정수근의 인터뷰를 보았다. 해설위원으로 야구계에 복귀한다는 소식보다 반가운 건, 그의 천진한 웃음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야구선수가 야구장에서 웃음을 보이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우리는 가벼운 사람의 진지함에 대해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장에서 다소 가벼워 보였던 선수가 몇 명 있었다. 그들의 발랄함을 우리는 1군 무대에서 보았으니,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난 선수들일 것이다. 은퇴한 정수근 말고도, 지금 롯데에서 활약하는 홍성흔, 기아에서 한화로 옮겨 날카로운 스윙을 보여주는 장성호 등의 선수가 야구장에서 잘 웃었다. 기아 팬이었던 필자는 기아가 한참 지고 있을 때 장성호가 짓는 그 묘한 미소에서 몇 번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쉽게 웃을 수 있을 때까지 현장 밖에서 반복한 노력의 시간들, 몸에 밴 훈련의 흔적들, 운동선수의 결기 같은 것. 야구장은 야구선수에게 작업장이나 사무실 같은 공간이다. 우리는 야구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때로 받을 수도 있지만), 기분전환을 한다. 그들은 야구를 하며 돈을 벌고 인생을 건다. 짧은 선수 생활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도 있지만, 변변치 않게 지나간 선수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이 거의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시간 대부분을 돈을 벌기 위한 공간에서 보내며, 거기에 인생을 건다. 일주일 동안 6번 이어지는 야구 경기처럼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해야 하고, 휴가에는 다시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한 재충전을 해야 한다. 경쟁에 뒤처지면 2군으로 내려가고, 루저가 된다. 나쁜 운수를 만나면, 정수근처럼 일찍 은퇴할 수도 있다. 시비를 거는 취객처럼, 곳곳에 불행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어이, 거기. 오늘 왜 병살 쳤어?
그러나, 그래도, 그리하여 우리는 웃어야 한다. 이런 삶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오늘 저녁, 짧은 야근 후 동료와 맥주를 마시며 중계를 보았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무기력한 연패에 빠졌다. 나는 지는 것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든 것은 그들의 처진 어깨였다. 이봐, 여기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 열심히 했으면, 당당해도 괜찮아! 그리고 나는 또 이어서 생각한다. 이봐, 아까 병살은 왜 친 거야? 하루가, 대답 없는 행인처럼 지나가고, 또 다가온다. 그러니까 우리, 당당하게 살자.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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