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2 23:58
수정 : 2012.09.12 23:58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프로야구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노동시장의 비정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600만명이 넘는 관중이 야구장을 찾는다. 그중에는 이제 갓 꿈과 희망을 찾아나서는 청년의 수도 상당할 것이다. 그들은 야구장에 와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가 이력서를 쓰고, 혹은 인턴 생활을 하고, 아니면 스펙을 쌓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거나,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나 학자금 대출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것이다. 그리고 짬을 내서 다시 야구장에 올 것이다.
2012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는 675명의 지원자 중 95명이 지명을 받았다. 15%가 되지 않는 취업률을 보인 것이다. 그해 고등학교나 대학교 야구팀 졸업반은 대부분 드래프트에 원서를 낸다. 1순위로 지명된 선수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직장인 프로야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각종 언론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10순위에 지명된 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박봉의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들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한다.
지명을 받더라도 그들이 프로선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야구팀에 정해진 선수 인원은 63명이고, 그중 26명의 선수가 1군에서 뛴다. 신인이 63명 안에 들어가려면 기존의 선수 중에 1명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1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주전으로 경기를 뛰기 위한 경쟁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야구선수로서 살아가기 위한 경쟁이 오히려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야구부였던,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한, 늘 2군에 있다가 은퇴한, 신고 선수로 입단해 곧 방출당한…. 수많은 선수들의 토대 위에서 스타플레이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스타플레이어도 실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새로운 선수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이렇듯 야구장의 경쟁 체제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마추어 선수부터 억대 연봉을 받는 사령탑까지, 야구장의 모두는 경쟁을 계속한다. 낙오된 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없다.
1, 3루 관중석에는 직선타로 날아오는 파울볼로부터 관중을 보호하기 위한 망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운 없이 공에 맞아 다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해도 운이 없거나 타고난 능력이 부족해 자본주의의 파울 타구에 맞아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말이 있다. 태어난 모두는 일정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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