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31 18:51
수정 : 2012.10.31 18:51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금요일 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짧은 가을이 가고, 긴 겨울이 오는 징표로 보여 S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S는 금요일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S는 이른바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기 위해 홍대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중이었다. S는 생각한다. ‘멘붕’ 다음으로 유행하는 말이 ‘불금’인 것 같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혹사당하여 ‘멘붕’된 현대인의 멘탈을 제자리에 놓기 위하여, 우리는 매주 금요일 밤을 활활 태우는 게 아닐까. 어쨌든 S는 새벽 늦게 귀가했다. 긴 시간 술잔을 마주하면서도 S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절주했다. 그건 다 야구 때문이었다.
토요일 새벽에는 야구 경기가 있다. 시즌은 끝났지만, 기상관계로 미뤄진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추첨에 의해 아침 7시 경기가 잡혔고,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시2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S는 비칠거리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술 냄새를 풍기면서도 야구 장비를 챙겼다. 다음날 빠르게 출발하려면 아무래도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았다. 비가 계속 왔으면 또 연기됐겠지만 이런 날씨에는 경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 오랜만에 긴 외출을 허락한 아내는 그런 S의 모습에 잠이 깨어 혀를 끌끌 찼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두어 시간이 지나고, 얼마 남지 않은 어둠이 걷힐 때, S는 눈을 번쩍 떴다. 벌써 시간은 6시10분. 대충 세수만 하고 유니폼을 입고 차에 시동을 건다. 그의 아내는 또다시 혀를 차며 눈을 흘긴다. 어이구, 그게 그렇게 좋으냐?
S는 뒤통수가 찌릿함을 느꼈지만, 그것보다는 게임에 지각하지 않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직 어스름한 야구장에 잠이 덜 깬 사내들이 모였다. S가 도착했을 때는 S를 제외한 팀원이 도착해 플레이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전날의 숙취가 몸에 고스란히 머물고 있었다. 새벽 게임은 대체로 엉망이었다. 상대방 실수로 몇 점을 내고 시작했지만, 1이닝에 연속 4실책을 저지르면서 바로 대량실점을 하고 만다. 이런 게임은 결국 컨디션 싸움이지. 감독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밤새 술을 조금 덜 마신 팀이 이기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콜드패 했다. 게임이 끝나고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집에서 잠이나 잘걸 그랬나, 생각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순대를 앞에 두고, 소주를 몇 병 더 시켰으니까.
그게 그렇게도 좋은 사내들이 주말 아침에 모여 땀을 흘린다. 좋은 걸 어떡하나. 보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하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S는 이동하고 있다. 야구는, 불금보다 뜨겁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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