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4 18:11
수정 : 2012.11.14 18:11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는 소식이다. 포스팅 최고 입찰액은 애초 예상을 훨씬 웃도는 액수가 찍혔고, 그 주인공은 낯익은 이름, 엘에이 다저스이다. 이제 류현진은 다저스와 한달 동안 계약조건을 두고 협상을 벌여야 한다. 몰려든 취재진에개 류현진은 이렇게 답했다.
“에이전트가 알아서 해줄 거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이 문장에서 류현진이 벌써 메이저리거가 다 되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는 쓸 수 없는 용어가 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일본에서는 법률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존재로, 선수 대신 구단과 연봉 및 기타 조건을 협상하고, 언론 접촉이나 광고 계약 등 운동 바깥의 일을 처리한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본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미식축구·농구·야구 선수 등을 컨트롤하며 그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약간(?)의 보수를 받고.
케이비오에서는 에이전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국내 최고의 대기업과 혈혈단신 상대해야 한다. 그들은 야구에서는 프로지만, 협상에서는 그냥 아저씨일 뿐이어서, 대개 구단의 뜻대로 협상은 마무리되고는 한다. 원구단과 협상 마지막 날, 혹시나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며 구단 사무실 앞에서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 협상 첫날에 구단 간부가 선수를 찾아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계약을 성사시켰단 이야기, 지명이 유력한 고졸 선수를 몰래 데려다 메디컬 테스트를 했다는 이야기…. 이런 설들은 미담 같지만 사실 아저씨들이 벌이는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다. 에이전트가 체계적으로 해야 할 일을 선수(혹은 지도자)와 구단 직원이 짝짜꿍하듯 해치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흔히 교수 집단이나 고위 공무원 모임을 꼽는다. 하지만 케이비오를 따라올 조직은 없다. 올해까지 케이비오의 이사진을 이루었던 8개 구단은 선수협회도 반대했고, 선수노조는 당연히 반대할 것이고, 에이전트는 말할 것도 없이 반대다. 하긴 제9구단의 탄생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제10구단도 그저 반대하는 구단이 다수다.
변화와 혁신은 기득권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국민은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고 있고, 요즘 거의 모든 국민은 야구팬이다. 에이전트는 신인 야수에게도, 노장 투수에게도 허락되어야 한다. 가능할까? 혹시 모르겠다. 변화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니까.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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