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6 17:12
수정 : 2012.12.27 15:48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야구는 기본적으로 스포츠다. 스포츠는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훌륭한 게임을 만든다. 어느 편에 속해 있든, 우리 편이 이기길 간절히 원하며, 이기기 위해 훈련을 하고 전략을 짠다. 지고 나서는 왜 졌는지 복기하며 다음 게임을 위해 다시 시작한다. 특히 야구는 복잡한 스포츠고, 날마다 게임이 계속되기에, 이기기 위한 전략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경기 결과는 투수나 중심 타자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고, 혹은 사소한 실책이나 볼카운트 하나의 판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하나의 승부는 모든 순간이 모여서 생긴 거대한 강물이며, 야구공 하나하나는 모든 순간의 기초를 이룬다. 무심결에 넘길 것이 없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에 그깟 야구를 비교해 글을 쓰기 민망하고 헛헛한 기분이다. 하지만 야구는 인생을 닮았다고 누누이 주장해온바, 또다시 야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들의 표정은 역전타를 맞은 마무리투수의 그것처럼 허탈하다. 변화를 원했던 시민의 대표선수였던 민주당은 9회말 역전타와 우승 세리머니에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설령 마지막 타석에서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고 하더라도, 그 홈런은 1회부터 9회까지 이어진 게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원인과 과정이 없는 패배와 승리는 없다. 어떤 과정으로 이길 것인가? 왜 졌는가? 선수와 감독, 심지어 팬들도, 까칠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저들이 우리보다 야구를 잘해서, 저들 동네에 야구선수가 많아서, 우리가 잊고 있던 노장 선수들이 경기 마지막에 결집해서…. 물론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당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1회 첫 타석 첫번째 공에서부터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더그아웃 가까이 앉은 팬들이 전달했던 경고는 수차례 무시됐다. 20대에게는 확실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50대에게는 마음 놓을 안정감을 전달하지 못했다. 포지션을 포기할 수 있는 희생이 보이지 않았고, 새롭게 나타난 실력 있는 선수에게는 희생을 강요했다. 선구안 없이 상대의 볼 배합에 끌려 다녔으며 이닝이 끝나면 경기장 사정을 탓하기 바빴다.
모든 승부는 결과로 말한다. 야구의 결과는 내일 다른 게임으로 치유가 되지만, 선거의 결과는 우리의 삶을 결정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밀하고 면밀해야 한다. 다시 1회다. 우리는 어떤 타격을 할 것인가. 낙심하고 있으면 또 진다. 역사의 시즌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길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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