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9 18:23
수정 : 2013.01.09 18:23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너와 내가 공을 주고받는 일에서부터 야구는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캐치볼이 그렇다. 캐치볼은 야구와 다르다. 많은 장비와 인원은 필요 없다. 공원에서, 한적한 골목에서, 학교 복도에서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몇 번의 반복을 통해, 내가 던지는 공이 중력한테 받는 영향력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 근처로 공을 보낼 수 있다. 공을 받기에 좋은 가슴께에, 혹은 왼팔 언저리에.
타인과의 대화에서 캐치볼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곳으로만 공을 던진다. 키를 훌쩍 넘겨버리거나, 괴상하게 바운드되는 식이다. 그러면 꼼짝없이 흘린 공을 주우려 뒷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의 집 담벼락을 넘겼거나, 잡풀이 우거진 공터로 공이 들어가면, 그것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일군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엉망인 캐치볼처럼 불시착한 대화를 찾으러 가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몇 가지 주제가 있다. 연예인, 드라마, 스포츠, 맛집 정보 같은 주제는 어느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틀 수 있을 것이다. 캐치볼로 치자면, 좋은 글러브를 나눠 끼고, 가까이에서 선선하게 공을 주고받는 것이다. 정치, 종교 같은 경우에는 캐치볼하기가 대체로 까다롭다. 우리는 우리가 던지는 폼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고, 한번 던진 곳에 마냥 계속해서 던지려고 한다. 내가 던진 공을 못 받는 상대가, 혹은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타인이 원망스럽고, 심지어 멍청해 보인다. 캐치볼은 짜증으로 끝난다.
설득되지 않는 부모에 대해 푸념하는 동료와 후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젠 심지어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젊은 세대의 냉소가 창밖 가득 서리처럼 세간에 피었다. 본격적인 야구를 하기 전에 꼭 캐치볼을 한다. 많이 하다 보면 이게 좀 지겨운데, 시시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공을 주고받는 일보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방망이로 때려내는 일이 통쾌하고 시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치볼을 잘하지 못하는 선수가 실제 야구를 잘하는 경우는 없다. 상대방과 공을 안전하고 시시하게 주고받는 일은 야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기본은 대화일 것이다. 곧바로 강속구를 던질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다. 밥상머리에서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할 필요는 없다. 돌직구가 아닌, 아리랑볼을 던질 때, 상대도 그런 볼을 던질 것이다. 설득은, 그러니까 야구는, 그 후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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