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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06 18:14 수정 : 2013.02.06 18:14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어느 날 점심이었다. 감독님과 황태해장국에 제육덮밥을 먹던 나는 불쑥, 2세 소식을 입 밖으로 꺼냈다. 감독님의 첫 반응은 이랬다.

“내년에 우리 팀 포수는 누가 하냐?”

묵직한 직구를 무기 삼아 가끔 공이 긁히는 날이면 에이스급 투구를 보여주곤 했던 ㄱ형은 형수님이 본격적으로 배가 불러오자, 야구 하러 오는 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애가 태어나자, 그가 가끔 던지던 폭투처럼 ㄱ형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지금도 수유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운 형수님 옆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만 바람결에 들려올 뿐이다.

남부럽지 않은 체격으로 장타를 뽐내던 ㅅ형은, 결혼 생활과 상관없이 야구는 무조건 나올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실제 경기장에 형수님이 간식을 싸들고 오기도 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웬만해서는 게임이나 연습에 빠지지 않던 형이었다. 그러나 그의 공백은 형의 딸이 엄마 자궁에서 나와서 돌잔치를 하기까지 기간과 동일하다.

2주 뒤면 필자의 2세가 태어난다. 한창 진행중인 동계훈련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충성을 해두어야 봄에 시작하는 본격적인 게임에는 집을 나서기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런 얄팍한 잔머리를 팀 형들에게 털어놓자 그들은 말한다.

“애 태어나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

얼마 전부터는 후배 하나가 포수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없을 자리를 대비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전력 바깥 취급을 받다니, 이 맘 참 서럽다. 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새벽이 되면 엄마 배를 쿵쿵 차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대견하고 미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후에 모종의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아빠가 될 준비가 과연 다 된 것인가.

케이비오(KBO) 최초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가 남긴 명언이 있다. 노 피어(No Fear)! 두려움은 삼진이나 실책을 부른다. 아이는 건강하게 잘 태어날 것이고, 나는 아빠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귀여운 유니폼을 입히고 야구장에 가서 목말을 태울 것이다. 상상만 해도, 좋다.

훈련을 빠진 대신에 집에서 스윙연습을 해본다. 빨래 건조대에 배트가 걸린다. 아직 덜 마른 속옷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배가 부른 아내가 약간의 신경질을 낸다. 두렵다. 노 피어 정신은 상상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실전이 중요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실전이 시작되겠지. 두려움 없이, 아빠가 되기로 한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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