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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0 18:35 수정 : 2013.02.20 18:35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류현진이 흡연 문제로 미국 언론한테 조금 곤란을 겪은 모양이다. 어쩌면 외국 언론의 조그마한 문장 하나를 따다 붙인 우리나라 언론이 곤란을 선사한 주체일지도 모른다. 엘에이(LA) 다저스의 공식 훈련에서 류현진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모습(달리기에서 뒤로 처졌다)을 보였고, 이런 모습이 선수의 흡연 문제와 연결되면서 자연스레 언론의 비판을 불렀을 것이다.

성인의 흡연에 대해 누가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그가 운동선수라고 하더라도 흡연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축구나 농구처럼 순간적인 체력과 폐활량을 요구하는 운동이라면 선수가 알아서 흡연을 삼가겠지만, 사실 야구는 그렇지가 않다. 류현진은 국내에서 최고의 선수였고, 그렇기에 그가 하루에 담배를 한 개비 피우거나 한 보루를 피우거나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하위팀을 이끄는 불쌍한 소년가장이었을 뿐이다. 프로는 결국 성적이 모든 것을 덮는다. 담배가 금지약물인 것도 아니다. 이번에 제기된 논란 아닌 논란도 그가 좋은 성적을 올리면 없어질 일이다.

우리 삶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주위 사람은 담배 없이 못 사는 사람이 꽤 있다. 최근에 장편소설 <체인지킹의 후예>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작가 이영훈은 흡연이 되는 홍대 카페가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작업할 공간이 사라져간다며 울상이다. 첫 장편 <나프탈렌>으로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소설가 백가흠은 술집이나 식당이 모조리 금연구역이 되어버린 요즘, 술자리에서 부쩍 말이 줄었다. 가게 문밖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와 술을 홀짝이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할 일을 잘해낸다고 해서, 그들의 끽연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류현진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다수 이 땅의 서민 애연가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내무반 생활에 적응을 실패한 군인, 지독한 정신노동에 시달리는 소매업의 여종업원, 담배가 아니면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일용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담배를 입에 무는 가난한 예술가, 사회인 야구에서 막 수비를 마친 아저씨 선수들….

나는 류현진이 담배를 끊지 않고서도 미국에서 성공했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가 청소년이 보지 않는 곳에서 흡연하고, 꽁초는 잘 처리했으면 좋겠다. 이 정도만 지켜준다면 스스로의 건강을 담보로 약간의 기호를 챙기고 있는 수많은 애연가들을, 조금 관대하게 대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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