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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3 18:50 수정 : 2013.04.03 18:50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봄의 도래를 알리는 존재는 꽤 있다. 당인리 발전소에 흐드러진 벚꽃, 홍대 앞 행인들의 가벼운 옷차림, 부쩍 빨리 찾아오는 아침 햇살, 자동차 유리창에 눌러앉은 얼룩무늬 황사…. 그중 최근 가장 몸값이 비싼 봄의 전령은 아무래도 야구가 분명하다. 올해도 야구는 화려하게 봄을 알리며 귀환했다.

근래에 들어 프로야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겨울이 다 지나갈 즈음이면 주위에서 야구의 부재로 인한 삶의 공허를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프로야구를 하면, 저녁마다 약속이 없어도 볼 게 있고, 게임에 지면 분한 마음에, 이기면 기꺼운 마음으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본다. 바쁘게 지내온 일과시간의 앙금을 야구를 통해 날려버릴 수 있다.

직접 야구장을 찾은 사람이 7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올해는 경기 수가 늘어 더 많은 이가 찾을 거라 기대한다고 한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야구장 관중을 눈으로 셀 수 있는 시기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시리즈를 펼치는 경기장 외야가 텅 비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불리는 사직구장에 수백명이 단출하게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부산갈매기는 더욱 걸쭉하게 불렀겠지만. 야구의 인기는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인기 또한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마케팅보다는 어떤 운수에 가까운 것들이 작용한 탓이 크다. 세계야구클래식(WBC),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서 선전을 펼치고, 잘생긴 선수들이 나타나며, 메이저리그에 출전하는 한국인 수가 줄어드는 일 등이 그렇다. 어쨌든 야구는 봄의 시작을 알리고 가을의 끝을 선언하는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요즘 봄은 짧다. 봄이구나, 좋다, 생각하면 다음날 더워서 반팔을 입는, 그런 식이다. 사직 개막전이 매진되지 않았다. 부산 경기가 바닥이라서, 벚꽃놀이가 한창이어서, 하필 또 한화랑 개막전을 해서, 여러 분석이 있다. 어쩌면 짧은 봄이 다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야구는 어느새, 모두 같은 타이밍에 번트를 대고, 쉽게 실책을 하며, 완투하는 투수는 없고, 홈런 20개 정도면 대충 슬러거로 인정받지 않는가. 짧은 치마 입은 배트걸과 치어리더로 관중들 눈요기를 시키고, 비좁고 부족한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여태 있지 않은가.

봄이 왔다. 반가운 야구가 왔다. 봄은 금방 지나간다. 야구의 호시절은 이제 시작인가, 아니면 혹시 그 끄트머리에서 허망한 봄바람을 쐬고 있는 건 아닌지. 봄의 다음이 궁금하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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