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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1 18:14 수정 : 2013.05.01 18:14

[매거진 esc] 서효인의 야구탓

하루에 펼쳐지는 프로야구 게임을 모두 중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지도 몇 년이 되었다. 네 경기가 펼쳐지므로 필요한 채널은 넷이다. 전문 스포츠채널 셋에 중계에 관심을 보인 다른 케이블 채널이 합세해서 전 경기 중계는 이뤄진다. 팬들은 날마다 야구를 접하고, 수많은 정보를 취합해 각종 커뮤니티에서 토론한다. 웬만한 식견이 아니고서는 다중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팬들의 안목을 따라잡기 어렵다. 허투루 방송을 했다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 십상이다.

야구 해설 1세대라고 하면 하일성, 허구연 해설위원을 들 수 있겠다. 사실 난 어렸을 때 ‘김소식’이라는 아저씨를 좋아했다. 야구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의 이름이 ‘소식’이라니, 게다가 절대 소식하지 않을 것처럼 두둑했던 풍채까지…. 대중적 인지도에서 가장 앞섰던 이는 하일성 위원이었다. “야구 몰라요”라고 말하면서 야구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선포하고 나서, “변화구 타이밍이에요”라고 작두를 탄다. 직구가 들어온다면? “역으로 가네요”라고 하면 된다. 야구는 모르니까. 그에 비해 허구연 위원은 좀더 엘리트 같은 느낌이 있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주가를 더욱 높인 그는 특유의 발음과 ‘인프라’에 대한 열성으로 유명하다. 그의 태생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름들, 예를 들어 ‘루헨진’ ‘궈넥’ ‘고앵민’이 누구인지 안다면, 당신은 진짜 야구팬 맞다.

내가 가장 섭섭했던 해설은 2009년 박노준 위원의 해설이었다. 고교 시절 야구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프로에서 부상 등의 이유로 제 기량을 만개하지 못했다. 무등경기장 외야에서 쌍방울 소속이던 그의 등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어린 나는 그에게 별 의미 없는 야유를 퍼부었다. 그래서였을까. 극적인 7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기아의 우승이 결정되던 순간, 그는 심하게 차분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끝났어요.” 반면 내가 가장 좋아한 해설은 엘지 사령탑을 맡아 쓰라린 실패를 겪고 와신상담,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이순철 코치의 해설이었다. 그의 해설은 선수의 엉성한 플레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한번 그의 표적이 되면 그 선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내내 혼나야 했다. 해설계의 김성근 감독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신바람’ 스타일은 아니다.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해설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유일하게 입이 거칠어지는 순간이 바로 야구를 볼 때라고 한다. 오늘도 특정 왼손 불펜투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런 내가 방송에서 해설을 한다면? 아찔하다. 그래서 오늘도 양준혁이든 김재현이든, 참고 즐기며 야구를, 보는 것이다.

서효인 시인·<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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