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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3 15:37 수정 : 2012.02.23 17:08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편집위원 윤한결씨

[디어청춘 14회] ‘인디고잉’ 발행하는 윤한결씨
“청춘은 자유를 꿈꾸는 영혼의 상태”

인디고 서원을 찾아라!

인디고 서원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부산 지하철에 올라 남천역에 내렸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곳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입시 학원 간판은 질서가 없다. 남천동의 첫인상은 삭막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 두 블록쯤 지나니 초록색 지붕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바로 ‘인문학의 요람’이라는 ‘인디고 서원’(대표 허아람)이다.

서가에 들어서니 철학, 문학, 역사·사회, 예술, 교육, 환경·생태 등으로 분류된 책이 빼곡하다. 학원가에 자리 잡은 서점인데도 문제집과 자습서가 없다. 흔한 베스트셀러도 없다. 대신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는 책을 골라놓았다.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많구나’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찰나, 진지한 청춘 윤한결(24)씨를 만났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인디고 서원이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열혈’ 인문학도다. 현재 인디고 서원에서 인문기획팀장을 맡아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잡지 ‘인디고잉’을 발행하고 있다. 윤씨는 차근차근 디어(Dear) 청춘에서 나눌 이야기를 소개했다. 지난날의 자기 고백도 거침없었다.

“지난해,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유행했잖아요. 그날 이후로 저도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웃음) 청춘이 된 것이죠. 그럼, 청춘은 뭘까? 청춘은 자유를 꿈꾸는 영혼의 상태라고 정의를 내렸지요.”

# 나는 누구일까, 여긴 어디인가?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만화책과 농구를 좋아하는 중학교 3학년 윤한결 학생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또렷한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봄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서 농구를 하다 다시 교실로 들어왔어요. 5교시는 문학시간이었죠. 제 자리는 교실 1분단 가장 마지막 자리였고, 멍하니 칠판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교실은 초토화였죠. 친구들이 다 책상에 쓰러져 자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필기를 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창문 밖에서 벚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나는 왜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물음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저 그런 사춘기 시절 망상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다. 마음속 응어리가 맺혀 그날로 마음은 병을 앓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한번뿐인 인생, 좋아하고 행복한 것만 하면서 살다가 죽자!

“농구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슬램덩크의 영향이 컸죠.(좌중 폭소) 하루는 어머니께서 앉아계신 앞에서 ‘농구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언젠가 네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다며 허락했죠.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서 테스트를 받고 농구부에 들어갔어요. 운동을 늦게 시작했으니 제대로 배워야 했죠. 제 삶을 건 선택이었으니 각오하고 1년을 휴학했어요. 그리고 농구만 했어요. 처음엔 정말 행복했어요. 그 뒤로 몇 달이 지났는데, 슬프게도 같은 물음이 또 찾아오는 거예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편집위원 윤한결씨가 ‘디어(Dear) 청춘’에 출연해 강연을 하고 있다.

# 마음의 응어리 벗으니 책이 말을 걸어

복학생이 됐다. 마음을 괴롭히던 물음들을 조금씩 내려놓기로 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발버둥을 쳤지만, 쉽지 않았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물음들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날카로운 화살을 돌렸다. 그 무렵, 어머니는 인디고 서원을 소개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첫 수업에서 만난 허아람 대표는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한결씨는 당시 허 대표가 해준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욕망이 있죠.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평생 해야 하는 문제에요. 여러분보다 먼저 그런 고민을 해온 인생의 선배로서 그런 고민을 책을 통해 함께 나누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허아람)

처음으로 꺼낼 수 없는 고민에 ‘어른’이 진지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 말에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 눈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인문학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라고 느껴졌던 책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책에 적힌 글자들은 제가 앓았던 절실한 고민을 미리 한 사람이 치열한 고민을 끝내고 자기만의 답을 써 내려온 목소리로 들리더라고요.”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편집위원 윤한결씨가 ‘디어(Dear) 청춘’에 출연해 강연을 하고 있다.

# 자유롭게 사는 꿈…혼자가 아니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읽는 기쁨이 있고, 영혼의 놀람에서 발생한 진동을 함께 나누는 환희도 있었다. 아픔으로 새겨졌던 청춘의 고민은 희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책읽기를 시작한 그는 책으로 삶을 혁명했다.

“3년 동안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를 3권의 책 <인디고 서원에서 행복한 책읽기>, <토토, 모리를 만나다>, <창조적 열정을 지닌 청소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로 정리했어요. 저는 운 좋게 인디고 서원을 만났지만, 분명 혼자서 아픔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 같았죠.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했어요.”

진지한 책읽기를 하고 있는 인디고 서원의 청춘들은 매월 가장 만나고 싶은 책 속의 저자를 선정하고 초청하는 행사를 연다. 모임 이름은 ‘주제와 변주’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좋은 어른과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다. 2007년 5월부터 시작된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도 눈길을 끈다. 이 프로그램은 얼 쇼리스의 저서 <희망의 인문학>에 소개된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의 ‘클레멘트 코스’를 본보기로 삼았다. 무력하고 수동적인 소외계층을 당당한 민주 시민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에 감동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부산, 창원, 공주, 서울, 대전, 수원 등 국내 16개 도시를 비롯해 중국 만주에서도 열린다.

“저 혼자만의 아픔에서 시작된 소통에 대한 열망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느꼈어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어도 자유를 억압당해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 고민해서도 안 되고, 우리끼리만 얘기해서도 안 되고, 전 지구적인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공동선을 향하여

인디고 서원은 2008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를 개최한다. 삶의 근본적인 물음들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세계에 학자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부산으로 초청했다. 이렇게 맺어진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제 인문학잡지 ‘인디고 (INDIGO)’을 발행한다.

“2010년 북페어가 끝난 뒤, ‘개인과 모두의 자유를 위한 공동선을 향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이 있었죠. 사실, 나만의 선을 위해서 살기도 바쁜데, 공동선은 조금 멀리 있는 단어라고 느껴지잖아요.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개인의 자유가 타인이 추구하는 자유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올 여름에는 ‘공동선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인디고 유스 북페어가 열립니다.”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편집위원 윤한결씨가 ‘디어(Dear) 청춘’에 출연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유럽의 대표적인 비판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을 만났다.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세계 시민으로써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우리가 ‘선(좋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내리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슬라보예 지젝)

지난 1월에는 가라타니 고진(Karatani Kojin) 을 만났다. 그는 문학평론가에서 출발해 철학, 건축, 역사 등 전방위 비평가로 활동하는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다.

“칸트에게 있어 윤리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입니다. 공동선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해서 정의 내려야 하는 문제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두 사상가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은 인디고 서원이 이 시대의 청춘에게 보내는 초청장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2월 중 출간될 예정이다.

# “배우자. 우리의 ‘선(좋음)’ 을 위하여!”

“배우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자. 미래를 향하여 응시하자. 우리의 명예를 우리의 사랑을, 선을 위하여.” (‘자발적 복종’ 중에서)

그는 최근에 만난 책으로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을 꼽았다. 이 책은 18살의 라보에 띠가 ‘어째서 많은 사람이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을까’란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거칠고 열정적인 언어로 써놓은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청춘에게 ‘인문학’ 탐구를 제안했다.

“삶의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겠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대체 어떤 세상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유를 위해 함께 공부하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힘과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인디고 유스 북페어’에서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청춘들의 따뜻한 열망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영상·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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