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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관계로 함께하는 두 부부 ‘혜신명수’는 오르가슴 같은 지금의 삶을 앞으로 20년쯤 계속하며 “마음 아픈 이들의 무릎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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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정혜신ㆍ이명수 부부의 사랑(하)
☞ 링크: 정혜신ㆍ이명수 부부의 사랑(상)
<홀가분>에서 정혜신은 “비트겐슈타인 같은 경계선 사고가 유별나고, 저울 같은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으로 이명수를 소개합니다. 이명수는 경영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을 자퇴한 후 몇 년 동안 소설, 수필, 르포, 리라이팅 등 다양한 글을 쓰고 공연 연출을 하며 살았습니다. 재입학해서 대학을 졸업한 다음 대기업 마케팅 팀에 특채되었고, 나중에는 광고회사 기획자로 일했지요. 독특한 이력입니다. 딱 40살까지만 광고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38살에 정혜신을 만났고 40살에 진짜로 광고를 “때려치웠습니다”. 트위터의 자기소개는 딱 한 줄 “심리기획자. 사람에겐 마음이 있다”입니다.
-이명수가 생각하는 이명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새의 눈’(bird’s eye view)이라는 말이 있죠. 제가 남들과 약간 다른 게,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유체이탈처럼 또다른 제가 늘 위에서 내려다봐요. ‘너무 많이 얘기하는 건 아닌가, 오버가 아닌가’ 위에서 바라보고, 그 위에는 또다른 내가 걔를 바라보고, 심할 땐 7명 정도의 이명수가 줄을 서는 거예요. 심지어 내가 섹스를 하고 있어도 위에서 그걸 내려다보거든요. 아이들과 식사하다가도 ‘밥 굶는 애들이 굉장히 많은데, 왜 내가 이 아이들만 특히 좋은 밥을 사주고 있는 걸까. 참 이상하다. 불편하다’ 하면서 위에서 보고 있어요. 애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아빠가 또 시작이구나’ 그러죠.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몰입이 잘 안돼요.”
‘집단 트라우마’ 를 위한 솔루션을 만들다
-그런데 어떻게 섹스를 좋아할 수가 있죠, 그것도 기본적으로 몰입인데?
이 “실제로 섹스에 몰입하는 순간에도 이 친구의 표정을 볼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또다른 제가 위에서 관찰하면서 ‘이 친구가 눈 뜨면 되게 민망하겠다. 뜨지 말아야 하는데’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행위 자체는 굉장히 재밌어요.”
트위터에서 정혜신이 가장 자주 알티하는 것은 이명수의 글입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도 자신보다 남편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인지 물었습니다. 정 “오래전 <신동아>에 40대 중년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반응이 좋았는지 몇 달 후 ‘정혜신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인터뷰를 해달라는 의뢰가 왔죠. 좋기는 한데,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도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듯이 얘기를 하게 되어 그 내용을 잡지에 그대로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그걸 고민하자 명수씨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쓰면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쓴 게 ‘남자 대 남자’예요. 명수씨가 늘 그런 섹시한 기획을 해요. 제 글에 제일 큰 영향을 준 것도, 동기를 부여하고 글을 봐준 것도 모두 이 사람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우리나라 최고 글쟁이 중 하나가 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간판이, 자격증이 너무 중요해요. 사람들은 똑같이 주옥같은 말이더라도 정신과 의사가 얘기하면 더 방점을 찍죠. 그런 것들에 딱 눈꺼풀이 씌우면 눈앞에 벌어지는 일인데도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전에도 멋진 남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이명수는 뭐가 달랐나요? 정 “정신과에서는 서로 얘기를 많이 해요. 수련 과정 중에도 그래요. 옆의 외과 의국은 수면부족에 허덕이고 가운도 못 빨아 더러운데, 정신과 애들은 색소폰 불고, 동물원의 김창기는 노래하고, 이범용 선생님은 대학가요제 나가고. 그런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깊이 남자를 접촉할 기회가 많았죠. 전문의가 되어서도 직업상 소위 성공한 남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제가 만나본 사람 중 최고로 지적이었고요, 뽕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대화가 너무 즐거웠고, 굉장히 독특했어요.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고 예민한데, 제가 접해볼 수 없는 종류의, 남자로도 인간으로도 대단히 섹시했죠. 책임감 많고 원칙적인 사람인데 자유롭고, 새의 눈을 가졌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친밀하고,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의 합이 이명수라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원래 복잡하고 모순된 존재 아닌가요? 정 “원래 그래요. 깊이 들어가면 그걸 발견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런 깊이까지 가는 도중에 갈등이 있거나 관계가 깨져서 그 관계까지 들어가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관계의 성숙도가 중요한 거죠.” -심리기획자라는 직업은 정확히 뭘 하는 거죠? 이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만들었습니다. 심리학이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자격증 따고, 최소한 대학원 이상은 나와야 쳐주고, 책과 이론에만 관심이 있고, 자기한테 학위 주는 사람들이나 같은 계통의 동료 선배들하고만 소통하는 ‘연구실 학문’이 되어버렸거든요. 실용적인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심리기획자는 한 개인의 심리적 특성이나 솔루션을 깨닫게 해주고 자아성찰을 하도록 돕는 운영시스템이나 공간을 만들죠. ‘진실의 힘’, 치유센터 ‘와락’ 같은 것들이 그런 범주에 속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학혁명부터, 제주4·3, 한국전쟁, 광주항쟁을 생각하면 우리 역사가 집단 트라우마란 말이에요. 내 형제들이 우물에서 죽창에 찔려 죽고 강물에 빠져 죽고 돌에 맞아 죽는 걸 옆에서 본 거잖아요. 그런데 한 번도 치유된 경험이 없었죠.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을 끔찍이 싫어하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분들더러 그러지 마라, 빨갱이 같은 말은 나쁘다고 해봐야 먹히지 않아요, 우리 사회가 치료를 안 해줬으니까요.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씨를 비롯해서 조합원들이 굉장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그것도 그냥 방치하면 해결이 안 되거든요. 저는 심리기획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거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정혜신과 함께 일하기는 어떤가요? 이 “저는 이 친구가 당대 최고의 치유자라고 생각해요. 몇 년 전부터 이 친구가 감정노동자,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들을 치유하는 현장에 빠짐없이 제가 함께 있었잖아요. 선동열이란 투수가 있어서 김응룡이 당대 최고의 감독이 되는 데 결정적 도움을 받은 것처럼 심리기획자인 저에게 이 사람은 행운이죠. 쌍용차 해고노동자 상담처럼 본인이 먼저 뛰어드는 경우가 많지만, 심리치유와 관련해서 제가 어떤 기획을 하면 이 친구는 어디에 어떻게 투입해도 그걸 해결해요. 무조건 해결해요. 물론 살림에선 그렇지 않지만, 심리치유 영역에 들어오면 안심이 되죠.”(웃음) 이명수 딸내미한테도 섹스를 말해요
유럽 여자들처럼 자기 침대서
첫경험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혜신 명수씨는 너무 날이 서 있죠
자기경계의 인식이 분명한
그런 사람이 섹시해요 김두식 두 분 다 강적이에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거 그대로 나가도 돼요? ‘야동순재’ 같은 ‘혜신명수’의 기분 이명수는 ‘정혜신의 남편’으로 불릴 때가 많습니다. 유명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의 재혼에 관한 보도가 나올 때도 이명수는 주로 ‘이모씨’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런 때의 기분을 물었습니다. 이 “졸라 안 좋죠. 저는 이 친구보다 강박적이고 소심해서 한동안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 누르는 공포증이 있었어요, 속상하고 쪽팔리고. 어디다 사인할 때는 제가 기꺼이 ‘혜신명수’라고 하거든요, ‘야동순재’처럼.(웃음) 하지만 내가 스스로 원해서 그러는 것과 누군가 나를 투명인간으로 대접하는 건 다르죠. 김두식 교수에게 ‘정혜신이 중심이 되고 이명수가 도와주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걸 보면 기분이 더럽죠. (김두식, 떨면서 억지로 웃음) 보이지는 않지만 잽처럼 맞죠. 저도 대중과 접하는 기획을 오래 해서, 예를 들어 심은하와 그 남편을 인터뷰한다면 대중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뻔히 나오잖아요.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기분은 안 좋죠. 옛날 같으면 뚜껑이 확 열리는 건데, 지금은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인정받는 게 있으니까 그걸로 상쇄되는 것 같아요.” 정 “자기경계, 자의식에 너무나 민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투명인간 취급받으면서 많이 다쳤죠. 자기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면역이 생기지 않아요. 저는 이 사람이 계속 아플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은 개인적으로 객관화하지만, 그렇다고 상쇄되거나 무뎌질 수 없는 문제니까요.” 세 자녀는 모두 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에서 10여년을 보냈습니다. 어린이의 자유를 존중하는 걸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100년 전이나 다를 것 없이 낡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학교였지만, 직접 방문해보고 용기를 냈답니다. “교육관을 조금만 이야기해도 우리를 굉장히 과격하게들 봐서 이야기를 잘 안 한다”면서도 막상 질문을 받자 답변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두 분을 뭐라고 부르나요? 정 “1년 전까지는 아저씨, 아줌마로 불렀어요. 애들의 친엄마, 친아빠가 다 살아있고, 거기 가서 엄마 아빠라고 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불러야 하면 어색하고 불편할 거 아니에요. 굳이 그럴 게 있나 싶었어요. 물론 가족끼리 식사하러 나갔는데, 음식점에서 애들이 아저씨 아줌마 그러면 사람들이 굉장히 민망해했죠. 그럴 때는 또 설명하면 됐고요. 그런데 애들이 크고 나니 문제가 생겼어요. 딸도 아들도 우리하고 스킨십이 말도 못 해요. 집에 오면 막 비비고 베고 눕고, 굉장히 친밀한 관계거든요. 딸이 아빠랑 나가면 너무 붙어 다니는데, 그러면서 아저씨 아저씨 하니까 사람들이 원조교제하는 걸로 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딸한테 ‘우리끼린 괜찮은데 한국 사회에서는 남들이 볼 때 문제가 좀 있네. 어떻게 할래?’ 물었죠. 딸아이가 금방 알아들었고, 결국 약간 애칭같이 그냥 아부지라고 부르기로 한 거죠. 큰아들은 아주 흔쾌히 저를 어머니라 부르고요. 서머힐에 있는 막내에게도 ‘형이랑 누나랑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하니, ‘그거 말 되네’ 하더니 바로 동참했어요. 처음에는 약간 쑥스러워하더니 금방 정리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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