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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2 19:33 수정 : 2012.03.02 19:33

‘의문의 투신’으로 숨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주검을 탈취하려는 ‘백골단’이 1991년 5월7일 오후2시 콘크리트벽을 뚫고 안양병원 영안실에 난입하고 있다. 노동법 위반으로 수감 중에 다쳐 입원치료를 받던 박씨는 당국으로부터 대기업노조 연대회의 탈퇴를 강요받다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④ 한진중공업 박창수의 죽음(상)

한밤중에 잠이 안 와서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오래전에 입적하신 성철 스님 생전 모습이 나온다. 어느 산인지, 아마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계곡인가 보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 사이 바위 위로 스님이 계속 올라가고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무얼 하러 어딜 저리 가시는 겐가. 지금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계신가.

공간. 점은 위치만 있고 양(量), 즉 길이나 면적이 없다. 면이나 선을 아무리 잘게 나누어도 결코 점을 잡아낼 수가 없다. 그래도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쌓여 면이 된다. 그러니 점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시간도 그렇다. ‘지금’은 결코 잡아낼 수 없지만 이 ‘지금’이 쌓여 한 시간이 되고 100년이 된다. ‘지금’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게 연기(緣起)다.

잡아낼 수 없는 것-‘것’이라 표현하면 또 잡아낼 수 있는 어떤 실체를 생각하니 무어라 표현해야 하나-들이 서로 모여 사람이나 물질, 생각, 움직임처럼 잡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룬다. 그래서 서로 모여 생긴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이나 공간처럼 계속 변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성철 스님이 지금쯤 어디 서방정토에서 빙긋이 웃고 앉아 계시리라 여기는 건 연기를 모르는 소치다. 스님은 연기의 법에 따라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이리 생각하면 그해 그 수많은 죽음들을 떠올리면서도 마음에 좀 위안이 된다.

수화기 저편 절망의 한숨소리
“변호사님, 제발 좀 와주세요”
그가 다음날 죽은 채 발견됐다

이렇게 깨끗한데 추락사라고?
경찰은 현장 촬영도 막더니
영안실 벽을 깨고 쳐들어왔다

열하나의 꽃이 지던 그해 봄의 분신정국

1991년 5월6일 새벽,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박창수 위원장이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뭐, 누가 죽어?


그 전날 일요일, 마당 등나무에 보랏빛 꽃봉오리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늘어져 있던 아름다운 오월의 저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서울구치소에 있다가 엊그제 머리를 다쳐서 안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노동쟁의조정법상의 3자개입죄로 석달째 감옥에 갇혀 있던 중이었고 나는 그의 변호인이었다.

“변호사님, 제발 지금 좀 안양병원에 와 주세요.” 며칠 전에도 접견을 갔던 터라 무슨 급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근 들어 접견을 갈 때마다 집 걱정, 특히 처 걱정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해 온 그였다. 그는 내일 병원에서 자신을 서울구치소로 다시 돌려보낼 듯하니 어떻게든 좀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일은 전적으로 병원에서 판단할 사항이어서 변호사인 나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마침 지방의회 의원들 강의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일요일의 한가로움을 깨는 것도 마뜩하지 않아 월요일인 내일 일찍 가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수화기 저편에서 절망의 한숨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그 새벽, 얼굴도 제대로 못 씻고 옷도 아무거나 되는대로 끼어 입고 차를 몰아 컴컴한 거리를 달려갔다. 그리고 가는 내내 가슴을 쳤다. “내 탓이다.” 어제 그가, 절체절명이었을 그 순간에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죽음에 처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내 탓이다.

1991년 봄을 사람들은 ‘분신정국’이라고들 부른다. 그 전해에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과감한 시위진압 방침에 따라 간편복 차림에 운동화 신고 투명 얼굴 가리개가 달린 하얀 헬멧을 쓰고 현장에 투입된 체포조 경찰들은 시위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백골단’이라 불린 그들은 시위 현장에서 곤봉과 주먹, 발로 학생과 노동자들을 무차별 구타했다.

4월26일 명지대 앞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던 1학년 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에 붙잡혀 심하게 두들겨 맞은 끝에 죽었다. 항의시위가 끝없이 이어졌고 29일에는 전남대생 박승희 분신, 5월1일 안동대 김영균, 3일 경원대 천세용,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18일 연대앞 굴다리에서 이정순, 25일 성균관대 김귀정….

이름을 다 부르기에도 숨이 차다. 그 봄에 모두 11명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문익환 목사는 그 뒤 어느 모임에선가 눈물 속에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절규하듯 부르고 내려오기도 했다. 한 대학 총장은 이 상황을 두고 정반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들, 어둠의 세력들이 존재한다.’

분신정국은 6월3일 정원식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것으로 끝이 났다. 보수 여론은 정 총리가 노 정권을 구해준 일등 공신이라 추어올렸다. 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6월20일 치러진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안기부 “대기업노조 연대회의를 깨뜨려라”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시절의 박창수씨(위). 박창수씨의 주검이 탈취된 이후 서울 종로2가에서 그의 사인규명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가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그 분신정국의 한가운데서 노동자 세력과 공안 당국이 정면으로 충돌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박 위원장의 죽음이었다. 이 일의 시작은 그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월9일 의정부에 있는 ‘다락원’에서 대기업노조 연대회의가 열렸다.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한진중공업, 금호타이어, 서울지하철, 기아기공 등 16개 대기업 노조위원장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었다. 이들은 다락원에서, 당시 대우조선노조가 105m 높이 골리앗 크레인에서 벌이고 있던 파업을 지지한다는 성명서 5천장을 만들어 전달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1시30분께 삼삼오오 그곳을 떠나 귀가중이었는데 공안 당국은 전경버스 3대를 동원해서 이들 67명을 모두 잡아갔다.

이들은 거리에 나서서 무슨 데모를 한 것도 아니요, 대우조선 노조파업에 함께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신들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보낸 것뿐인데 이들을 3자개입 혐의로 영장도 없이 잡아갔다. 그런데 며칠 뒤인 2월12일 상공부와 30대 대기업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혹 임금을 인상하더라도 한자릿수를 넘어서면 절대로 안 된다고 결의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는 정부가 정책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거야말로 명백히 3자가 개입한 것이었음에도, 수사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나는 연행되어간 대기업노조 간부들을 대리해서 연행 책임자들인 서울지검과 의정부지청 검사들, 그리고 경찰서장을 불법체포·감금죄로 고소했다. 검사들 중엔 내 고등학교와 대학의 동창생들도 있었다. 사석에서 ‘야, 니가 나를 고소하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저나 나나 그저 맡은 일을 하는 것일 뿐…. 어쨌든 사적으론 좀 안됐다 싶긴 했다. 그리고 이들과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연행된 67명 중 7명이 구속되었는데 박창수 위원장도 거기에 들어 있었다.

안기부는 1990년 11월 출범한 대기업노조 연대회의를 깨뜨리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다. 91년 3월28일 풍산금속 노조 대의원들은 이철규 노조위원장이 구속되어 있는 가운데 총회를 열어 연대회의 탈퇴를 결의했다. 포항제철 노조도 탈퇴했다. 안기부의 그다음 목표는 한진중공업 노조였다.

5월6일 새벽, 끝없이 나 스스로를 탓하면서 정말 날아가듯 차를 몰아 안양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ㅁ’자형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1층 땅바닥에 그가 누워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몸에 아직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발목이 좀 부어올랐을 뿐, 저 아스라한 5층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보기엔 모습이 비교적 깨끗했다. 유족들에게 즉석카메라를 구해 오게 해서 우선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이 나타나 이를 막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사진 찍는 걸 막을 권한은 경찰에겐 없었다. 망인을 변호하던 변호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고는 시신을 현장에서 마구 들어내는 게 아닌가. 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던 사당의원 김종구 선생에게 빨리 와 달라고 요청했던 터라 검사에게 의사가 와서 검안을 할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자고 제안했었다.

유족들과 경찰 사이에 커다란 실랑이가 벌어지고 낮 12시에 병원장실에서 쌍방이 모여 협의를 했다. 전노협 간부, 백기완 선생, 망인의 부친, 나, 이상수, 노무현 의원 그리고 검사들, 병원장 등이 모여 논의 끝에 ‘(1) 사태를 순리대로 풀어간다. (2) 경찰은 철수한다. (3) 시신을 영안실로 옮겨 자유롭게 분향할 수 있게 한다. (4) 촬영, 부검은 양측 동의하에 한다’는 내용으로 합의를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인 7일 새벽 5시 1000여명의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쳐들어왔다. 12시 병원장실에서 나는 언론노련 권영길 위원장과 함께, 현장을 총괄하는 부장검사와 협상을 했다. 어제의 합의를 지키라 요구했지만 빨리 사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유족 동의 없이 부검을 하겠다고 했다. 결국 오후 2시쯤 백골단 경찰들은 영안실 벽을 망치로 깨부수고 들어와 시신을 빼앗아 갔다. 얼마 전 강경대가 경찰에 맞아 죽은 뒤 학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 몸을 불사르던 시절이었으니 노 정권으로서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게다. 검사들과의 합의? ‘어떤 놈이 그런 합의를 해 주었어.’ 검사들이 혼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화염병과 최루탄, 그리고 ‘한심한 외박’

그날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어쩌다 내가 정권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지옥도에 들어온 건지, 내 신세가 아득했다. 그때는 정말 이거 이러다가 어느 귀신도 모르게 사라지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심각하게 했었다. 당시 나는 이석태, 조용환 변호사와 셋이서 덕수합동법률사무소에서 누가 얼마를 벌든 똑같이 나누어 가는, 문자 그대로 운명 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었다. 그래서 진상조사에 이 두 변호사들을 물귀신처럼 끌어들였다. 조사단에는 권영길 현 의원의 이름도 보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 이름도 보인다. 그때 그는 민중당 노동위원장이었다. 세월이 참 무섭기도 하여라.

두께가 25㎝나 되는 영안실 벽을 망치로 깨부수고 들어온 ‘백골단’들에게 시신을 빼앗긴 그날, 나는 밤늦게 안양병원을 떠났다. 골목을 돌아 나오는 내 차를 사이에 두고 노동자들의 화염병과 경찰 최루탄이 서로 엇갈려 날아갔다. 이 세상이 그저 꿈길처럼 아득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노동 현장에 들어가 터줏대감이 된 친구를 찾아갔다. 둘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점심때쯤 몸과 마음을 대충 추스르고 집엘 가니 난리가 나 있었다. 밤에 집에 들어오질 않고, 아침에 사무실에도 출근을 하지 않자 양쪽에서 비상이 걸렸다. 공안기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 거 아닌가. 민주당에서까지 사태파악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이 엄중한 순간에 술이나 퍼마시고 다니는 이 한심한 위인아.’ 오후에 사무실에 나타난 나를 바라보는 후배 조 변호사의 눈빛이 꼭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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