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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8 17:11 수정 : 2012.09.29 13:17

한가위를 나흘 앞둔 지난 26일 광주시 서구 양동시장이 대목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오랜만에 활기찼다. 호남지역의 최대 전통시장이자 5·18 시민군의 보급기지였던 양동시장은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클 뿐 아니라 늘 인파로 붐비기 때문에 광주의 바람을 엿볼 수 있다.

[토요판 / 커버스토리] ‘야권 단일화’ 광주 민심

추석을 나흘 앞둔 지난 26일 오후 5시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 하나분식 앞. 대목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시장 들머리에서 한과점을 운영하는 김홍희(70)씨는 “불경기를 실감한다”며 “손님이 2~3년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 이맘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들러 국밥을 먹었던 하나분식 대표 남연희(48)씨는 “손님들이 처음부터 정치 얘기는 잘 안 한다”며 “술잔이 한 순배 돌아야 살림이 어렵다, 희망이 안 보인다 등으로 돌아 결국은 후보 단일화 얘기로 나아간다”고 전했다.

“언론에선 박근혜가 벌써
대통령 된 것처럼 보도하는데
대항마가 둘이나 있어 다행
호남인물 없어 아쉽지만
인자 출신 따지는 시대 갔잖아”

문재인-안철수 정책경쟁 통한
단일화 필요성엔 한목소리
여론조사는 안철수 다소 앞서
추석 ‘밥상머리 토론’에서
누구에게 더 쏠리느냐에 관심

누가 더 낫나? 승부 없는 ‘즉석 정치토론’

차례상에 올릴 포도 한 상자와 고기를 사가던 50대와 20대 모녀는 “누가 좋은 대통령감이냐”고 묻자 “아직 멀었는디”라며 손사래를 쳤다. 북어를 정성껏 포장하던 상인 홍미자(66)씨는 “우린 부부 사이에도 의견이 갈려 있다”며 “누가 되든 서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쯤 찾아간 남구 노대동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는 비교적 솔직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다. 휴게실에서 마침 텔레비전으로 대선후보 캠프 인사들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김두한(80)씨가 “호남에 대통령감이 없어 좀 아쉽기는 하제”라며 “하지만 인자 어디 출신인지 따지던 시대는 지났잖아”라고 운을 뗐다. 정치 얘기가 무르익자 어르신들은 ‘후보를 단일화해 여당 후보와 맞붙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막바지에 이연순(67·여)씨가 “경험이 있는 문재인이 낫다”고 했고 이무성(73)씨는 “참신해 보이는 안철수가 기대된다”고 맞받으면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즉석 정치토론’은 마무리됐다.

광주 사람들이 부산 출신 야권 대선 후보 둘에 마음이 들뜨고 있다. 술자리나 조문 자리에서도 여럿이 둘러앉았다 하면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인생 역정과 정치 입문, 인상과 포부 등을 두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특정 후보에게 지지율을 몰아주는 호남의 응집력 있는 선택은 출향 인사들한테도 강한 영향을 끼쳐왔던 게 과거 경험이었다. 호남의 선택은 김대중을 기어이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무명이다시피 했던 노무현을 불러내 민주정부를 계승하게 하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인구는 줄었어도 ‘정치적 발화점’으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옛 도심인 동구 금남로, 새 도심인 서구 치평동에서 만난 거리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돈벌이는 어려워지고 밤거리도 무서워졌다”며 “정권을 바꿔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접근했다. 지난 4·11 총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측근이 광주서구을에서 39.7%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주부 김은혜(44)씨는 “최근 스무명이 모인 동갑계에 갔는데 두 후보를 놓고 인물평이 끝이 없었다”고 전했다. 취업을 준비중인 임지훈(30)씨는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안 후보와 뚝심이 엿보이는 문 후보를 두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인근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농민 안상용(43)씨는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겨냥한 뒤 “언론이 대통령을 이미 다 뽑은 것처럼 보도하지만 (박 후보에) 필적할 대항마가 둘이나 있어 다행스럽다”고 했다.

두 후보를 지지하는 자생적인 모임도 늘고 있다. 일부는 공식적인 선거조직으로 편입됐지만 끼리끼리 뛰는 모임도 꽤 있다. 문 후보 쪽에는 민주통합당 말고도 ‘담쟁이포럼’ ‘문재인의 친구들’ ‘좋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시민모임’ 등이 포진했고, 안 후보 쪽에는 ‘함께하는 세상포럼 철수처럼’ ‘철수 산악회’ ‘시에스(CS)코리아’ 등이 외연을 넓히고 있다.

광주원로회, 야권 단일화를 위한 조언

송기숙·윤장현·전홍준·김준태·정해숙씨 등 53명이 참여한 광주원로회의는 지난 24일 공개적인 조언을 냈다. 원로회의는 성명을 내어 “범야권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정권교체를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단일화의 과정과 절차, 방식은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감동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주의 민심이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양분되지 않고, 광주의 선택을 국민들도 주시하는 전통을 잇고자 하는 뜻으로 읽혔다. 문 후보한테는 “민주통합당을 대대적으로 혁신해 능력 있는 수권정당, 서민을 위한 정책정당으로 만들라”고 촉구했고, 안 후보한테는 “정치를 쇄신할 구체적 방법과 내용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호남에서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서 가는 흐름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은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는 정도의 편향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역대 대선의 향방을 좌우했던 호남의 응집력 있는 선택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단정할 상황은 아닌 셈이다. 호남의 선택도 한가위 전후의 ‘밥상머리 토론’을 거치면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 후보 선거대책위의 박원균 언론특보는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문 후보를 비판한 네거티브 공세의 여진이 남아 있다”며 “문 후보의 ‘부산 정권’ 발언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려 부산 시민들한테 호소하는 맥락이었고, 참여정부 때 호남지역을 홀대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음을 알려 서운함을 풀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 쪽인 정치혁신포럼에 참여한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민주통합당에 실망한 호남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정치개혁을 열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미래 지향적이고 본선 경쟁력이 있다는 후보의 인상도 작용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시민들은 두 후보의 단일화 방법에 관심이 지대했다. 양동시장의 하나분식 대표 남씨는 “두 후보가 갈라지면 질 게 뻔하다”며 “한 후보는 대통령 되고, 다른 후보는 총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정훈(49) 광주엔지오센터장은 “한 달쯤 지나 키높이가 대충 나오면 선의로 담판을 해야 한다”며 “(안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단일화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덧셈의 정치를 하도록 시민사회가 함께 가야 한다”고 바랐다. 공무원 김정주(46)씨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여론조사 아니냐”며 “정책 경쟁을 벌인 뒤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두 후보의 호남과의 연고라면 문 후보가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고, 안 후보는 여수가 고향인 부인과 결혼했다는 정도다. 그래도 호남의 민심을 얻으려 두 후보 모두 정성을 들여왔다.

문 후보는 28일 5·18 묘지를 찾아 헌화했다. 특히 이한열·이철규·김남주 등 민족민주열사들이 잠든 옛 5·18 묘지를 방문해 고개를 숙였다. 옛 5·18 묘지 방문은 광주의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을 향해 ‘민주도시 광주의 정치적 적자가 되겠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5·18 유가족도 만나 위로했다.

앞서 안 후보는 지난 14일 출마 선언을 하기 닷새 전에 광주 5·18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방명록에 ‘고이 잠드소서’라는 짧은 글귀를 남겼지만, ‘사진 찍는 짧은 참배’로 끝내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희생자묘역, 유영봉안소, 추모관을 돌며 40여분 머물렀다.

일견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는 두 ‘부산 남자’ 가운데 누가 호남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호남의 들녘 마을마다, 고샅마다 펼쳐질 ‘한가위 정치담화’가 벌써 도란도란 들려오는 듯하다.

광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관련 영상] 이해찬 “강한 후보 만드는 게 최고의 당 쇄신”(김뉴타 1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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