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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오(CEO) 안철수’의 원체험이 녹아든 ‘혁신경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9월24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 국민대학교 무인차량로봇연구센터를 방문해 무인자동차에 시승한 일도 혁신경제, 혁신산업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보여준 행보였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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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술과 네트워크, 창업과 도덕
‘혁신경제’의 성분을 뜯어보다
혈기 왕성한 스물셋의 나이에 현대건설에 입사한 청년 이명박은 빼어난 업무 능력을 발휘하며 5년 만에 임원, 서른다섯살인 1977년엔 드디어 사장 자리에 오른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피낭대교 건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주베일) 항만공사 수주 따위의 화려한 실적 행진이 그의 명성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세월이 흘러 양적 성장과 실적 우선주의라는 낡아빠진 신화의 완성판인 ‘대한민국 747’ 구호를 내건 ‘최고경영자(CEO) 이명박’은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한 해 전 5월 대통령선거 공식출마를 알리는 자리에서, 이명박 후보는 “국가 최고권력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며 ‘경제를 아는 대통령,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라 주장했다.
시이오 이명박이 정치인 이명박으로 탈바꿈하며 더 큰 야망을 키워나가던 무렵,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의사 안철수는 또다른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샐러리맨 이명박이 사장 자리에 오른 나이인 서른다섯살에 그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란 이름의 회사를 차려 경영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직원 3명으로 출발한 회사는 국내 소프트웨어 및 보안업체로는 최초로 매출 1000억원대 중견기업으로 자라났다. 백신을 만들더라도 개인에겐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한테서 사용료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원칙도 흔들리지 않았다.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던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영혼이 있는 승부’를 즐긴다는 시이오 안철수는 이러한 성공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18대 대통령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경제 대통령’ 이명박 정부의 5년 세월을 일컬어 “우리 사회를 낭떠러지로 몰고 간 위기”라 단칼에 정의 내린 그는 지난달 19일 출마선언문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으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가 펼쳐 보인 카드의 큰 얼개는 복지·정의·평화를 세 축으로 하는 ‘혁신경제’다. 안철수표 혁신경제가 맞닥뜨린 대상은 감세와 성장주의에 치우친 지난 5년간의 엠비(MB)노믹스 실험으로 상처가 덧난 한국 사회다. 혁신경제는 중증 상태로 내몰린 한국 사회를 치유할 성능 좋은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섣부른 기대나 불필요한 선입견은 벗어던지고 이제 안철수표 혁신경제 성분 하나하나를 냉정하게 분석·평가해봐야 할 시간이다.
시장과 도덕의 화해, 방향 좋치만 공허하진 않은가
▶ 그의 상품성은 참신함이다. 선거와 같은 정치 이벤트에서 참신함은 늘 ‘어느 정도 먹어주는’ 요인이다. 그래서 여전히 그는 지지율도 높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안철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이런 식이다. 어딘가 허전하다. 정치공학적 셈법을 걷어내고 나면 안철수 현상에선 무엇이 남을까? 안철수 현상의 사회경제적 기원이라고나 할까? 딱딱한 정책공약집을 펼쳐놓고 트집잡기하는 건 재미없다. 뭐니뭐니해도, 올해 대선의 최대 흥행요소인 안철수 현상,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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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선 후보(가운데)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 사무실에서 경제정책총괄역으로 캠프에 합류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왼쪽), 홍종호 서울대 교수와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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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보다 기술 중시하고
수평적인 기업구조에 친밀감
재벌을 향한 강한 거부감만큼
시장에 대한 믿음도 확고해 혁신경제 열쇳말은 ‘창업과 도덕’
대기업·제조업에 쏠린 시장을
중소·벤처 위주로 재편하는
포트폴리오 재조정 프로젝트 ‘혁신’이란 단어는 낡은 것이다. 어느 나라건 근대 이후 사회경제적 주요 격변기마다 사회개혁가들이 들고나온 단골메뉴에 가깝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바꾸려 했던 수많은 개혁가들은 으레 구시대의 끝자락에 속하기보다는, 새 시대의 문을 앞장서 열어젖힌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자, 혁신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1930년대에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대공황이 휩쓸고 간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주장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혁신의 일반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중요한 건 그때그때 등장하는 혁신론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 내용과 지향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풀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가 남긴 상처가 깊고 경기침체의 어두운 그림자마저 짙게 드리운 지금, 과연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알맹이는 무엇일까? 안철수, 그는 지금 왜 그리고 어떤 혁신을 외치는 걸까? 실타래처럼 얽힌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해결할 모범답안일까? MB식 ‘장돌뱅이 경제’와 다른 점은? 안철수 후보는 아직 자신의 종합적인 정책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본’도 없다. 다만 최근 나온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 소개된 기본적인 얼개와 그의 선거 캠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볼 때, 복지·정의·평화를 세 축으로 하는 ‘포용적 성장’을 혁신경제의 밑그림으로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복지는 성장의 필수조건”이라거나 “부자라서 복지 하는 게 아니고 복지 해서 부자 되는 것”이라는 말로, 성장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복지나 분배만을 강조하는 성장 반대론자라는 의심을 지우는 데 힘쓰고 있다. 또 출발 조건상의 평등과 공정한 규칙(게임룰)을 중요하게 여기고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따뜻한 시장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여야의 핵심 쟁점이 된 경제민주화 역시 공정한 시장경제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편이다. 재벌 대기업이 누리는 기득권과 특혜를 없애고, 이들이 시장거래 질서를 교란·왜곡하는 악습을 바로잡는 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으로 읽힌다. 당연하게도, 안 후보의 이런 생각에는 그의 삶,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CEO) 안철수’의 원체험이 강하게 녹아든 듯하다. 원체험이란 강렬한 인상을 줬거나 혹은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어 훗날 행동과 사고 방향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략 세 가지 정도를 꼽아볼 만하다. 첫째는 기술에 대한 강조. 여기서 기술이란 단지 좁은 의미의 공학적 기법을 넘어서는 것으로, 기업의 존재 기반이 되는 핵심 경쟁력 자체를 일컫는 말에 가깝다. 한마디로, 콘텐츠란 얘기다. 그가 몸담았던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예로 든다면, 컴퓨터바이러스를 잡는 백신 프로그램의 경쟁력 자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시이오 안철수의 경험이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 한국 경제사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대표적인 민간기업의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대체로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상업행위(장사)로 일정 규모의 돈을 번 뒤 나중에 가서야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들여 제품을 만들어 파는 방식으로 기업을 일궈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기술을 무기로 창업해 훗날 회사를 크게 일군 경우는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 경제를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의 과거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한때 청과물과 건어물, 잡화를 내다팔거나(삼성·두산) 포목상을 하기도 했고(엘지) 쌀장사(현대)를 통해 밑천을 마련하기도 했다. 만석꾼의 가문에서 직물공업에 투자한 경우(경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을 뜻할까?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 자본주의는 태생상 기술과 제품력을 밑거름으로 하는 장인자본주의라기보다는, ‘영업’에 무게중심을 둔 상인자본주의 쪽에 한발 더 걸쳐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이 점에서 안 후보의 경험은 독특하다. 그가 유독 스페셜리스트를 제너럴리스트보다 강조하는 비밀도, 머릿속에 그리는 경제상이 예컨대 영업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엠비(MB)식 ‘장돌뱅이 경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유도 그 실마리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중후반 무렵 그를 비롯해 한 무리의 기술형 벤처기업가들이 우리 경제 무대에 홀연히 등장하던 상황은 단지 ‘닷컴경제’의 개막 정도로만 설명하기 힘든 사회경제적 현상이었다. 얼핏 후발산업화의 선두주자였던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서 기술자본주의의 기운이 움트던 19세기 후반 시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탓이다. 벨과 에디슨, 다임러, 듀폰 등 내로라하는 걸출한 기술자(과학자)들이 잇따라 등장해 전기, 철강, 석유, 자동차, 화학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산업 분야를 키워냈던 그 격동의 시기에 유독 ‘혁신’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쟁규칙만 공정하면 시장은 잘 굴러간다? 둘째로는 네트워크에 대한 친밀감을 들 수 있다. 시이오 안철수에게 기술이 혁신의 효소라면 네트워크는 가히 그 숙주나 마찬가지다. 그가 몸담았고 일궈왔던, 한마디로 경제를 몸으로 익혔던 분야는 자동차·철강·정유·조선 등 전통적인 20세기형 중후장대 제조업이 아니다. 그의 무대는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대표되는 무형자산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21세기형 지식정보산업의 한 갈래였다. 이러한 신산업 분야에서는 산업 전체적으로는 수직적 통합과 계열화,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일방적 통제와 관리라는 익숙한 경제시스템이 들어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가 혁신경제의 주된 특징으로 경쟁과 배제보다는 공존과 포용을 먼저 앞세울 수 있는 배경도 전통적인 산업 분야의 최고경영자 출신 인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런 특수한 경험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속성상 수평적 구조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마련인 네트워크형 산업은 특정 분야나 가치체계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융합 패러다임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예를 들어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 협업과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분산형 경제구조의 육성 등이 그가 주장하는 혁신경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꼽을 수 있는 건 바로 시장에 대한 기본적 믿음이다. 안철수표 혁신경제에서 시장은 혁신의 혈관이자 ‘전파경로’로서 그 무엇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안 후보 자신이 경쟁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시장 메커니즘에 매우 익숙할뿐더러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그가 본격적으로 경영자의 삶을 살던 시기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시장 메커니즘이 사실상 처음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던 때와 정확히 맞물린다. 연줄과 연고 등 과거 개발독재 시기를 특징짓던 비시장적 요소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한 건 물론이다. 한마디로, 시이오 안철수가 발 딛고 선 지점은 처음부터 ‘모든 건 시장에서 판가름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명제가 지배하는 무대였던 셈이다. 어찌 보면 안 후보는 전통적인 경영자들에 견줘 오히려 더 시장에 열려 있고 친숙하며 자신감을 갖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혁신경제 기본명제는, 곧 경쟁규칙만 공정하다면 시장은 정상적으로 굴러갈뿐더러 최선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기본 인식의 거울상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표 혁신경제는 시장질서를 교란·왜곡하는 낡은 재벌 체제에 단호하게 개혁의 칼날을 들이밀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재벌 체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만큼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메커니즘의 분명한 한계를 직시하고 시장의 실패를 해결·보완하는 주체로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온 진보·좌파진영의 시각과도 상당한 거리를 둔다는 점 또한 지적해야 한다. 지금까지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원형(Archetype)을 형성한 여러 갈래 배경을 되짚어봤다. 이쯤에서 그가 제시하는 혁신경제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난다. 말 그대로, 낭떠러지로 내몰린 우리 사회를 구해낼 비밀병기이자,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실행프로그램’이다. 아마도 실행프로그램의 맨 앞자리는 창업이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 출마선언 직후인 지난달 21일 대선 후보로서의 첫 공식행보 현장으로 경기도 안산에 있는 창업사관학교를 선택했다.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행보였다. 이 자리에서 안 후보는 “창업에 뛰어들 때 개인이 위험을 모두 감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창업자들의 위험을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며 “정치를 하기로 한 마당에 그런 생각을 변함없이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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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열린 ‘정책네트워크 내일’ 2차 포럼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혁신경제’에 참여해 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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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실천 전략은 백지상태
금융 등 핵심분야 언급 없이
창업지원 같은 정책 내놓는 건
잔가지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재벌개혁 해법도 한계 뚜렷하다
문제의 싹을 대기업의 불공정한
‘시장거래’ 관행에서만 찾는다
‘착한 자본주의’ 역시 그렇다
도덕만으로 시장이 제어될까 이제 평가의 시간이다. 물론 안철수표 혁신경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아직은 이른 작업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해법인가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긴 어렵다. 다만 지금껏 드러난 얼개를 소재 삼아 개략적인 가채점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참신하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비어있다 우선, ‘방향은 옳다’라는 평가엔 굳이 인색할 필요가 없을 듯 보인다. 그가 강조하는 한국 경제 포트폴리오 재조정 작업은 분명 시급한 과제다. 수출 중심의 대기업·제조업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무게중심을 중소·벤처 혁신기업으로 옮기는 일은 한시라도 서둘러야 하는 작업이다. 한쪽에만 지나치게 집중된 자원과 인력을 고루 분산시켜줘야 경제 전반의 역동성도 되살아날 수 있다. 이미 우리 경제는 과거처럼 ‘될 놈만 밀어주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산업화 단계는 가뿐히 넘어선 지 오래다. 그간 관심을 끌지 못하던 사회적 경제의 싹을 키우겠다는 생각도 참신하다. 어느 나라이건 경제의 큰 뼈대는 정부-시장-제3부문-지하경제로 짜여 있기 마련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 구성원들을 먹고살게 만드는 숙제도 모두 이 4가지 안에서 풀어야 한다. 그간 큰 역할을 맡아왔던 정부와 시장은 이제 상대적 비중을 재조정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지하경제를 키울 수 없는 노릇이라면, 남은 건 하나다. 결국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제3부문에 좀더 많은 자원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제3부문의 핵심은 바로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올바른 해법을 가져다주는 건 결코 아니다. 조밀한 설계도와 꼼꼼한 실행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안철수표 혁신경제에는 최소한 앞으로 5년간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좌표가 무엇인지, 단계별 실천전략과 구체적 경로는 어떤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여전히 빈구석이 너무 많다. 시간이 지난다고 그 구석이 쉽게 채워질 것 같지도 않다. 당연히 모범답안으로서의 신뢰도도 아직은 높지 않은 편이다. 먼저, 혁신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정책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혁신경제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까 거듭 의문이 들게 만드는 이유다. 경제 체질, 구체적으로 산업구조의 근간을 바꾸는 일은 단지 창업을 활성화하거나 사회적 경제를 북돋는 것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산업구조를 바꾸는 일은 우리 경제가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인구 5000만명에 경제규모가 1200조원에 이르고 대외의존도마저 지나치게 높은 우리 경제는 무턱대고 방향을 틀기엔 몸집이 너무 크다. 그만큼 큰 그림과 세밀한 묘사가 함께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일자리 문제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산업구조를 바꾼다는 건 돈과 사람, 사회의 모든 자원이 몰리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창조작업이다. 지식정보산업을 필두로 한 혁신산업이 과연 한 세기 전 전기·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당시 혁신적인 신성장동력과 같은 강력한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일 혁신산업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기존 산업부문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공존 기간에 기존 산업과 혁신산업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과 계획표가 안철수표 혁신경제에는 빠져 있다. 금융부분 개혁 밑그림 없는 건 치명적 결함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인 재벌개혁 문제에 접근하는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한계는 뚜렷하다. 문제의 싹을 재벌 대기업의 공정하지 못한 ‘시장거래’ 관행에서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설령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사이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양극화나 중소 협력업체들의 의존도 심화를 막을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미 이른 상황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사이에 이익을 비롯한 성과물 전반의 공유까지 포함하는 산업생태계 재구성 프로젝트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착한 자본주의’ 역시 한번쯤 공개적인 논쟁의 무대 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과연 도덕만으로 시장을 제어할 수 있을까? 기나긴 자본주의 발전사를 돌이켜 보면, 항상 커다란 경제위기가 터질 때면 어김없이 그 ‘해법’으로 도덕의 부활, 윤리의 회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았다.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경제주체들의 탐욕을 제어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공통된 레퍼토리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최근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동네 골목상권을 침략하거나 빵집을 싹쓸이하는 재벌의 탐욕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냉혹한 시장경제에 올바른 경제윤리와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건 위기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는 작업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맞닥뜨린 문제는 단지 경제주체들의 무분별한 탐욕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사실 위기는 더이상 ‘돈 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말하자면 시스템 차원의 문제다. 재벌의 탐욕이 아니라 무능이 문제인 셈이다. 단지 도덕성을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장경제를 뼈대로 하는 경제 시스템 자체의 대수선 작업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자본주의가 걸어온 오랜 역사는 위기의 원인을 도덕 탓으로만 돌리는 움직임이 대부분 보수·우파의 위기 탈출 프로젝트였음을 일깨워준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번 대선에 뛰어든 여야 후보 모두가 입에 올리는 복지국가 건설과 관련해서도 알맹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복지국가란 사회 각 계층과 집단 간에 이뤄지는 극히 힘들고 지루한, 때론 치열한 갈등과 협상 과정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만일 안철수 후보가 우리 사회의 미래상으로 복지국가를 그리고 있다면, 그리고 혁신경제가 그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가 당장 앞으로 5년간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는지, 재원의 원천과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계층 및 집단과 복지동맹을 맺을 것인지, 반대하는 세력을 끌어안을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청사진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 현재 안철수표 혁신경제에서 이 난은 완전 백지상태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금융부문 개혁에 대한 밑그림조차 없는 건 안철수표 혁신경제의 치명적 결함이다. 경제를 혁신한다는 건, 단순하게 말하면 결국 돈의 물꼬를 새롭게 틔워주는 일이다. 창업자금 지원과 같은 정책은 극히 잔가지 중의 잔가지인 아이디어일 뿐이다. 현대경제에서 금융은 모든 것의 처음이자 끝이다. 한편으로는 급격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중에 넘쳐나는 과잉유동성의 물줄기를 어떤 방식으로 혁신경제 방식에 맞게 돌려놓을지, 그 과정에서 어떤 당근과 채찍으로 냉혹한 금융시장과 맞설지, 혁신경제에 어울릴 법한 혁신금융 시스템은 어떤 모습을 띨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정교한 해답과 실행계획을 찾지 못한다면 안철수표 혁신경제엔 미래가 없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관련 영상] 무너진 대세론과 ‘박근혜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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