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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해체와 <부산일보> 등 관련 재산의 사회환원 논쟁이 대선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문제를 자사 지면에 다룬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19일 최종 해고됐다. 18일 부산일보 노조 사무실에 이 국장의 조형물 등이 세워져 있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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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아, 부산일보
‘해고’ 편집국장 이정호씨 인터뷰
그날 윤전기 앞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 <부산일보>는 웬만한 중앙일간지 못지않은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신문의 편집국장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인터뷰 도중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1988년 단협에 명시된 ‘편집권 독립 조항’을 또렷이 기억해내곤 외우기 시작했다. “편집권 독립은 외부나 경영진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아니하고, 독자들의 알권리와 사회정의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
책상을 빼앗긴 ‘거리의 편집국장’ 이정호 정수장학회에 치이는 이 신문의 미래는… 이정호 편집국장은 지난 7월 <부산일보>를 나와 ‘거리의 편집국장’으로 살고 있다. 부산일보 현관 앞에 책상을 차리고 앉아 있다가 9월엔 서울시 태평로 언론회관 앞으로 이사왔다. 이정호 편집국장을 지난 18일 오전 부산시 수정동 부산일보사 앞에서 만났다. 부산일보 건물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왜 들어가지 못합니까? “들어가면 벌금 100만원을 내야 하거든요. 회사가 출입금지 및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놓았어요.” 이 국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부산일보 건물에서 사원들이 몰려나왔다. 사원들은 이 국장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잘 있었어?” 부산일보의 소유주인 정수장학회가 민간 기업에 비밀리에 매각을 추진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국내 최대 지방일간지인 부산일보가 기로에 서게 됐다. 군부정권이 강탈한 신문사를 원래 소유주에게 반환하지 않고 그대로 운영해도 되는가? 유력한 대선 후보와 관련된 신문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논란의 한가운데를 이정호 편집국장이 뚫고 왔다. 한때 이사장을 맡았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조만간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한 상태여서, 이에 따른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결정에 따라 부산일보의 미래가 결정될 전망이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11월30일 창간 66년 만에 초유의 발행 중단 사태를 겪었다. 오전 11시 경영진의 신문 제작 중단 명령이 떨어졌고 인쇄를 기다리던 신문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날 신문은 ‘부산일보 사태’를 다룰 예정이었다. 노사 대립은 이 일을 전후로 극으로 치달았다. 경영진은 이정호 편집국장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 징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국장도 반년 이상 대기발령 상태에서 출근해 신문을 만들었다. 회사는 올해 정치·사회·편집부장도 타 부서로 인사 조처를 내렸으나, 이들은 원래 부서에서 취재·편집을 지휘하고 기자들 또한 이를 따르는 중이다. -부산일보 발행 중단 사태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지난해 11월18일이 시발이었어요. 신문 발행이 두 시간 늦어졌죠. 그걸로 이호진 노조위원장이 면직(해고)되고 나도 징계위에 회부되고….” 부산일보 노조는 당시 전국언론노조와 함께 언론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요구했다. 부산일보 기자들은 이를 취재하고 이 국장과 편집간부들은 1면 사이드 기사로 배치한다. 신문 발행 직전 이 기사의 게재 사실을 알게 된 경영진은 삭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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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 사태를 기사화하자
경영진 또 윤전실에 와 “기사 빼라”
“빼라” “못 뺀다” 실랑이하다
노조위원장이 윤전기 스위치 눌러 2004년 박근혜 한나라 대표 된 뒤
장학회-부산일보 사태 불거져
편집국장 추천제를 없애는 걸
최필립은 오랫동안 갈망
최필립 퇴진만으론 해결 안돼
정수재단 해체해 공익법인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요구하고 싸웠는데, 결국 저분의 머릿속에 든 건 자기 생명 유지하면서 시끄러운 건 분리하면 된다는 것이었으니… 허탈했습니다. 특정 기업에 팔아넘기면 부산일보는 기업의 방패막이가 됩니다. 문제가 더 커집니다.” -박근혜 후보가 조만간 입장을 밝힌다고 합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첫째, 정수재단 해체하고 공익법인을 만들어 지역 상공계, 학계, 시민단체, 언론계 등의 덕망 있는 인사로 이사진을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한겨레>처럼 국민주 방식이나 우리사주 방식도 검토할 만하고요. 중요한 원칙은 공공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소유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수장학회를 그대로 두고 최필립 이사장만 물러나게 하거나 이사 몇 명을 교체하면 계속 논란을 부를 겁니다.” -부산일보는 1988년 국내 처음으로 편집국장 추천제를 도입한 언론사입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지금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은 어느 정도입니까? “기자들의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1년 가까이 지면 논조가 변하지 않고 경영진이 새 편집국장을 임명 못 하는 이유는 간부들의 희생과 기자들의 의지 때문입니다.” 이 국장의 주요 징계 사유는 ‘상사 명령 불복종’이다. 첫 대기발령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자 회사는 다시 대기발령 징계를 내렸다. 인터뷰를 한 날은 두번째 대기발령 징계를 받은 지 6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6개월이면 자동해고된다. 인터뷰 막바지 그는 부산지검에 나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회사가 업무방해 혐의로 이 국장을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나와달라고 요청해서다. 그는 “대기발령 상태에서도 일을 도와줬는데 무슨 업무방해라고 하는 건지…” 하며 일어섰다. 지금 부산일보의 편집국장은 거리에 있다. 매일 오전 서울 태평로 거리에 나가 농성을 한다. 징계 무효확인소송 등을 내며 법정 투쟁을 한다. 이날 밤 이정호 국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결국 해고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네요. 19일 0시부터랍니다.” 부산/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관련 영상] 최성진 기자가 전망한 최필립 이사장의 향후행보(김뉴타 1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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