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6 21:07
수정 : 2012.11.16 22:10
조희팔 사건에서 김광준 비리까지
현재까지 드러난 서울고등검찰청 김광준(51) 검사의 비리 혐의는 백화점급이다. 차명계좌를 통해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으로부터 받은 2억4000여만원, 유진그룹 자회사 대표에게서 받은 6억여원, 케이티(KT) 자회사 전직 임원한테서 받은 국외여행 경비 수백만원(이 전직 임원은 횡령 등 혐의로 케이티로부터 15일 고소당했다) 등….
이뿐만이 아니다. 유진그룹의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부부가 연루된 공갈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 또다른 기업으로부터 1억원을 받으면서 부속실 여직원의 계좌를 사용한 혐의 등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검사 신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범죄행각이 드러났다.
조희팔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김 검사는 처음 사건이 보도된 바로 다음날인 9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혐의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한 금전 거래일 뿐”이라는 해명이었다.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김 검사가 혐의를 부인한 직후 김수창 특임검사를 임명해 “철저하게 사실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가성이 입증돼 뇌물죄가 적용될지는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직 간부급 검사가 차명계좌를 사용해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찰로서는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다.
특임검사팀은 13일과 14일 연속으로 김 검사를 소환조사한 뒤 15일 서울중앙지법에 김 검사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19일 영장실질심사를 할 예정이다.
김광준 검사 사건에 주목해서 볼 부분은 ‘조희팔’이다. 김 검사의 차명계좌는 조씨의 자금관리 총책이자 최측근인 강아무개(51)씨의 계좌를 경찰이 뒤지다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2008년 11월 중국으로 밀항했다. 경찰은 조씨의 은닉재산을 관리한 강씨 계좌에서 부산지역 사업가 최아무개씨 명의로 된 김 검사의 차명계좌를 발견했다. 결국 조희팔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된 셈이다.
조희팔 사건은 조씨가 2004년부터 안마기 등의 건강상품 다단계 판매를 시작해 피해자 5만여명에 피해액 3조5000억원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2009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사건을 말한다. 조씨는 자신의 상품이 전국 병원 등에 임대설치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고 사람들을 꾀었다.
처음에는 투자자들에게 꼬박꼬박 수익금을 나눠주며 신뢰를 쌓던 조씨는 돌연 2008년부터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조씨의 회사들이 폐업신고를 하고 연락두절 상태에 놓이자 전국의 투자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고소·고발이 이어지자 조씨는 2008년 12월 여러번의 시도 끝에 중국 밀항에 성공했고, 이 시기를 즈음해 다른 공범들도 대부분 중국으로 밀항했다. 핵심 피의자의 행방불명으로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피해자들은 이 과정에서 경찰이 눈을 감아줬다고 주장한다. 실제 2008년 밀항 당시 조씨를 눈앞에서 놓친 한 해양경찰관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지난 9월엔 조씨에게 뇌물 및 향응을 받은 혐의(수뢰 및 직무유기)로 대구 성서경찰서의 ㅈ(37) 경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ㅈ 경사는 직접 조씨를 수사하기도 했던 경찰관이었다. 조희팔 피해자 모임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쪽은 “더 큰 배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배후 있다” 소문이 사실로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급진전된 것은 올해 5월16일 중국에서 도피중이던 조씨의 측근 최아무개(55)씨와 강아무개(44)씨가 중국 공안에 잡혀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 압송되면서부터다. 피해자들은 “드디어 사건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며 반색했지만, 불과 5일 뒤 경찰은 “지난해 12월 중국 옌타이시의 한 호텔에서 조씨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한다.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조씨가 살아 있고 추적중”이라는 검찰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면서, 꺼져가던 조희팔 수사의 불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한겨레> 9월12일치 1면)
이런 상황에서, 2008년 11월 중국으로 밀항했던 조씨의 최측근 강아무개씨가 김 검사의 차명계좌에 돈을 입금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경찰에 의해서였다. 세간의 소문으로만 돌았던 간부급 검사 연루설이 실제로 밝혀진 것이다.
‘조씨의 밀항을 도왔다’, ‘사건을 덮으려 조씨의 사망을 성급하게 발표했다’, ‘경찰 고위간부가 연루돼 있다’ 등의 의심을 샀던 경찰로선 반격의 기세를 잡았다. 하지만 검찰도 바로 조씨의 측근 최씨와 강씨를 대구지검으로 압송시켰던 김수창 검사를 특임검사로 지명했다. 조씨 사건을 놓고 벌이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
이번 사건에는 검경 수사권 갈등으로 인한 기싸움도 바탕에 깔려 있다. 수사권 갈등은 올해 초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실제 일선에서는 피의자 등의 호송·인치와 사건의 이송 지휘 등으로 검경은 자잘한 마찰을 빚어 왔다. 개정 형사소송법을 해석하는 검경의 시각차가 갈등의 원인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되, 지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따로 정해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령에 호송·인치, 이송지휘 등에 관한 항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은 “따를 이유가 없다”고 하고, 검찰은 “세부 항목이 없어도 모두 수사에 포함되므로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고자 올 초부터 검경 ‘수사협의회’가 두달에 한번꼴로 열린다. 그런데 이번 김 검사 사건을 놓고 지난 15일 검경 수사협의회가 열렸다. 김 검사 사건이 단순히 개인비리가 아닌 검경 수사권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특임검사 지명에 대해 “수사 가로채기다”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검찰이 수사를 지휘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응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수창 특임검사의 ‘의사·간호사’ 발언이 나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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