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2012, <한겨레>토요판이 만난 인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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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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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부인 이수자
사자여 명예를 포기하라?
임진년 흑룡의 해가 지나도, ‘상처 입은 용’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세계적인 음악가 고 윤이상씨의 이름이 보수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통영의 딸’ 논란이었다. 일부 보수 시민·종교단체들이 통영 출신의 신숙자(69)씨와 두 딸 오혜원(35)·규원(33)씨 모녀가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살고 있다며, 이들을 북으로 보낸 장본인이 윤이상이라고 지목하면서부터다. 이들 세 모녀는 1980년대 독일 유학생 오길남 박사의 부인과 딸들로, 오 박사 가족은 1985년 독일을 떠나 입북했다가 이듬해 오씨만 홀로 탈출해 유럽을 떠돌다 1992년 귀국했다. 이후 오씨는 저술과 각종 강연을 통해 윤이상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입북하도록 직접 권유했고, 자신이 북한을 탈출한 뒤에도 윤이상은 북에 남은 가족의 생사를 위협하며 자신에게 북에 있는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압박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한동안 통영이 시끄러웠다.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윤이상씨 유족이 반응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부인 이수자(85)씨와 딸 윤정(62)씨가 신숙자씨 남편 오길남 박사와 통영 현대교회 방수열 목사를 ‘사자명예훼손’으로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고소했다. 그리고 모녀는 지난 1월28일치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를 통해 처음 입을 열었다. “그 고통 이해하지만 더이상 윤이상 이름을 팔지 말라.” ‘통영의 딸’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북한은 지난 5월 신숙자씨 사망 소식을 유엔에 통보했다. 1980년대부터 앓아온 간질환 때문이라는 사망통지서를 받았지만, 오길남씨는 신씨의 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밝히지 않은 북한의 통지서를 믿지 않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가을까지도 북한 관련 뉴스가 터지면 종종 통영 자택 앞에서 윤이상 가족 규탄시위를 벌였다. 통영지청은 피고소인 오길남씨와 방수열 목사의 윤이상씨 사자명예훼손 여부를 두고 고소인인 유족 쪽 조사까지 다 마쳤음에도 검토할 서류가 많다는 이유로 1년째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12월 독일 국적의 이수자·윤정씨 모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당시 해외동포 자격으로 조문한 것을 두고 보수 인사들이 모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씨 모녀의 지인이 말했다. “달라진 것은 없어요. 정권 말고는. 뭐, 한동안 엎드려 있어야겠지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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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치, 10월 13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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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신 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3일째 되던 12월22일 오전 10시13분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전화는 더이상 울리지 않았다. <한겨레> 토요판과 최필립 이사장의 첫 만남은 꼭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2년 기업인 고 김지태씨로부터 강탈한 언론사 주식을 기본재산으로 하는 정수장학회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당선인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한겨레는 최 이사장이 박 당선인과 정수장학회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 보고 지난 1월 초부터 인터뷰를 시도했다. 다음달인 2월4일치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정수장학회, 부산이 술렁인다’)는 최 이사장을 수차례 대면·전화 인터뷰 한 결과였다. 당시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임금님’으로, 박 당선인을 ‘큰 영애님’으로 부르는 등 박정희 일가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또 그는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와 박 당선인을 상대로 편집권 독립투쟁을 벌이던 <부산일보>의 매각 가능성도 수차례 내비쳤다. 정수장학회는 <문화방송>(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최 이사장이 그때 처음 언급했던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주식 처분은 박 당선인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8월20일 이후 급물살을 탔다. 최 이사장은 9월27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수장학회 문제 처리와 관련해 “10월 말쯤 되면 결승의 날이 다가오는 건데, 나도 한몫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0월8일 그는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을 팔아 특정 지역 대상 복지사업을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구체적 내용은 10월13일치 토요판 커버스토리 ‘최필립의 비밀회동’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사 지분 매각 방침 등을 밝히려 했던 정수장학회의 시도는 한겨레 보도로 물거품이 됐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정수장학회의 이런 계획을 ‘박근혜 후보 지원용’으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 당선인은 10월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 이사장의 사퇴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최 이사장의 ‘잠적’은 박 당선인의 기자회견 직후부터 대선이 끝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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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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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살해 지아무개
안경이 부서지고 눈가가 찢어져도…
지아무개(19)군은 어머니의 ‘3년상’을 잘 치르고 있을까. 지난해 3월 서울 광진구 집에서 어머니 박아무개(살해 당시 51살)씨를 죽여 8개월간 방 안에 방치한 지군(당시 고등학교 3학년)은 2심 판결 후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지난달 29일 기각됐다. 이로써 1, 2심에서 받았던 단기 3년, 장기 3년6개월 형이 확정됐다. 지군이 대법원에 상고한 이유는 형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4월 서울 송파구 성동구치소에 수감중이던 지군이 같은 방에 있던 소년범에게 맞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년범은 “너는 엄마도 죽인 놈이 왜 그렇게 형을 짧게 받았느냐”며 시비를 걸다가 지군을 때렸다. 지군은 안경이 부서지고 눈가가 찢어졌지만 대항해 싸우지 않았다. 지군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 문제의 소년범이 독방에 일주일 동안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로 마무리됐다. 이외에도 지군은 특이한 범죄 경력으로 또래 소년범들에게 따돌림받는 일이 잦았다. 담당 교도관은 지군의 아버지(53)에게 “소년범들 사이에선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으니 차라리 성인범들 가운데 있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1993년 11월생인 지군은 만 19살이 되는 올해 11월 이전에 최종판결을 받으면 소년교도소로 가지만 11월 이후에 최종판결을 받으면 성인교도소로 간다. 지군의 아버지는 “교도관의 조언을 들어서 성인범으로 가도록 11월 이후에 판결이 나는 대법원에 상고했다”고 말했다. 지군은 현재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생활하고 있다. 주로 아버지가 넣어준 기독교 성서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등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다. 지군은 사건 이후 대학에 진학한 동갑내기 여자친구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있지만 지군의 아버지가 전하지 않고 있다. 1심 판결이 있었던 3월보다 몸무게가 5㎏가량 준 상태다. 3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윤종구 부장판사(형사11부)는 “피고인은 3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3년에서 3년6개월간 징역을 살며 마음을 치유하고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했다. 지군은 이르면 2014년 12월, 늦으면 2015년 4월에 ‘3년상’을 마치고 출소할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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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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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부’ 문정현
그 돈 전액삭감하시오!
“강정에 평~화를~ 구럼비야 사~랑해.”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생명평화 성탄미사’. 평화의 인사를 청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마이크를 잡은 문정현(72) 신부가 커다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방금 전 지팡이에 의존해 허리를 짚고 일어난 노신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멘붕’(멘탈붕괴)이라고 말합니다… 주저앉아 있으시겠습니까? 일어나십시오.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힘냅시다!” 1970년대 이후 줄곧 ‘길 위의 신부’로 살아오면서 좀처럼 좌절이란 걸 모르던 문 신부도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 앞에서만큼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매순간 놓지 않던 트위터도, 휴대폰 전원도 잠시 끊어놨던 이유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 신부는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 22일부터 대한문 앞 ‘함께 살자 농성촌’의 촌장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족들 그리고 밀양 송전탑 반대 및 탈핵 지지자 등 ‘전국 곳곳에서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모인 그곳. 누군가에겐 “이념으로 무장한 전국구 시위꾼들의 불법 시설물”일 뿐인 이 농성촌이 문 신부에게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는 말했다. “생명과 평화는 지속적으로 외칠 때 울려 퍼지게 돼 있다”고. “우리가 덜 싸웠다고 생각해야지 실망할 필요가 없다”던 지난 4월 인터뷰 때와 포개지는 말이었다. 문 신부는 당시 제주 강정 포구에서 해군기지 건설반대 시위를 벌이다 방파제에서 추락해 병상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그 마음으로 또다시 길 위에 선다. 구럼비 바위는 파괴됐지만 26일부턴 또다시 국회 앞을 찾아가 제주도 해군기지 관련 예산안 전액 삭감을 호소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쫓겨나고 내몰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때까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하는 월요미사(오후 6시30분)도 계속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영하 7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 진행된 1시간 30분 미사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며 그는 “출발이 좋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은 18년이었어. 지금이야 임기도 있잖아.” 그가 웃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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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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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청취자와 작별하고 어딘가로 떠나
2012년은, 어떤 측면에서는 ‘여전히’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해였다. 여전히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나꼼수가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올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1년의 나꼼수가 인터넷 팟캐스트 라디오방송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며 미디어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면,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2012년의 나꼼수는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나꼼수의 진행자 가운데 한명인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시 김씨는 “정권과 맞장뜨겠다”며 서울 노원갑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운동 기간에 터진 ‘김용민 막말 논란’에 휘말려 떨어졌다. 야권도 덩달아 참패했다. 대형 선거이슈로 떠오른 ‘김용민 막말’의 원인 제공자로서 나꼼수가 야권 패배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나꼼수 책임론’이 일었다. <한겨레> 토요판은 총선 직후인 4월28일치 커버스토리(‘나꼼수 비판에 답한다’)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인터뷰를 실었다. 김 총수가 올해 언론과 제대로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한겨레는 김 총수에게 나꼼수 책임론을 따져물었고, 그는 “(나꼼수 책임론은) 진보와 보수의 국공합작(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휴)”이란 표현을 쓰며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김 총수에 관한 인터뷰가 보도된 뒤 적잖은 후폭풍이 일었다. 인터뷰 기사 편집과 관련해 인터뷰어(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와 인터뷰이의 시각과 입장이 달랐던 탓이었다. 양쪽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며 한겨레에 대한 비판과 ‘나꼼수 팬덤’에 대한 회의론이 동시에 제기됐다. 나꼼수는 4·11 총선 이후 특별한 주목을 받을 일이 없었으나 12·19 대선 직전 ‘나꼼수 호외’ 방송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등 다시 활발히 움직였다. 나꼼수가 제기한 박근혜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굿판’ 의혹,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여론조작 의혹, 김정남 망명 기자회견설 등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나꼼수의 이런 ‘활약’이 대선 국면에서 어떤 효과를 나타냈는지 등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나꼼수는 대선 전날인 12월18일 방송을 끝으로 청취자와의 작별을 알렸다. 나꼼수의 진행자 셋 가운데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대선 직후인 지난 22일 이후 국외 체류 중이다. 김용민씨는 27일 “나꼼수는 그동안 많은 시민이 느끼는 시대의 울분을 최대한 대변하고 싶었다. 나꼼수에 대한 지지는, 사악한 이명박 정권에 맞선 데 대한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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