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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2 21:28 수정 : 2013.02.23 17:39

사찰 그 이후, 장진수는 말한다

[토요판 / 커버스토리] 7급 공무원의 분노
사찰 그 이후, 장진수는 말한다

▶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정권의 입맛에 맞춰 움직이는 공무원들을 보며 이런 비난들을 합니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걸 몰라서 하는 얘기들은 아니에요. 민간인 불법사찰을 시켜도 이의제기 하나 없이 “네, 알겠습니다” 따르기만 하니 하는 말이지요. 하긴, 잘못된 걸 잘못했다고 내부고발해봤자 보호받기는커녕 파면되기 일쑤인데 누가 입을 열고 싶겠어요. 제발, 우리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찾아주세요~.

“왜 시키는 대로 했을까…국정원 여직원도 나처럼 답답”

지원관실에 하명 내려오면7개팀이 나가서 사찰해 오고
총괄과에서 보고할지 말지 결정
‘비선 보고’ 진경락 과장은
김종익씨 문제만 안 터졌어도
특별승진이 될 예정이었다
청와대 개입 폭로하겠다니
변호사마저 득될 것 없다며
실리를 따지라고 충고하지만
우리 아이들 보면서
내가 주범인 걸로 할 순 없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처음 세상에 드러난 지 2년 8개월이 흘렀다.

검찰의 수사와 재수사에 이어 국가인권위가 지난 7일 불법사찰 사건 직권조사 결과를 내놨다. 검찰의 재수사 결과를 뒤집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불법 사찰 개입 여부를 처음으로 인정한 결과였다. 소문만 무성했던 ‘머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말이 없다. 누가 책임져야 하고, 구제 받아야 할 피해자는 얼마나 되는가. 무엇이 진실인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등 그사이 터져나온 또다른 대형 사건들에 밀려 진실은 그냥 잊혀지는가.

길 잃은 불법 민간인 사찰, 그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의 얘기를 지난 16일과 21일 두 차례 들어봤다. 청와대가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에 개입했다고 폭로해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던 장진수(40) 주무관이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하는데 충실한 ‘7급 공무원’이었던 그는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을 앞두고 사찰 자료를 파기했다. 그 일로 그는 정권의 불법 행위에 가담한 ‘꼬리’가 됐고, 유죄를 선고받아 3년째 대기발령 중이다.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한다. 그는 한낮에 자기 오피스텔에서 댓글 다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국정원 여직원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엠비정부, 어떤 나쁜 수식어도 잘 어울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어떻게 지낸다고 할 것도 없어요. 하는 일 없이 운동이나 좀 하다가 요즘엔 자기계발이라도 해야 할까 싶어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아무래도 대법원 판결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요.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노회찬 의원 유죄 판결 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많이 접었다고 해야 할까요.”

- 설 전에 트위터에 ‘엠비 정부 5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올리셨던데,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는 ‘최악이었다’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어요. 불법, 부정, 부패, 사찰 등 나쁜 말을 다 갖다 넣어도 안 어울리는 말이 없는 정부였어요.”

- 만일 불법사찰 문제에 본인이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이런 평가를 내렸을까요?

“네, 저는 (이명박 정부 5년을) 아니까요. 형편 없었어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분위기가 체감할 정도로 확 바뀌었어요. 참여정부는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수평적인 문화였어요. 그런 문화가 수직적으로 확 바뀌었어요. 서슬이 퍼렇다는 말이 공무원 세계에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누가 정권을 잡든 공무원들은 그저 정권에 맞춰 일하는데, 공무원들 사이에 음성적 저항이 있다느니 하며, 견제했으니까요.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니면 적이라고 본다든가 하는 느낌도 있었죠. 포항 출신이 득세하니까, 누가 포항 출신이라고 하면 ‘어이~○ 사무관, 포항 출신이었어?’ 그러면서 농담이 오갔을 정도니까요.”

- 서슬 퍼런 분위기 속, 지원관실은 어떤 위상이었나요.

“총리실 소속이지만 다른 부처 파견 공무원들이 모인 데라 총리실 직원들은 ‘우리 조직이다’ 생각하지 않았어요. 별동대라는 인식이 컸죠. 총리실 소속이면서도 총리실을 이 잡듯 한다고 할까요, 그런 분위기도 좀 있었고.

- 별동대 조직의 실제 위세는 어땠어요

“누구도 함부로 못하는 힘있는 조직이었죠. 청와대 다음 가는 공무원 중의 ‘갑’이었어요. 감사원도 전혀 안 두려워했을 정도니 말 다 했죠. 지원관실 직원들은 자부심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무소불위였어요.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 시절엔 비리 공무원을 적발해도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힘들게 진술서를 받아내도 번복해버리면 그만이고. 그런데 지원관실에선 그냥 ‘조치해’ 한마디면 됐어요. 일선 지방경찰청 정도는 그냥 전화만 해도 될 정도였으니.”

장진수 주무관은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증거인멸 개입을 폭로할 당시 “깔끔하게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죗값을 받는 게 설령 당장은 힘들어지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제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눈에 “국정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밝힌 국정원 여직원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지원관실이 만들어지고 1년 뒤에 오셨더군요. 어떤 경로로 지원관실에 오게 됐나요?

“제 전임자인 김경동 주무관이 일을 하다가 2년을 못 채우고 1년 만에 (원래 소속된) 행정안전부로 복귀하면서 저를 추천했어요. 제가 참여정부 시절 (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인) 조사심의관실에 있었던 경험 때문인 것 같았어요. 저도 다른 부서로 옮기려던 찰나라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리고 나서 진경락 (기획총괄) 과장이 저를 보러 왔어요. 별로 묻는 것도 없이 3분 정도 있다가 가길래 안 된 건줄 알았죠. 나중에 발령이 나서 뜻밖이란 생각을 했었어요.”

- 경북 문경 출신인데 티케이(TK) 지역 출신이라는 게 영향을 미쳤나요.

“그래서 나를 받아줬나 그런 생각도 들었죠. (웃음) 진경락 과장이 결정하면 끝나는 문제니까…진 과장이 티케이 출신을 선호했던 거 같아요.”

- 지원관실에 가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뜻밖’이란 말이 ‘기분 좋았다’는 말이에요. 그땐 일 잘 한다고 인정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람들도 다들 축하한다고 그랬죠.”

-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조직에 대한 우려는 없으셨나요?

“왜 없었겠어요. 넉달쯤 됐을 때, ‘여기 좀 아닌 것 같다’고 본부에 빼달라고 한 적도 있는 걸요. ‘조금만 더 있어보라’고 해서 남긴 했지만요. 이상하다는 느낌에 나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조직에 힘이 있어 편한데 뭐 좀 더 참지 하는 생각에 애를 쓰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요.”

- 대통령에 대한 ‘일심 충성’문건도 있다던데, 진짜 그런 맹세들을 했나요?

“실제 워크샵에서 일심 충성 맹세를 했다는데, 제 경우는 1년 뒤에 들어와서 그런가 그런 걸 한 적은 없어요. 솔직히 일심 충성, 친위 부대란 말 솔직히 이런 건 좀 아니다 싶지요. 그렇지만 뭐라고 할 수 있나요. 다만 지원관실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나라를 위한다고 생각해요. 청와대에서 내려온 일이라고 하면, 그게 대통령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거죠. 하지만 정권에 대한 충성이 곧 나라에 대한 충성은 아닌데,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 잘못된 일을 하는 건 아닌지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지나고 생각하니 그렇다는 얘기에요.”

- 지원관실은 어떻게 굴러갔나요?

“총괄과 포함 8개 팀으로 나눠져 있었죠. 한 팀에 5명씩. 7개 팀이 나가서 공무원 비리를 적발하든, 사찰을 해오든 일을 해오면 그걸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자료 만들어 어떻게 보고하고 처리할지 결정하는 건 총괄과에서 하죠. 저는 총괄과에서 비용 내주고, 출장비 끊어주는 등 서무일을 봤고요. 팀 사람들 (조사하러 나가면) 며칠씩 사무실에 안 나오기도 하죠. 다른 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뭘 하는지는 서로가 잘 몰라요.”

- 지원관실 직원들이 42명이나 되던데, 처벌받은 사람은 몇 명 안 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사찰 관련 업무를 안 했나요?

“다들 비슷한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은 점검1팀에서 했으니까. 점검1팀 위주로 처벌을 받은 거죠.”

- 예산 업무를 하셨다니 말씀인데,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지원관실 특수활동비 떼주는 데 대해 문제 의식은 없으셨나요?

“부끄럽지만 전임이 하던 대로 했어요. 제가 바꿀 수 있거나 할 순 없었어요. 공무원들 일이 다 그렇죠.”

- 지원관실 직무규정을 보니, 감찰 외에도 공직자 사기 진작, 고충처리 지원, 우수 공무원 발굴 이런 임무도 있던데요.

“(웃음) 그냥 써놓은 거죠. 그런 일은 거의 안 하죠.”

- 7개 팀은 주로 어떤 식으로 임무를 수행했나요.

“하명이 내려와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제보나 소문 듣고 스스로 (감찰하러) 나가는 경우도 있고 그렇죠. (이 정권 들어) 하명이 굉장히 많았죠. 원래 이 조직이 그런 데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 시키는 일을 하면 되니 실적 내긴 좋았겠네요.

“(웃음) 완전 편하죠. 알아보라는 사건 알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보고하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별 문제 없던데요’ 해서는 안 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뭐라도 해와야 하니까. 게다가 하명이 많으니 한 팀이, 다발적으로 많은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원관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장·차관·주요 공기업 기관장들 인사 때 검증 작업을 하는 거에요. 정기적인 인사 검증 업무를 하면서 ‘누구 좀 조사해와’ 해서 할 일은 할 일대로 많아지고….”

책상에 노동부 명단 펴놓고 ○, △, ×표…

장진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폭로한 뒤인 지난해 3월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돼 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장관 인사청문회 때 각종 의혹들이 걸러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가 그런 건가요? (웃음)

“경찰·국정원도 인사 검증 작업을 하지만 예전엔 총리실 검증을 대단히 신뢰했다고 들었어요. 지원관실의 검증 실력도 믿을 만했을텐데, 문제는 위에서 총괄과장 등을 통해서 ‘이 사람은 나쁜 걸 좀 더 추가해’ 혹은 ‘칭찬 좀 추가해서 올려’하는 식이 되다 보니 제대로 검증이 안 됐을 순 있죠. 사실 관계를 좀더 꼼꼼히 확인해오라는 지시는 괜찮겠지만 이런식으로 중간에서 누군가 의도적인 개입을 하면 안 되는 건데…예전엔 정말 그렇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 검찰 수사를 보니, 김종익씨를 사찰했던 김충곤 점검1팀장이 ‘이석재’란 가명을 썼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지원관실 직원들은 다들 가명을 쓰면서 은밀히 활동하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가명을 써도 같은 팀 사람이 아니면 서로 잘 모르고요. 사실 가명 쓰는 걸 두고 불법이다 아니다 검토하면서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어요. 하지만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용했죠. 가명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에요. 비리 공무원을 적발해내면 항의 정도가 아니라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실제로 어떤 공무원의 비리를 적발한 뒤 ‘당신 아들 ○○ 초등학교 ○학년 ○이지?’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명은 불가피할 때만 조심스럽게 사용했는데, 이번 지원관실에선 그런 것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김종익씨 건만 봐도 그렇잖아요. 김종익씨 건의 경우, ‘공기업 임원이 블로그에 대통령 비방하는 쥐코 동영상을 올려놨다’는 제보 때문에 사찰을 했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나갈 필요도 없이, 블로그에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지 올라왔다면 블로그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김씨 회사를 찾아가서 회계장부 같은 서류까지 들여다봤단 말이에요. 민간인 사찰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다 보니 그걸 숨기기 위해 가명을 쓴 게 아닌가 싶어요. 굉장히 나쁜 거죠.”

- ‘대포폰’ 사용도 일상화돼 있었나요?

“다들 그런 건 아니에요. 대부분이 자기 휴대폰과 전화기 겸 무전기 등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총리실 지급폰 2개를 쓰죠. 그런데 이인규 지원관과 진경락 과장,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은 자기들 세 사람만 통화하는 휴대폰 한 대를 더 갖고 있었죠. 이 사람들이 도청을 굉장히 의식했거든요. 전임자인 김경동 주무관 명의로 개통했던 전화를 쓰다가 김 주무관이 행안부로 복귀한 뒤엔 이걸 해지하고, 제가 진 과장과 함께 마포 합정동 대리점에 가서 진 과장 친구 이름으로 3개를 새로 개통했어요. 제가 예산 담당이라 나중에 전화 요금 나온 걸 보니 이 지원관은 거의 통화를 안 했어요. 진 과장과 최 행정관은 통화를 많이 했고요.”

- 이인규 지원관과 진경락 과장의 관계가 궁금해요. 직위는 이 지원관이 높은데 검찰 재조사 결과 등을 보면, 실세는 진 과장 같다는 인상이 들더군요.

“‘진 과장이 더 세다’ 저는 그렇게 인식했어요. 성격 면에서 이 지원관은 뭘 꼼꼼하게 지시하고 처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다만 문제 없이 처리해라’ 정도였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 과장이 지원관실에서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 두 사람 사이 갈등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초기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왔을 때 이 지원관은 민정수석실의 지휘를 받고 싶어했지만 진 과장은 고용노사비서실 쪽과 가까웠죠.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 지원관이 고용노사 라인에서 욕도 좀 먹고 그랬어요. 이 지원관 방에서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싸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일도 더러 있었죠. 사실 김종익씨 사찰 문제가 방송에 터져나오지 않았다면, 진 과장은 그해 7월 승진(4→3급)을 해 (원래 소속된) 고용노동부로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 인사가 예정돼 있었나요?

“특별 승진을 위한 인사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죠. 그런데 진 과장이 어느날 저한테 ‘청와대에서는 자꾸 날더러 승진을 하라는데, 총리실은 안 들어주고…그래서 중간에서 아주 죽을 것 같다’고 그러는 거에요. 4급은 대개 5년 이상 근무해야 3급으로 승진할 자격이 생기는데 진 과정은 승진 연한을 다 채우지 못한 상태였는데 말이죠. 공무원법에는 5급 이하는 특별승진이 있어도, 그 이상에 대한 규정은 없거든요. 그런데 2010년 5월인가 장·차관 검증 보고서를 올리던 시기 쯤, 진 과장이 박영준 국무차장을 만나고 왔어요. 그 뒤 총리실 본부에서 ‘진 과장 (승진에 필요한) 공적조사서를 써서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더군요.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던 본부도 결국 하지 말란 규정도 없으니 할 수 있다고 진짜 기가 막히게 법 해석을 하더라고요.”

- 박영준 국무차장의 입김이 개입된 건가요.

“그저 ‘아, 승진 부탁을 했구나’ 생각했죠. 진 과장은 그때 승진해서 노동부로 돌아가 조직을 확 장악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책상에도 노동부 조직도가 펼쳐져 있었거든요. 언젠가 한번은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가 노동부 과장급 이상 명단 갖다 놓고 이름 옆에 ○, △, X 표를 해놓은 걸 우연히 본 적도 있어요. 제가 잘 아는 과장님 이름에 세모 표가 돼 있길래 ‘과장님, 세모입니다. 조심하세요’ 우스갯 소리처럼 그분한테 말한 적도 있어요.”

- 김종익씨 사찰 보도 때문에 진 과장의 승진이 좌절된 건가요?

“사실 김종익씨 사찰 문제 초기에도 진 과장에 대해선 별 일 있겠나 생각했어요. 사찰을 한 점검1팀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으니까요. 검찰이 압수수색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예정대로 인사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증거인멸 문제가 불거져 진 과장이 조사를 받으면서 특별승진 얘기도 물 건너 간 거죠.”

인권위 발표 늦었지만 다행
하지만 개인문제가 아닌
관행문제라는 대목은 황당했다
공소시효 6개월 남았는데
책임 묻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도
자기가 정말 안했으면
“억울하다” 한마디면 될텐데
“국정원은 정치적 중립”
시키는 대로 하는구나 싶더라
그분도 잘 생각해야 할거다

지난 16일 <한겨레> 토요판팀 사무실에서 만난 장진수 주무관은 노회찬 의원의 대법원 판결을 본 뒤 다시 공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많이 접었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증거인멸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했다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 전까지만 해도 진 과장의 특별승진을 위한 인사위원회는 예정대로 개최될 계획이었다. 만일 진 과장이 3급으로 특별승진을 해 고용노동부로 ‘금의환향’했더라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탔지만 이인규 지원관과 김충곤 점검1팀장 등, 소위 ‘꼬리’들만 처벌을 받았다. 박영준 차관과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몸통’들이 구속된 건 검찰의 재수사 이후다.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낸 건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장 주무관의 ‘폭로’였다.

- 증거인멸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네요. 그런데 증거인멸엔 왜 가담하신 거에요?

“제 행동이 증거인멸이 될 수 있다는 걸 요만큼만 알았더라도 절대 하지 않았을 거에요. 내가 위험해지는 일을 왜 하겠냐고요. 최종석 행정관이 저에게 지시할 때 이런 취지로 얘길 했죠. 검찰이 찾는 건 김종익씨 사찰 증거인데, 굳이 우리 일을 다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요. 검찰이 (감찰 자료를) 다 쓸어가서 뭘 할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보안 조치 잘못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제 목표는 하드드라이브를 지우는 게 아니라 적어도 지시받은 일에 대해 할 도리를 했다는 정도를 만드는 거였어요. 최 행정관이 컴퓨터를 아예 버리거나 부숴버리라고 했는데도 겨우겨우 막은 게 (디가우싱하는) 업체에 가져간 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는 증거인멸 주범이 돼 있더군요. 그 점은 조금 억울하죠. 특히 진 과장이 내가 함께 있는 법정에서 자신은 그런 걸 지시한 적도 없고 증거인멸이 있었는 줄도 몰랐다고 할 땐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죠.”

- 폭로 결정까지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분명히 내가 증거인멸의 주범이 아니란 걸 밝히지 않았으면 제가 살아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 애들이 지금은 어리지만 크면 다 알게 될 텐데, 증거인멸을 모두 내가 한 걸로 그렇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아내도 걱정을 많이 했죠. 변호사도 (이런 사실을) 공개해봤자 도움이 될 게 없다고 했어요. 내가 증거인멸 행위를 했다는 건 이미 명백한 사실인데, 지시한 사람이 진경락 과장 뿐 아니라 다른 사람(최종석 행정관)이 하나 더 있다고 밝히는 게 무슨 차이가 있냐면서, 그냥 실리적인 측면에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거든요. (웃음) 지금 생각하면 그분이 제 변호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론 누구의 변호인이었던 건지 잘 모르겠네요.” (*당시 장 주무관의 변호인은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변호인의 후배로, 최종석 행정관이 소개해준 변호사다.)

- 그렇지만 검찰과의 형량 거래나 10억원 제안, 취업 제안 등이 성사됐더라면 그냥 입다물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있어요.

“그거야 모르죠. (웃음) 그땐 악에 받쳐서 확 10억원 받고 그것까지 폭로해서 제대로 한 방 먹일까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진짜 그 돈을 받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당시엔 매일 복합적 갈등으로 괴로웠어요. 처 자식은 먹여살려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보아하니 이 사람들이 나를 잘 케어해주려는 게 아니라 공소시효 끝날 때까지 내 입만 다물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러다가 다 필요 없다, 가장 깔끔한 건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죗값을 있는 그대로 받으면 된다는 쪽으로 돌아섰죠. 그냥 그것이 제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설령 당장은 더 힘들어 질 수 있더라도 먼 훗날에는 말이죠.

- 하지만 4·11 총선을 한달 앞둔 시점이라 정치적 의구심이 일기도 했죠.

“민주당에 매수당했다는 얘기엔 정말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렇다면 제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땐 새누리당에 매수된 상태였던 겁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2012년 3월 ‘이털남’을 통해 제 폭로가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 일찍 대법원 상고이유서나 중앙징계위원회 조사 때부터 이 부분을 밝혔어요. 다만 그 부분이 이슈화되지는 않았을 뿐이죠. 시점과 관련해선, (이털남 방송) 당시 아무런 굵직한 이슈가 없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을 뿐이죠.”

- 이 폭로로 갑자기 언론의 집중을 받았잖아요.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에 대해서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도 뒤늦게나마 따라서 보도를 했어요. 하지만 인터뷰를 해도 제 뜻과는 다르게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잘라서 쓴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언론에 대한 배신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죠. 저에게 매일 전화하던 기자가, 제가 돈을 요구했다더라, 참여정부 때 사찰을 했다더라 말도 안 되는 보도를 저한테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쓴 적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계속 기자라고 불러야할지 말아야 할지…. 이런 경험을 하면서 공정하고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많이 깨달았어요.”

- 사건 이후 친정이었던 총리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총리실이) 세종시로 이사까지 갔는데 저한테는 아무도 연락이 없더군요. 복잡한 데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공무원들 생리 저도 뻔히 알고, 이해도 하지만 ‘아, 내가 왕따가 됐구나’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 이번 문제에 함께 연루됐던 총리실 직원 등은 어떻게 됐는지 소식은 들으시나요.

“김충곤 점검 1팀장은 이미 다른 데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최종석 행정관도 곧 나올테고…. 이번 문제에 관계됐지만 징계 없이 평소와 다름 없이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징계받고 업무에 복귀한 사람도 있고…. 민정수석실 관계자 분들 포함해서, 1차 수사했던 검사 등 불법사찰 관계자들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누가좀 조사해서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

박영준 차관 등 5명이 구속됐지만 징역 2년6개월 형을 넘지 않았다. ‘비선조직’의 과잉 충성이라는 검찰의 재수사 결과를 진실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몸통과 윗선이 없는 부실수사’라는 질타가 이어졌고, 2년여 만에야 인권위가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는 25일 박근혜 새 정부가 출범하고, 국회도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한 상황.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 인권위가 검찰의 재수사 결과를 뒤집고 ‘비선 라인’뿐만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실까지 불법사찰에 관여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결과 발표가) 너무 늦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늦게나마 민정수석실 개입 사실을 확정적으로 밝히고, 대통령에게 불법사찰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권고를) 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어요. 하지만 검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점 등 아쉬운 점이 많더라고요. 특히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박영준 전 국무차관·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등) 주도자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측면이 있고 과거 정부시기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된 측면도 있으므로 개별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제도·관행 개선의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대목은 황당하더군요.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구속된 이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나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대통령에게 신뢰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건지 의문이 가더군요.”

김황식 총리는 왜 입도 벙긋 안 하나

- 김황식 총리는 14일에 여전히 고용노사비서관이 중심이 됐고 대통령이 인지하지 못했다고만 하던데요.

“아이고, 정말 총리께서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총리실 직원들이 범죄로 구속되고 파면되는 처지에 있는 마당인데도 김 총리께서는 여태까지 제대로 입장 표명이나 사과 한번 안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총리 신분으로 공식 석상에서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진상을 제대로 알고 계셨다는 뜻일텐데, 그동안은 왜 한마디도 안 하셨나 모르겠어요. 말씀대로 대통령이 전혀 인지하지 못한 사건이라면 대통령 대신 그동안 총리라도 나서 적극 해명하고 사과했어야 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총리가 그런 자리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 사건은 총리실에서 벌어진 사건이고요.”

- 이 일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셨나요?

“이전에는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공무원일 뿐이었어요. 지금은 (그 시절에)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특히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을 보면서 참 답답하더라고요. 뻔히 보이는데도 경찰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선 전에 발표하고, 여직원은 “국정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켰습니다”라고 하고. 그 장면 보는데, ‘아, 이 사람이 시키는대로 얘기하는구나’ 싶어 안타까웠어요. 아니 왜 그 얘기를 그 사람이 합니까. 그냥 안 했으면 ‘나는 그런 일 한 적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저는 그게 참 이상하더군요. 그분도 잘 생각하셔야 할 거에요.”

- 어쨌든 곧 박근혜 정부가 출범합니다. 국회에서도 곧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하고요.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가요.

“국정조사, 진짜로 하긴 한답니까? 언제부터 한다면서 아직 안 하고 있으니 원…. 인권위 권고까지 나온 마당이니 (박근혜 정부도) 반드시 뭔가는 해야겠죠. 아니, 해야 됩니다. 만약 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몸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못 한다고 하면 무능한 걸테고요.”

- 앞으로 뭘 해야할까요.

“제가 받았던 관봉의 출처 등 검찰이 안 밝히거나 못 밝힌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하고, 책임자들을 명명백백히 가려야죠. 그리고 이왕에 하는 거 정말 세밀한 부분까지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만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점검 1팀의 조사관이 김종익씨 사찰 당시 전 국민은행 부행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일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이제 공소시효가 이제 6개월 남은 상태에요. 이런 부분까지도 (밝혀야 한다는) 말입니다. 책임을 묻지 않으니까 결국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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