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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1 19:53 수정 : 2013.03.01 21:19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선후배가 만났다. 두 명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한 명은 이제 갓 재판정에 섰다. 이상호 전 문화방송 기자(왼쪽부터), 노회찬 전 의원, 최성진 <한겨레> 기자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적용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통비법과 싸우는’ 3인의 만남

▶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롭지 못한 것을 봤을 때, 여기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다고 호루라기를 부는 데에서 정의는 시작된다.”(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정의를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호루라기를 분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이상호 전 <문화방송> 기자, 최성진 <한겨레> 기자는 모두 ‘진실의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고통을 겪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맞선 3인이 만났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권력기관 불법도청 막자는 게
통비법의 애초 취지인데
공익보도 등엔 법률적 배려 없어
불법 수집정보라 수사 안한 검찰
자기들끼리 내용 주고받더라

이상호 전 문화방송 기자
삼성이 조직적으로 관리한
검찰이 날 기소했다는 게 기막혀
검찰 출석 전 보도국장 책상에선
내 삼성생명 대출서류까지 봤다
삼성은 다 알고 있었다 ㅎㅎ

최성진 한겨레 기자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렸을 때
기자로서 당연히 귀가 쫑긋했지
‘아, 이건 통비법 위반이다’ 해서
역공당할 줄 꿈에도 생각 못해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기통신의 감청과 우편물의 검열 등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가 구현되는 자유로운 민주사회로 진전시키기 위함임.”

1993년 12월 여야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처음 통과시킬 때, 법 제정의 목적을 이렇게 못박았다. 그 시절 통비법의 ‘제안이유’만 잘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그 첫해에 국회를 통과한 통비법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의 정치 사찰, 민간인 감시 목적의 도청을 막기 위해 만든 ‘개혁 법안’의 하나였다.

민주당 등 야당이 ‘여대야소’ 정국에서 민주자유당과 안기부 등 정부·여당의 반대를 뚫고 통비법을 통과시킨 지 20년이 지났다. 국민에 대한 권력의 불법 감시를 막아보려 만든 통비법이, 거꾸로 권력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감시·비판을 가로막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별별 소송 해봤지만 엑스파일이 가장 코미디

이상호 전 <문화방송>(MBC) 기자는 2011년 3월17일,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2월14일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통비법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전 기자는 ‘엑스(X)파일’로 불리는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와 그 녹취록 등을 입수해 재벌기업 삼성이 검찰 간부 등에게 거액의 ‘떡값’을 전달해왔다고 2005년 7월22일 보도한 ‘죄’, 노 대표는 같은 해 8월18일 엑스파일에 떡값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죄’다. 제18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월 ‘정수장학회 비밀 지분매각 시도’를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도 통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3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기자와 노 대표, 그리고 최 기자가 지난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최 기자의 사회로 열린 이날 방담의 주제는 ‘통신비밀보호법,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였다.

최성진 기자(이하 최) 우리 세 사람은 스스로를 모두 ‘통신비밀보호법의 피해자’라 생각할 텐데, 통비법에 어떻게 얽혔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지난해 10월8일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열린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의 정수장학회 비밀 지분매각 논의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18일 검찰에 기소됐다.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의 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노회찬 대표와 이상호 기자는 어떤가?

노회찬 대표(이하 노) 사건 당시 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이었다.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떡값 검사’ 중 현직 고위 간부가 있다는 걸 알고서 즉각 수사를 촉구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사위를 소집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고, 그제야 출석한 법무부 차관 등의 이름을 대면서 수사를 촉구했다. 그때부터 기나긴 ‘법조계’ 인생이 시작됐다.

이상호 전 기자(이하 이) 내가 원죄자다.(웃음) 엑스파일에 관한 제보를 받은 게 2004년 10월이었다. 2005년 7월에 비로소 뉴스를 탔으니까 보도하는 데까지 열달이 걸린 셈이다. 문화방송이 지금과 달리 나름의 ‘언론 자유’를 누리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랬다. 삼성 문제, 참 힘들었다…. 노 대표는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유일하게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하며 엑스파일 사건의 핵심인 검찰의 문제를 제기한 유일한 사람이다.

엑스파일 사건은 두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남겼나?

검찰은 가장 먼저 칼을 맞아야 할 대상이었다. 돈 먹은 사람부터 먼저 수사하라고 한 거다. 그때 떡값 검사라는 표현을 썼다가 시민들에게 야단맞았다. (검사들이 삼성 쪽으로부터) 500만원 이상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떡값이냐, ‘뇌물 검사’라고 해야지 하더라. 그 뒤 통비법 위반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했다. 명예훼손 부분은 무죄가 됐고, 통비법은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받은 거고.

나 역시 1997년 삼성의 세컨드맨(이학수)과 서드맨(홍석현)이 93분 동안 이야기를 한 내용을 보도한 뒤 통비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 선고유예를 받았다. 내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나를 기소한 주체가 삼성에 의해 조직적으로 관리됐던 검찰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피 묻은 손으로 기소를 한 셈이다. 특별검사가 하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사한 뒤에 기소해야 했다. 그리고 삼성 엑스파일을 취재해 보도하게 한 자, 즉 나를 ‘방송 책임자’로 보고 기소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뉴스는 문화방송이라는 거대 플랜트(공장)가 움직여서 나오는 것이다. 분업화된 보도본부에서 내가 제보를 받아 발제를 했고, 기자 20명이 특별취재팀을 운영했다. 그런데 나를 방송책임자로 보고 기소했다. 내가 지금 59번째 소송을 하고 있는데, 삼성 엑스파일 재판이 가장 코미디에 가까웠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안기부가 1997년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불법 도청테이프 내용이 2005년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며 시작됐다. 엑스파일에는 삼성가의 두 인물이 검찰 간부들과 대선 후보에게 정기적으로 ‘떡값’, 곧 뇌물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떡값을 주고받은 이들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다. 대신 이 전 기자와 노 대표 등을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불법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27일 “불법 도청의 결과물이지만 엑스파일을 통해 재벌기업과 검찰 간부의 뒷거래에 관한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면 이를 단서로 수사에 착수했어야 했다. 도청에 가담한 국정원 관계자와 그 내용을 폭로한 노 대표, 이 기자만 처벌하고 떡값 검사 등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검찰이 직무유기를 넘어 수사권을 포기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공적 관심사 아닌데 왜 줄줄이 옷을 벗나

대법원은 노 대표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며 불법 감청 내용이라도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클 경우 공개할 수 있지만, 엑스파일은 폭로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8년 전 녹음이 이뤄진 내용이고, 비상한 공적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게 판단했는데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건 주관적 판단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2005년 삼성 엑스파일 보도로 파문이 인 뒤, 엑스파일에 나온 당사자들이 어떻게 처신했나? 삼성은 그룹 명의로 사과하면서 8000억원을 기부한다고 했고, 중앙일보도 1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했던 홍석현 주미대사가 사임했고, (떡값 검사로 거론된) 법무부 차관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날 저녁에 사임하지 않았나. 공공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닌데, 다들 왜 사임을 하나? 또 엑스파일에는 공공의 관심사가 아닌 사생활과 관련한 대화는 1%도 없었다.

1%는 있었다. 둘이서 농어를 좋아한다며 주문하는 내용이 1분 있다. 물론 그건 사생활이라서 보도하지 않았다.(웃음)

검찰은 ‘독수독과론’(독이 든 나무는 독이 든 열매를 맺는다)을 들어 떡값 검사나 삼성 임원에 대해 끝내 수사하지 않았다. 독수독과의 원칙 자체는 맞는 것 아닌가?

당시 검찰 수사 책임자였던 황교안 서울지검 제2차장(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 그렇게 발표했다. 불법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수사할 수 없다는 논리다. 또 하나는 1997년 도청테이프여서 설사 확인된다 하더라도 공소시효를 넘었다는 게 수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독수독과론은 불법 수집 정보가 재판에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뜻이지 수사의 단초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녹취록을 제보받고 2개월 뒤 어렵사리 테이프를 건네받았다. 그사이 녹취록을 근거로 취재했는데, 수사권이 없는 기자가 해봐도 손쉽게 확인이 되더라. 이를테면 (두 인물의 대화에서)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의 대쪽 이미지를 삼성에서 만들어주고, 보광커뮤니케이션이 홍보사업을 하되, 한나라당이 지급한 것처럼 삼성이 대납해주자는 내용이 나온다. 확인했더니 사실관계가 맞더라.

검찰은 독수독과를 경직되게 해석했다. 독이 든 과일이니 수사 착수도 안 한다는 논리다. 재밌는 거는 2005년 8월18일에 법사위에 출석한 법무차관에게 당신 이름이 있다고 하니까 ‘알고 있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거기서(수사팀에서) 가르쳐줬다고 하더라. 정작 수사는 안 하고 자기들끼리는 알려줘도 되나?

통비법 제정 취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처럼 언론인이나 국회의원 등 공익신고자에게 적용하는 게 맞나?

통비법은 양날의 칼이다. 불법도청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체 19개 조항 가운데 불법도청에 대한 처벌 조항은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국가의 합법 도·감청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법 개정이 반복되면서 국가가 국민들의 대화를 좀더 용이하게 도청할 수 있도록 개악됐다. 긴급한 경우에는 영장 없이도 도청할 수 있다.

그 피해자가 나다. 지난 2월21일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첫 재판을 다녀왔는데, 검찰이 공소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 휴대전화 통화내역 10개월치 6500여건을 무차별 조회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더라. 어이가 없었다.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나를 기소한 검찰이 언론사 기자의 10개월치 사적 통화내역을 파헤친 것이다. 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국회에서 통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방향은 찬성하나?

18대 국회 때 조승수 의원이 엑스파일 사건에서 드러난 법률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끝내 다루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이유가 뭔지 아나? 당시 한나라당이 합법 감청을 확대하는 개악안을 여러 개 내놓은 거야. 여러 개정안을 두고 대치 국면이 진행되면서 다 폐기됐다. 통비법 부분에 관해서는 다양한 측면을 봐야 한다.

이제 겨우 통비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두 분의 경험이 씁쓸하다. 좀 잘 싸워주지 그랬나.(웃음) 두 분과 별개로 당시 엑스파일 내용을 보도한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최종심까지 가서 유죄를 받았다. 노 전 의원은 2007년 통비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신청한 적도 있는데, 그것도 결국 2011년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4전4패다.

과거 권력기관이 불법 도·감청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까 이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통비법이다. 하지만 공익을 위한 보도 등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법률적 배려가 없다. 그래서 통비법에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위헌 소송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형법에 일반적인 정당행위 조항이 있어, 이를 원용할 수 있으니 위헌이 아니라고 했다.

함께 유죄받은 또다른 인물의 엇갈린 운명

통비법은 1993년 12월1일 제정됐다. 당시 통비법 제정을 주도한 쪽은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였다. 도청을 통한 수사·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워낙 심각했던 탓이었다. 1989년 정보기관이 서울시내 44개 전화국에서 도청 설비로 보이는 ‘블랙박스’(비음성 전송품질 측정장치)를 운영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199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안기부가 전화 전용회선을 활용해 광범위하게 도청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범 첫해 ‘도덕성’을 강조한 김영삼 정부로서는 야당의 통비법 제정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국회 정치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아 통비법 발의 및 통과를 주도한 박상천 전 의원은 지난 2월20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때 도청이 얼마나 심했냐면, 안기부가 야당의 공천 현황까지 손바닥 보듯 꿰고 있을 정도였다. 정보기관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으니 ‘정보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통비법을 만들지 않으면 정보기관의 도청 앞에 야당은 완전히 발가벗겨진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기관의 정치권 및 재야 사찰을 막겠다는 것이 통비법의 제정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여전히 미제 사건이다. 당시 안기부에서 불법도청한 테이프가 280여개인데, 그 내용이 알려진 게 몇 개인가?

1개다. 당시 안기부 미림팀이 일상적으로 도청했고, 그중 1개가 유통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안 열어보고 창고로 들어간 거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의 사면을 요구하는 펼침막이 서울 광진구 구의동 길가에 걸려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검찰이 불법도청 테이프이니까 수사 못 하겠다고 해서, 국회에서 특별법 만들어서 수사하자고 했다. 여야가 합의해 특별법을 제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쪽 다 뭉개버린 거지. 법은 자동 폐기됐다.

처음 폭로할 때 통비법을 통한 ‘역공’이 몰아치리라 예상했나? 노 의원과 이 기자의 경우가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필립 이사장이 켜놓은 휴대전화 너머로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가 들렸을 때 기자로서 당연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거지 ‘아, 이건 통비법 위반이다’, 혹은 ‘아 통비법 위반으로 문제삼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물론 통비법으로 엮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도 내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당시 이미 40건 정도 소송을 경험해본 상태였다. 100% 역공이 들어올지 알았다. 재벌이라고 다 똑같은 재벌이 아니다. 삼성 정도 되면 의제설정 능력이 있다. ‘이건희가 국익이다’ 이런 등식을 만들어왔다. 이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황우석 사태 때 겪은 것처럼 대중들은 인식의 저항을 겪는다. 고발보도가 공격적 보도잖아, 승산을 따져보거든. 난 50%만 돼도 고발한다. 그런데 이번엔 승산이 30%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국익이 이건희와 등식 관계와 있기 때문에. 70%는 지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발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었지. 그때 죽는 길에 동참한 분이 노 대표였다.(웃음)

어떤 식으로 역공이 취해질 거라 구체적으로 예상했나?

보도자료에 대해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문 보면, 기자들에게 뿌린 보도자료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만, 내 홈페이지에 올린 건 면책특권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자들에게 뿌리면 언론사에서 걸러지는데, 인터넷에 올리면 국민에게 직접 노출된다는 논리다. 이 얘기대로라면 정치인은 두 가지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해. 그럼, 대법원은 어떻게 하는 줄 아나? 대법원도 (똑같은) 보도자료를 동시에 올린다.

대법원 보도자료가 기자용과 인터넷용이 다른지 확인해봐야겠다.(웃음)

이 사건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잖나.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이번 정부에서 사면됐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일하다가, 내 대법원 판결 나던 날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갔다.

통비법을 위반했다 해도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이렇게 달라진다.(웃음)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밖에 안 된다. 역대 정권은 지지율이 내려갈 때 깜짝 쇼를 했단 말이야. 임기 초반 재계 군기잡기 차원에서 삼성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본다. 대선 공약도 그렇고 첫걸음으로 중소기업회관에 갔잖아. 물론 보수 철학을 지닌 분이지만, 사실 거대범죄를 감싸주는 게 보수는 아니잖아.

법치야말로 보수의 코드다. 큰 죄를 감싸면서 작은 죄를 처벌하는 것은 불의이거든.

담장 밖으로 비명 들리는데 귀를 막을 텐가

수십년이 된 범죄도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하지 않았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 관련자들이 살아있을 때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삼성이 재판 과정에도 어떤 행동을 보여줬는지도 따져봐야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은 이제 사법부와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이 되거든. 과거는 군에 대한 영향력이 권력의 바로미터였다면, 지금은 누가 리걸 프로세스(사법 절차)를 장악하느냐에서 판가름 난다.

검찰이 비대해진 것도, 권력이 검찰 괴물을 악용하려다 보니 키워준 측면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출석 직전에 보도국장이 나를 불렀다. 책상 위에 16절지 묶음이 놓여 있었는데, 뭔가 봤더니, 내 삼성생명 대출서류더라. 집 사려고 대출받은 게 있었거든.

그거야말로 기자의 사생활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보도국장이 ‘이 돈 가지고 뭐 했냐’, ‘불법도청 테이프 구입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삼성 계열사에서 나에 관한 자료를 위로 보고한 거지. 그리고 다시 문화방송에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등줄기가 서늘했겠다.

삼성은 다 알고 있어.(웃음)

국민의 사생활 보호는 그 자체로 반드시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다. 검사나 대통령 측근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생활과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충돌해서 오는 갈등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가치가 우선한다고 보나?

정수장학회 사건의 경우 불법으로 엿들으려고 한 게 아니니까 불법도청 혐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편으로 받아 본 상황과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들리게 되어서 알게 되지 않았나. 그리고 대화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람 피운 것도 아니고 공공의 관심사에 관한 대화였다. 적절하게 잘 보도했다.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아니, 담장 밖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치자. 그럼 귀를 막고 있어야 하나? 내가 적극적으로 염탐하거나 정보를 빼온 게 아니라 통상적인 합법적 테두리에서 활동하다가 들은 거다. 전화 예절에도 어긋난다. 어른과 통화할 때는 어른이 끊은 뒤 확인하고 끊어야 하잖아.(웃음) 검찰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기자는 상대방보다 먼저 끊어야 하는 건가? 최 기자 처벌하면 기자의 모든 취재가 봉쇄되는 셈이다. 법률 과잉이다.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발 주체가 최필립 이사장이 아닌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 문화방송 사장이었다는 게 서글프게 느껴졌다. 언론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할 언론사, 언론인이 나를 통비법 위반으로 고발하다니, 참 씁쓸했다.

나도 명예훼손만 20여번 소송을 치렀다. 그러다 보니 명예훼손에 대한 나름의 주관도 있고, 명예도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명예는 거죽만 남았다. 누가 명예를 위해 아들을 전방 부대에 보내고 수십 수백 억원을 기탁한 사람이 있나? 공적 담론을 이야기해도 명예훼손이라는 귀신이 덮친다. 사회적 약자와 납세자의 명예가 더 보호돼야 하는데,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으로 언론 보도를 막는다.

최 기자 재판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1월18일 기소됐고, 2월21일 첫 재판에 이어 오는 19일 두번째 재판이 열린다. 통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상호 기자의 모두진술, 항소이유서 등을 참고하고 있다.(웃음)

노, 이 행운을 빈다!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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