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19 21:24
수정 : 2013.04.19 21:26
[토요판] 커버스토리/ 보스턴 테러 용의자 추격전
고성능 총기·원격조종 폭탄 보유
인상착의 공개 불구 시내 활보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의 용의자들은 수사 당국이 자신들의 얼굴 영상을 공개한 지 하루도 안 돼 모습을 드러냈다. 용의자들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의 포위망이 좁혀져 오자 궁지에 몰린 채 또다른 테러를 시도하려 한 흔적도 보인다. 이들은 총기와 폭탄으로 중무장한 채 보스턴 일대에서 전투에 준하는 난동을 부렸다. 한명은 여전히 도주중이어서 또다른 피해도 우려된다.
18일 오전 연방수사국이 마라톤 테러 현장 녹화영상에서 찾아낸 용의자들의 모습을 공개하고 수배에 나선 것이 추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보스턴에서 가까운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근처 편의점에서 절도사건이 일어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게 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분석해 범인 중 한명이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의 용의자임을 확인했다.
용의자들은 이미 이때부터 또다른 추가 테러를 저지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총기와 폭탄으로 중무장했고, 이들에게는 다수의 고성능 총기와 원격조종 폭탄이 있었다. 경찰의 추적을 당하지 않았다 해도, 이를 이용해 추가 테러를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의 인상착의 등이 이미 공개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스턴의 테러 현장에서 멀지 않은 케임브리지 시내에서 활개치고 다녔다. 체포를 무릅쓰고 테러를 저지를 각오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다. 사살과 도주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격렬한 저항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확신범일 가능성을 추정하게 한다. 에드 데이비스 보스턴 경찰청장은 “이들이 사람들을 죽이려고 여기에 왔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 연방수사국이 18일 추가로 공개한, 용의자들의 얼굴을 담은 고화질 사진 속에서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9·11 테러 등을 주도한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은 낮아졌다. 알카에다 등 국제적 무장조직과 관련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슬람주의에 공감하는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은 물론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내 백인우월주의 극우파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에 좀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보스턴 마라톤 사건은 1995년 4월19일 극우 백인우월주의 극우파인 티머시 맥베이가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청사를 겨냥해 폭탄테러를 저지른 날을 연상시키는 시점에 벌어졌다. 4월 셋째 주는 연방세금 납부 신고마감이 있고, ‘애국의 날’이 있어 미국 극우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다.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연방정부의 해체와 자유로운 총기 소지 등을 주장한다. 용의자들이 차량을 탈취해 보스턴 일대를 누비면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주한 행각을 볼 때, 이 지역 지리에 익숙한 현지인일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미국 내에서 성장한 자생적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수사 당국은 공개수사를 시작한 지 몇시간 만에 용의자들을 포착하는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총격전 과정에서 경찰 한명이 사망하고 한명이 중태에 빠지고 보스턴 일대는 사실상 통행금지 상태이다. 그 자체로 테러를 능가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용의자 한명이 이미 사망한데다, 도주한 다른 한명마저 저항하다가 사망한다면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어려워져 수사가 미궁에 빠질 우려도 있다.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범행 행태를 볼 때 미국 사회에 대한 극단적 증오가 개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주한 용의자는 현재 주택가로 잠입한 것으로 알려져, 인질극 등도 우려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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